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등 빅테크 CEO 총출동
美 첨단 AI 칩 추가 제재 발표 후
중국 방문 이뤄져
엔비디아 매출서 중국 비중 17%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는 테슬라, 애플, 구글, 아마존 등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 거물들이 총출동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시각 그는 중국에 있었다. 인공지능(AI)과 첨단 반도체 부문에서 중국의 기술 굴기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엔비디아의 큰손인 중국을 우선순위에 둔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외신에 따르면 황 CEO는 지난 19일 엔비디아 베이징지사의 춘제(春節·음력 설) 행사에 참석해 AI 발전을 주제로 연설했다. 그는 "우리는 새해 시작과 함께 AI라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축하하고자 여기에 모였다"고 말했다.
중국과 엔비디아의 끈끈한 관계도 강조했다. 황 CEO는 "엔비디아가 중국에 진출한 지 25년이 됐다"면서 중국 직원들의 이직률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했다. 앞서 황 CEO는 지난 15일 엔비디아 선전지사의 연례 춘제 행사에 참석했고 대만지사의 종무식 행사를 찾았다.
황 CEO의 이런 움직임은 다른 빅테크 수장들과는 다른 행보다. 그가 중국에서 분주히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일론 머스크 CEO,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팀 쿡 애플 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등은 트럼프 대통령 가족들 바로 뒷자리에 앉아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를 듣고 있었다.
이날 백악관의 새로운 주인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취임식장을 찾은 빅테크 수장들과 달리 중국행을 택한 황 CEO의 행보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왔다. 심화하는 미·중 갈등 속에서 엔비디아의 주요 고객사인 중국 시장의 중요성을 고려한 일정이란 분석이 나온다. 엔비디아의 매출에서 중국 지역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17%다. 방문 시점도 묘하다. 공교롭게도 그의 방문은 미국 정부가 첨단 AI칩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이뤄졌다. 미국 정부는 지난 3일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국가에 대해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등에 대한 수출 물량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중국이 AI 반도체 기술을 추격해오자 수출 고삐를 죄어 기술 접근을 막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블룸버그통신도 "미·중 기술 갈등의 중심에 있는 엔비디아의 CEO가 민감한 시기에 중국 순방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같은 미국 정부의 조치에 엔비디아는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엔비디아는 제재안 발표 직후 낸 성명에서 "세계 대부분에 수출을 제한하는 규정은 AI 반도체 남용 위험을 줄이기는커녕 경제 성장과 미국의 리더십을 위협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시장을 위협하고 혁신의 생명인 경쟁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를 두고 향후 AI 반도체 추가 제재안이 나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블룸버그통신은 29일(현지시간) 복수의 익명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아직 정부 출범 초기인 만큼 논의가 매우 초기 단계라면서도 엔비디아의 H20 칩 제품으로 수출 통제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을 거론했다. H20은 엔비디아가 미국 정부의 기존 대중국 수출 통제에 따라 저사양으로 출시한 제품이다. 이렇게 된다면 엔비디아의 중국 수출이 제한돼 매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오픈AI 기술 도용 문제도 불거진 상태다. 미국이 이번 일을 계기로 기술 공개 범위, 수출 등의 규제를 더 까다롭게 손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CNBC는 30일(현지시간) 오픈AI가 "딥시크가 AI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모델의 출력 데이터를 ‘부적절하게’ 사용했을 가능성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픈AI 대변인은 이날 CN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응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이곳에서 건설 중인 가장 유능한 모델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 정부와 계속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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