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덕 사장, 기자회견서 대타협 대화 요청
"이사회 MBK 측에 전향적으로 개방할 것"
최윤범 회장도 이사회 의장직 내려놓기로
MBK 측 최윤범 회장 형사고발 조치 예고
"가처분으로 주총결의 취소·무효 다툴 것"
고려아연이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영풍·MBK 파트너스(이하 MBK 연합)에 24일 화해를 제안했다. 4개월간 이어진 다툼을 멈추고 향후 협력을 모색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전날 고려아연 측이 영풍의 의결권 지분을 제한하고 임시 주주총회를 속행한 데 대해 MBK 측 연합은 형사고발 조치를 예고한 상황이라, 이 제안이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고려아연 "소모적인 갈등 멈춰야 할 때"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은 이날 서울 용산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K 연합 측에 "대타협을 위한 대화의 시작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박 사장은 "이제는 억지로 만들어낸 주장과 비방이 난무하는 소모적인 갈등을 멈춰야 할 때"라며 "고려아연이란 회사를 위해, 우리 공동의 꿈을 위해, 잠시 과거를 잊고 모두를 위한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할 때"라고 했다.
박 사장은 이같이 전향적 태도를 취하게 된 배경에 대해 "전날 임시 주총에 어떻게 임해야 할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며 "갈등과 분쟁의 당사자가 함께 소통과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MBK 연합은 마치 우리의 방어가 최윤범 회장 개인을 위한 것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이런 비난은 고려아연 임직원, 기술진과 노조를 모욕하고 무시하는 적대적 인수합병(M&A) 전략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박 사장은 "상처보다 고려아연에 대한 사랑이 더 크기 때문에 우리는 MBK 연합을 더 이상 적이 아닌 새로운 협력자로 받아들이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대타협을 받아들인다면 고려아연은 MBK 연합 측과 더 나은 미래를 함께 도모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MBK가 사모펀드의 순기능인 기업의 파트너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해 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MBK도 냉정함을 되찾고 우리의 말을 진중하게 고민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박 사장은 타협을 전제로 한 제안으로는 이사회를 MBK 연합 측에 전향적으로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고려아연의 발전을 토대로 협력하고 신뢰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MBK가 원한다면 경영 참여의 길도 열어놓겠다"고 했다. 박 사장은 또 "최 회장이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겠다고 약속했다"며 "이 약속은 다음 이사회에서 실현될 것"이라고 했다.
박 사장은 끝으로 MBK 측에 재차 협력을 위한 고민과 검토를 요청하면서 "전날 임시 주총을 준비해 온 과정 역시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과정이었다는 점을 재차 강조드린다"고 피력했다. 그는 "MBK 역시 고려아연과 함께 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모두의 협력 없이는 너무나 큰 고난의 길이 놓여있음을 명확히 알고 있을 것"이라며 "공생의 길은 무엇인지, 공멸의 늪은 어떤 것인지 깊은 고민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MBK "형사고발 할 것… 분쟁 장기화도 불사할 것"
그러나 고려아연 측 제안이 현실화되기까진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앞서 MBK 연합 측은 전날 임시 주총을 앞두고 고려아연이 호주 소재 손자회사를 통해 순환출자 고리를 만들어 '상호주 제한' 제도를 활용한 것에 대해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최 회장 등을 형사고발하겠다고 밝힌 까닭에서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이날 고려아연 기자회견에 앞서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열고 "고려아연이 자기 목적을 위해 손자회사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을 이용한 탈법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에 형사처벌 대상이며, 공정위와 수사기관에 고발할 계획"이라고 했다.
앞서 고려아연은 임시 주총을 하루 앞둔 22일 호주 계열 손자회사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이 최 회장 일가와 영풍정밀이 소유하던 영풍 주식 19만여주를 575억원에 장외매수했다고 밝혔다. 고려아연이 호주에 세운 선메탈홀딩스를 통해 설립한 SMC가 이번에 사들인 주식은 영풍 전체 주식의 10.33%를 차지한다. 지분 거래로 고려아연과 선메탈홀딩스, SMC, 영풍, 다시 고려아연으로 이어지는 상호순환출자 고리를 만들면서 상법상 '상호주 의결권 제한' 제도를 활용한 것이다. 이 조처로 MBK 연합 지분 가운데 영풍 지분 25.42%의 의결권이 묶였고, 고려아연은 자신들이 제안한 이사 후보 7명을 모두 이사회에 입성시키면서 경영권 수성에 성공했다.
김 부회장은 이 모든 행위가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와 최윤범 회장이 이달 초 SMC의 이사회에서 물러난 것도 문제가 된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라며 "최 회장은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SMC에 영풍 주식을 30%나 싸게 팔면서까지 가담시켜 공정거래법이 엄격히 금지하는 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서 어제 주총의 결정이 효력이 없다는 점을 다투려고 한다"라며 "형사고발하고 최 회장을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부회장은 이날 고려아연 측과 분쟁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그는 "최 회장은 우리가 포기하는 것을 바라겠지만 우리는 시간적인 여유도, 자금도 많다"라며 "고려아연 이사회에 어떻게든 들어가서 온 힘을 다 쏟을 생각"이라고 했다. 과거 경영권 분쟁에서 사모펀드들이 단기간에 물러난 것과 달리 장기전을 불사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끝나지 않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지난해 상반기 정기 주총에서 영풍과 배당 및 정관 변경을 둘러싼 표 대결, 고려아연의 원료 공동구매 및 공동판매 중단 선언, 고려아연의 서린상사 경영권 확보 등을 거치며 심화했다. 이 분쟁이 결정적으로 폭발한 것은 지난해 9월13일 영풍 측이 사모펀드 MBK와 손을 잡고 1주당 66만원에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나서면서부터다.
고려아연과 MBK 연합 측은 조 단위 '쩐의 전쟁'을 거친 끝에 지난해 12월 말 의결권 주식 기준으로 영풍·MBK 연합의 지분율 46.72%, 고려아연 및 우호 지분의 지분율 39.16%로 집계된 중간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고려아연은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국민연금과 해외 기관투자자, 우호 지분 등의 표심을 확보하기 위해 여론전에 힘을 쏟았다. 미·중 디커플링이 심화하고 탈중국 공급망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고려아연이 첨단산업 공급망의 '초크 포인트'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을 대내외 여론전에 적극 활용했다. 실제로 고려아연이 가진 이차전지 양극재 핵심 원료인 전구체 제조 기술은 국가핵심기술로 판정받았다.
고려아연은 그러나 작년 10월 말 자사주 공개매입을 종료한 뒤 자사주 유상증자를 곧바로 진행한다고 발표하면서 시장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고, 금융감독원의 제재로 결국 유증 계획을 철회하는 '악수'를 두기도 했다. 여기에 이달 임시주주총회에서 MBK 연합 측의 이사회 장악을 저지하기 위한 '히든 카드'로 띄운 집중투표제까지 법원으로부터 제동이 걸리면서 4개월간 이어진 경영권 분쟁이 최씨 일가의 패배로 마무리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이 같은 판세는 최 회장 측이 임시 주총을 앞두고 영풍의 고려아연 주식 의결권을 제한하기 위한 조치를 단행하면서 뒤바뀌었다. 그 결과 고려아연은 자신들이 제안한 인사들을 전부 이사로 선임할 수 있었고, 경영권 수성에 성공했다. 하지만 MBK 측이 고려아연의 순환출자 카드에 따른 임시주총 결과를 놓고 법적 조치를 예고하면서 경영권 분쟁은 향후 다시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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