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배달플랫폼-입점 업체 상생협의체’ 12차 회의가 열린 정부서울청사 본관. 회의실에 입장하는 이정희 상생협의체 위원장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날은 지난 7월부터 이어진 협의체 회의 종료일이었지만 실질적인 상생안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은 낮았다. 배달 플랫폼이 가져온 중개수수료 인하안은 입점 업체가 단일 안으로 고수한 ‘5% 상한’과 여전히 차이가 컸다. 협의체 참석자들 사이에선 자질구레한 합의는 이뤄질지 몰라도 가장 중요한 수수료율에 관해선 소득 없는 빈손으로 상생협의체 활동이 종료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분위기는 쿠팡이츠가 "배달의민족이 제시한 차등 수수료 방안을 동일하게 시행하겠다"고 합의하면서 바뀌었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시장 1, 2위로 상생협의체에서도 번번이 대립했던 양사가 플랫폼 단일 안을 만들었고, 단일 안이 시행되면 당장 어려움이 큰 영세 소상공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익위원과 입점 업체 단체가 동의했다. 길어질 것으로 예상됐던 회의는 시작한 지 2시간 만에 결론을 내고 박수 소리와 함께 끝났다.
복기해보면, 결국 결렬될 것으로 여겨졌던 상생협의체가 막판에 극적으로 수수료 상생안을 도출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영세 소상공인 지원'이라는 대전제에 참가자들이 동의한 점이다. 이는 복잡다단한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잊혔던 상생협의체의 본래 취지다.
이번 상생안에 대해 입점 업체가 부담해야 하는 배달비가 올랐으니 꼼수라는 지적도 있다. 일부 입점 업체 단체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거래액이 커 상대적으로 혜택이 적은 프랜차이즈 기업이나 대형 가맹점주의 입장에서는 이번 상생안이 부족하다고 여길 수 있다. 플랫폼이 매출 감소를 무릅쓰고 수수료 인하안을 가져온 진짜 이유는 자발적인 합의를 하지 못하면 입법을 통해 규제당할 가능성을 우려해서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번 상생안으로 영세한 식당 자영업자가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거래액이 가장 적은 구간의 가게는 공공 배달앱 수준으로 수수료가 낮아진다. 중간 구간의 가게도 실질적인 수수료 인하 혜택을 본다. 이정희 위원장도 마지막 브리핑에서 "배달비까지 고려해도 소상공인 부담이 낮아지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제부터의 과제는 인하 효과가 고스란히 작은 식당을 하는 영세 자영업자에게 가도록 하는 것이다. 공익위원도 배달플랫폼이 다른 명목으로 입점 업체 부담을 증가시키는 '풍선효과'를 만들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예를 들어, 배달 앱이 광고비를 올리면 기껏 만든 수수료 인하 효과가 사라질 수 있다. 혹시라도 이런 꼼수가 생기지 않도록 소비자를 포함해 모두가 지켜봐야 한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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