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 실패와 中 부상에 쇠퇴
올해 韓·인도·멕시코서 민주주의 지켜져
트럼프 당선에 美 민주주의 4년간 시험대
![[블룸버그 칼럼]민주주의, 2024년에 더 악화될 수도 있었다](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4123013583571276_1735534787.jpg)
역사적으로 2024년은 세계 민주주의에 기념비적인 해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헌정 민주주의가 악화한 것을 고려하면 2024년은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인 인도, 멕시코에서는 선거가 비교적 순조롭게 치러졌다. 한국에서는 비상계엄 선포 시도라는 불운한 사태가 있었으나 민주적으로 선출된 국회의원들의 강력하고 신속한 저항에 부딪혔다. 아마도 미국에서뿐 아니라 글로벌 관점에서도 가장 중요한 점은 11월 미국 대선에서 명확한 승자가 나왔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 결과를 부정하는 움직임을 부추길 위험도 피했다.
분명히 말하자면 이 모든 선거에서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아마 다른 쪽이 승리하는 것을 선호했을 수 있다. 튀니지, 벨라루스, 이란에 이르기까지 여러 국가에서 (민주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다양한 방식의 비자유적 선거가 치러졌다. 그리고 트럼프 당선인의 승리만이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위협을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은 미국 민주주의나 트럼프 당선인에게 있어 결코 긍정적인 평가가 아니다. 그러나 이 분석의 요점은 승자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올해 상황은 훨씬 더 나빠질 수도 있었다.
입헌 민주주의로부터의 전반적인 후퇴 추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11년 초 ‘아랍의 봄’ 당시를 떠올려야 한다. 당시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예멘의 독재자들을 몰아냈을 때 이들 국가와 외부 정치적 행위자들은 아랍 세계에 민주주의가 확산될 가능성에 대해 흥분했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지금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 정권이 극적으로 권좌에서 물러났을 때 시리아 안팎에서 알아사드를 대체할 수 있는 정부 형태로 입헌 민주주의를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러한 대비는 극명하다. 지켜보기에 고통스럽지만 슬프게도 이해할 수 있다. 아랍의 봄은 자치의 꽃을 피운 것이 아니라 내전과 독재자, 짧지 않았던 이슬람국가(IS)의 공포 등 아랍의 겨울로 이어졌다. 가장 성공적인 아랍 민주주의 실험의 장이자 아랍의 봄의 발원지인 튀니지조차도 결국 10여년 만에 (친위)쿠데타에 굴복했다. 튀니지 대중의 다수가 비록 환영하지는 않더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시리아인들과 이 지역의 다른 이들이 독재자 알아사드, 고문 및 감옥 중심인 그의 정권에서 벗어난 것을 대체로 기뻐하는 동시에, 막연하게 최대한 평화를 유지해줄 수 있는 온건한 정부 형태를 희망하는 것 이상 바라지 않는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때 알카에다와 관련 있었고, 아부그라이브와 캠프 부카 같은 미국의 ‘구금 시설’에서 교육받은 지도자로부터 과연 그런 정부를 기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랍의 봄 이후 민주주의의 실망스러운 실패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쇠퇴에 기여한 또 다른 큰 요인은 단연코 중국의 부상이다. 약 30년 전 내가 대학원생이었을 때만 해도 ‘아시아의 호랑이’ 한국, 일본, 대만 등처럼 자본주의 경제 성장이 점진적 민주화 없이 이뤄질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심각했다. 오늘날 이러한 논쟁은 분명히 부정적으로 결론났다. 미국의 성공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이은 민주화의 흐름을 주도했던 것처럼 중국은 민주화 없이도 수억 명의 국민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고 글로벌 초강대국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는 권위주의와 자본주의의 조합을 점점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지난 한 해간 긍정적인 측면도 진짜다. 인도 총선에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국민당(BJP)은 전국적으로 상당한 의석을 잃었다. 이는 모디 총리가 종종 권위주의적 성향을 보임에도 진정한 민주주의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완전한 권위주의 통치는 이 같은 좌절을 용납하는 경우가 드물다.
멕시코에서는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이 선거에서 압승했다. 정교한 관찰자들에 따르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선거는 공정하게 치러졌다. 이는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이후 이어진 일련의 헌법 개정에는 대중이 투표로 판사를 선출하는 방안 등 몇 가지 우려스러운 요소가 포함돼있다. 그러나 입헌 민주주의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개인적으로 입헌주의를 보호하는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방안이라 생각하는 판사 선출도 그럴듯한 헌법 통치 시스템의 판테온(만신전)에서 존중받는 위치에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지만 국회가 몇 시간 만에 합법적으로 결정을 뒤집고 탄핵소추와 직무 정지로 이어진 사건은 입헌 민주주의가 얼마나 탄력적으로 붕괴를 견뎌내고 저항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쉽게 말해서 잘 작동하는 입헌 민주주의에서 현직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시도는 대중의 반발과 함께 그에 상응하는 실질적 조치를 초래한다.
이러한 관찰은 안타깝게도 트럼프 당선인으로 이어진다. 2020년 대선 이후 그의 권위적 시도는 탄핵소추로 이어졌지만 해임되지 않았다. 그리고 2024년 대선 승리로 권력을 되찾았다. 이는 잠재적 독재자를 통제할 수 있다는 전망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는 또한 미국 국민들이 트럼프 당선인을 선출하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좋든 싫든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국민의 의사를 실현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앞으로 4년은 미국 민주주의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아무도 낙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2024년 대선에서도 살아남았고, 앞으로 또 다른 날을 맞이하기 위해 싸운다. 이는 다른 대안보다 낫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언급했듯이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부 형태다. 지금까지 시도된 다른 모든 형태의 정부를 제외하면 말이다.
노아 펠드먼 하버드대 법학교수 겸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니스트
이 글은 블룸버그의 칼럼 ‘Democracy Could Have Fared Worse in 2024’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블룸버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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