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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의 트렌드2025]무난하고 안온한 하루의 가치 ‘아보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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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과시에 대한 반발
나에게 집중하는 트렌드 등장
평범한 일상·긍정적 사고 주목
변화하는 행복담론 시사

[최지혜의 트렌드2025]무난하고 안온한 하루의 가치 ‘아보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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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행복하지도, 너무 불행하지도 않은 일상. 그저 무난하고 무탈하고 안온한 하루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무언가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일상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삶의 태도를, '아주 보통의 하루'를 줄여 아보하라고 한다. 큰 행복이 아니더라도, 엄청난 성공이 아니어도 무해하고 무탈한 하루면 충분하다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가장 대표적으로 남에게 과시하기보다 나에게 집중하는 소비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고급치약의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올리브영에 따르면 2023년 치약 카테고리 매출은 1년 전 대비 45% 신장했다. 고급 치약이 주는 즐거움은 비싼 가방이나 립스틱처럼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사적인 즐거움이다. 보여주기보다 ‘나에게 집중하는 소비’가 확산하고 있다는 뜻이다.


운동 영역에서도 한 때 열풍이 불었던 골프나 테니스처럼 ‘폼나는' 종목 대신 달리기와 등산 같은 진득한 운동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롯데멤버스가 2023년 1~10월 거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골프(-4%)·테니스(-15%)용품 및 의류 구매액은 줄었는데, 러닝(13%)·등산(11%) 관련 용품 구매액은 늘었다. 연령대별로 보면 20대(23%)와 30대(7%)의 스포츠용품 구매 증가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골프와 테니스의 공통점은 운동복이 화려하고 예쁘며, 멋있는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기 좋은 스포츠라는 특징이 있다. 반면, 달리기나 등산은 화려한 패션이나 용품이 필요하지 않는다. 그냥 자신에게 집중하면 되는 스포츠라는 점에서 #아보하형 취미활동에 가깝다.


둘째, 평범한 일상이 주목받는다. 코난테크놀로지의 소셜분석 결과에 따르면 ‘무탈·평범·보통’의 온라인 언급량이 최근 2년 동안 완만하게 증가하고 있는데, 특히 이와 함께 언급된 연관어가 인상적이다. ‘가족·부모님·아이·남편’ 등 가족 구성원, ‘고기·밥’ 같은 평범한 식사, ‘유튜브·넷플릭스’ 같은 일상 활동이 대표 연관어로 등장했다.


[최지혜의 트렌드2025]무난하고 안온한 하루의 가치 ‘아보하’ 시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콘텐츠 영역에서도 무탈한 일상을 다루는 영상들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생 녹음 중’이다. ‘인생 녹음 중’은 2024년 1월에 개설된 이후, 급격하게 성장한 채널이다. 이 채널이 인상적인 이유는 별로 인상적인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주요 콘텐츠가 전부 부부의 대화가 담긴 블랙박스 녹음 파일이다. 특별한 주제도 없다. 부부가 운전하며 나누는 시시콜콜한 대화, 티키타카 하며 주고받는 노래가 대부분이다. 매력적인 배경음악도 없다. 그릇 부딪히는 소리, 과자 먹는 소리 등 주변 소음만 잔뜩 들린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평범한 부부의 찐일상에 귀 기울인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유튜브에서 이런 평이한 콘텐츠가 인기를 끈다는 사실은, 특별한 순간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일상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드라마틱한 변화보다는 잔잔한 유지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 일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관찰된다. ‘도쿄 리테일 트렌드’의 저자인 정희선 애널리스트는 요즘 일본 20대들이 찾는 공간으로 '동네목욕탕 사우나'를 꼽는다. 멋진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카페나 정갈한 노천탕을 가진 온천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나 방문하는 동네목욕탕 사우나를 젊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긍정적 사고가 인기를 얻는 것도 평범한 하루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의 연장선장으로 볼 수 있다. 최근 힘든 현생(現生)을 잘 살아가고자 ‘아이들 마인드’로 살아간다는 유머가 인기다. 가령 한 대학원생은 본인을 "나는 지도 교수님이라는 사장님 밑에서 아이돌이 되어가고 있는 연습생"이라고 생각하며 힘든 대학원 생활을 견딘다고 한다."제니도 연습생 기간을 8년이나 거쳤는데 학위기간 정도는 참을 수 있지 않겠어?" 하는 일종의 '정신승리'다.


아보하는 한국사회의 행복담론이 바뀌고 있음을 시사한다. 거창한 성취는 물론이고 굳이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무탈하고 안온한 하루를 긍정하는 태도가 확산하고 있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형성된 원인으로 사회경제적 구조를 짚을 수 있다. 아보하는 열심히 달려도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것 같지 않다는 현세대의 좌절을 반영한다. 인간은 미래를 꿈꾸기 어려워질 때 현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 한국 시장은 국내외 여러 이슈로 성장의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진 것은 물론이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에 빠져있다.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매진하기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는 트렌드가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아보하 트렌드가 어디서 기인했든, 중요한 것은 안온한 하루를 보낸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는 태도 자체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하루하루가 투쟁인 현대사회에서, 꼭 행복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오늘을 힘껏 살아낸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는 요즘 사람들의 태도는 2025년을 시작하는 이때 적지 않은 울림을 남긴다. 아주 보통의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는 2025년이 되기를, 그리하여 우리의 2025년이 무탈하고 무해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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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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