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안전 위한 질서 유지 역할
"현실 속 히어로"…시민 곁의 우산
Z세대가 온다. 20·30 신입들이 조직 문화의 미래를 결정하는 시대다. 경찰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경찰에는 형사, 수사, 경비, 정보, 교통, 경무, 홍보, 청문, 여성·청소년 등 다양한 부서가 있다. 시도청, 경찰서, 기동대, 지구대·파출소 등 근무환경이 다르고, 지역마다 하는 일은 천차만별이다. 막내 경찰관의 시선에서 자신의 부서를 소개하고, 그들이 생각하는 일과 삶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지난 21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시청 앞. 농민단체 등이 주최한 행사의 사전 행진이 시작되자 남색 조끼를 입은 참가자 6000여명이 북과 징, 꽹과리 등을 울리며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서울경찰청 제1기동단 11기동대 소속 곽상현 경장(30)도 시위대의 걸음에 맞춰 뛰기 시작했다.
곽 경장은 "기동대 경찰들은 사전에 신고된 집회 구역과 차량이 통행하는 도로 사이를 구분해 집회 참가자들을 안전사고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집회는 모두 11만여건이다. 집회 현장에는 질서 유지를 통해 시민 안전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기동대 경찰들이 있었다. 아시아경제는 서울청 11기동대 소속 곽상현 경장, 양병억 순경(29)을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근무 강도 높기로 유명…'들쭉날쭉한 일정'
곽 경장이 속한 11기동대는 서울지역 경찰들 사이에서도 근무 강도가 높고 일이 많기로 유명하다. 대규모 집회가 밀집한 광화문·용산·여의도를 관할하는 데다 사회적으로 첨예한 사안을 다투는 일이 많다.
경찰이 된 지 3년째를 맞은 양 순경은 지난해 초 이런 11기동대를 1순위로 지망해 배치받았을 만큼 애정이 남다르다. 양 순경은 "기동대 근무가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들의 일과는 오전 7시께 시작된다. 서울 중구 신당동에 있는 서울청 11기동대로 출근해 출동 준비를 마치면 그날 신고된 집회 구역에 따라 근무지가 결정된다. 광화문, 용산, 여의도 등 당일까지도 어디로 출동할지 예측 불가능한 게 기동대 경찰관 일상이다.
곽 경장은 "기동대 특성상 경찰서 생활처럼 완전히 규칙적일 수는 없다"며 "신고된 집회라고 해도 현장 상황에 따라 언제든 변동될 수 있고 때로는 새벽 시간까지 퇴근하지 못할 때도 많다"고 전했다.
"자세히 보면 모두 다르다"…기동대 경찰 보직
오후 3시. 주최 측이 본 집회를 예고한 시각이 되자 도로에는 집회 참가자들이 눈에 띄게 불어났다. 곽 경장은 '11-1'이라고 적힌 제대기를 들고 대열 선봉에 섰다. 곽 경장이 기동대에서 맡은 보직은 '기수'다.
곽 경장은 "집회 현장에 배치된 경찰들이 겉으로는 모두 비슷해 보여도 각자 다양한 보직을 나눠 맡고 있다"며 "기수는 경찰조차도 위치 감각이 흐려질 수 있는 현장에서 제대기를 높게 들어 올림으로써 각 제대의 위치를 알리고 경찰이 효율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 뒤로 선 양 순경이 '수사목적 증거수집'이라고 적힌 카메라를 높게 들어 올렸다. 양 순경은 집회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 기동대의 '채증 요원'이다. 영상 촬영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참가자들에게 '촬영을 시작하겠다'라는 경고음을 재생하고 녹화를 시작한다. 양 순경은 "실제로 직접 찍은 영상이 법적 시비를 가리기 위한 핵심 증거로 활용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충돌 상황? "경찰 존재 이유 되새겨"
이날 다행히 충돌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일촉즉발 상황도 피할 수 없다. 곽 경장과 양 순경 역시 기동대 막내로 근무하며 느끼는 가장 큰 어려운 점으로 '집회 참가자들과의 충돌과 마찰'을 꼽았다. 고민 끝에 얻은 대답은 '기본으로 돌아가자'라는 것이었다.
곽 경장은 "집회 현장에서 격양된 상황에 맞닥뜨릴 때마다 경찰이 이곳에 왜 왔는지에 대해 되새기려고 한다"며 "집회를 평화롭고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온 것임을 기억하려 한다"고 전했다. 양 순경도 "경찰이 어떤 기준으로 법 집행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경찰이 이 부분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시킨다면 서로 격양된 감정이 누그러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각종 시위 탓에 매일매일 긴장감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지만 힘을 얻는 원동력 역시 시민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다. 곽 경장은 "한 번은 아주 첨예하다고 느낀 현장에 동원된 적이 있었는데, 현장에서 날카롭게만 보였던 집회 참가자들이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치자 '고생한다'라며 격려해줬다"며 "사소한 말일 수도 있지만 내겐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 힘이 됐다"고 회상했다.
"경찰은 어벤져스"
곽 경장과 양 순경은 모두 올해로 경찰이 된 지 3년째를 맞았다. 처음 경찰을 꿈꿀 때와 현실의 경찰 생활이 완전히 같진 않았지만, 경찰이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경찰을 한마디로 표현해 달라'라는 질문에 양 순경은 단번에 '어벤져스'라고 답했다. 양 순경은 "마블 영화에는 시민을 지켜주는 다양한 히어로들이 나오지 않나. 비록 경찰이 초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 속 마블을 대신하는 '현실 속 히어로'가 아닐까 싶다"며 "14만명의 전국 경찰이 언제, 어디서나 도움이 필요한 시민들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달라"라고 당부했다.
고민하던 곽 경장은 '우산'이라는 답을 내놨다. 그는 "날이 좋을 땐 존재조차 잊어버리지만, 비가 오면 가장 필요한 게 우산"이라며 "경찰 역시 항상 시민의 주변에 있기에 그 소중함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아도 중요한 상황에서는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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