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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계]남극기지 ‘표준 의약품 리스트’를 만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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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계]남극기지 ‘표준 의약품 리스트’를 만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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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기지에 의사로 와서 약품부터 확인했습니다. 반 정도는 유효기간이 지났더군요.”


“학회 차원에서 ‘극지의료 공급 의약품 및 의료품 표준화 연구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필수의약품 재고를 상시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지난 10월 17일 오후. 인천시 극지연구소 세종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제15회 대한극지의학회 학술대회’의 핵심 안건은 ‘의약품 관리’였다. 극지의학회는 남극기지 근무 경험이 있는 의사들이 모여 만든 공식 학회다. 이날 행사에선 남극 현지 파견 의사들도 인터넷 원격접속을 통해 학회에 참석하고 ‘의약품 관리체계 개선이 시급하다’고 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의사를 파견하는 극지 연구기지는 총 2곳. 남극 킹조지섬 ‘세종과학기지’와 남극 대륙(본섬) ‘장보고 과학기지’다. 파견 의사는 남극에서 겨울을 보낸다고 해서 흔히 ‘월동의사’라고 부른다. 여기에 더해 수개월 이상 차가운 바다를 누비는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도 선의가 탑승해 선원들의 건강관리를 맡고 있다.


남극에는 본격적인 의료설비를 갖춘 과학기지가 적지 않다. 미국이 운영 중인 과학기지 ‘맥모도’엔 대규모의 의료시설이 있고 상주 의사도 여러 명이다. 이탈리아 과학기지 ‘마리오쥬켈리’엔 본격적인 수술에 대비해 마취 의사까지 상주한다.


반면 한국 남극기지는 해마다 의사 한 사람을 파견해 진료를 일임하는 식이라 체계적인 운영에는 약점이 있다. 그 중에서도 월동의사 경험자들이 가장 시급하게 여기는 것이 ‘의약품 관리체계 개선’이다. 지금은 남극에 의사가 도착해 기지 내 의약품 재고를 살펴본 다음, 필요한 것들을 다음번 보급 때 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식인데, 이 일이 녹록지 않아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밤이 8개월간 계속해서 이어지는 ‘극야’ 기간엔 기지까지 쇄빙선이나 항공기 접근이 어렵기 때문이다. 월동의사의 전공이나 치료방법에 따라 필요 약품이 다르기 때문에 전임자가 구입해 둔 약이 쓸모없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극지의학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개월 간 ‘극지의료 공급 의약품 및 의료품 표준화 연구작업’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이번 학술대회에서 공개했다. 실제로 필수의약품 목록은 의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 조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의료기관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의약품 목록을 지정하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도 우주탐사 과정에 필요한 필수 의약품 목록을 지정한 바 있다.


극지의학회는 남극 의료 경험자를 대상으로 조사와 분석을 거쳐 ‘대한민국 남극기지’에 꼭 필요한 약품과 물품을 선별했다. 진통제, 지혈제, 항생제 등 기본 약품은 물론 소화기질환, 안구질환, 피부질환, 심혈관질환, 심폐질환, 심지어 정신건강질환까지 대응할 수 있도록 증세별 165개 약품 목록을 꼽았다. 보급이 끊어져도 최소 수개월은 견딜 수 있도록 항목별 필수 보유량까지 제안하고 있어 남극 현지 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별도로 붕대나 거즈, 검사지, 장갑, 소독약 등 300여 개의 의료 소모품 목록도 정리했다.


연구 책임자인 민선영 아산병원 외과 교수(전 아라온호 선의)는 “이번 연구는 남극 과학기지가 보유해야 할 의약품 및 물품 목록을 최소 수준에서 정리한 것”이라며 “앞으로 더 많은 극지 진료 데이터가 확보, 분석해 보유 약품 및 물품 목록을 지속해서 업데이트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런 노력이 있기에 매년 아라온호를 타고 극지에서 연구하고 오는 한국 연구진들의 건강도 지켜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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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민 과학기술 전문 저술가, 파퓰러 사이언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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