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에서 근대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연구하는 서양 근대사 분야를 개척한 나종일 서울대 서양사학과 명예교수가 21일 오전 9시 30분께 타계했다. 향년 98세.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목포 상고, 서울대 사학과 졸업 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석사,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남대 문리대 조교수를 거쳐 1992년까지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1982~1984년 한국 서양사학회장, 1991년 영국사 연구회(1996년부터 영국사학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고인의 연구 분야는 초기 자본주의 형성사였다. 영국 농민들이 농지에서 쫓겨나 노동자가 되는 '인클로저 운동' 연구 결과를 저서 '영국 근대사 연구'(1988), '세계사를 보는 시각과 방법'(1992), '영국의 역사'(2005) 등에 담았다. 또 E.P. 톰슨(1924∼1993)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창비·2000), 이매뉴얼 월러스틴(1930∼2019)의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창비·1993), '근대세계체제'(까치·1999) 등을 번역했다. 2012년에는 1576쪽에 이르는 번역서 ‘자유와 평등의 인권선언 문서집’(한울)을 내놨다. 13세기 영국의 ‘마그나카르타’부터 2000년 유엔 ‘새천년 선언’까지 서양에서 나온 인권 관련 문서를 집대성한 책이다.
고인은 DJ와 절친인 것으로 알려졌다. 1992년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열린 나 교수의 정년 퇴임 기념 논총 증정식에 목포 상고 친구였던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가 참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생전 언론 인터뷰에서 "(DJ와) 처음 만난 것은 5년제 고교의 3학년 때입니다. 그는 1∼2학년 때 취업반에 있다가 3학년 때 진학반으로 옮기면서 저와 졸업할 때까지 계속 같이 공부했습니다"라고 회상한 적이 있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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