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해서는’ 곤란한 장관·총장
국정감사장 나란히 출석은 처음
국회서 수사 지휘 압박 모양새
“장관님께서 지금 저기 앉아 있는 검찰총장에게 명태균 관련해서 ‘수사단 구성해라’ 이렇게 지시하시면 되는 사안입니다. 장관님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 박성재 법무부장관에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 마지막 날인 10월 25일, 박성재 법무부장관과 심우정 검찰총장이 나란히 앉아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이례적 장면이 연출됐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국감에 함께 참석한 것은 처음 있는 일. 두 기관장은 그 지위와 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항상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왔는데, 정치권의 요구로 국감장에 나란히 앉은 초유의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같은 자리에 안 간다” 오랜 불문율
연말 법조계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로 ‘천고법치문화상’ 시상식이 있다. 송종의 전 법제처장이 사재를 털어 국법질서 확립과 법치주의 확립에 기여한 법조인과 법조 단체에 주는 상인데, 매년 11월 열리는 행사에 현직 법원행정처장과 전현직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등 법조 고위직들이 대거 참석한다. 지난해 7회까지 치른 이 행사에 현직 법무 장관과 현직 검찰총장이 함께 참석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는 “법무 장관과 검찰총장은 같은 자리에 안 간다”는 오랜 불문율 때문이다. 매년 4월 25일 ‘법의 날’ 기념식과 같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장관과 총장이 동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법무부 장관의 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과 검찰총장의 독립성 중립성 이슈 때문이다.
이처럼 두 기관장은 운명적으로 ‘가까이할 수 없고, 가까이 해서도 안 되는 사이’인데, 이 불문율과 금도가 깨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간부급 검사는 “장관과 총장이 항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검찰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이번 국감은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에 간접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줄 수 있거나, 그렇게 보일 수 있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국감에서 박 의원은 박 장관에게 ‘서울중앙지검에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해 명태균 씨 불법 여론조사 의혹을 수사하라’는 취지로 검찰총장에게 수사지휘를 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박 장관은 “창원지검에 인력을 보강해 수사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럼에도 박 의원은 “창원지검은 수사 의지가 없다”며 서울중앙지검에 별도 수사팀을 꾸려야 한다고 압박했다.
검찰 내부에선 이 같은 질의가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정치적으로 압박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질의를 통해 검찰총장에게 직접적인 수사 지침을 요구하는 모양이 됐기 때문이다.
국회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을 무분별하게 소환할 수 있는 선례가 반복되면 대검 반부패부장과 서울중앙지검장도 모두 한꺼번에 국감에 소환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전직 검사장은 “이렇게 되면 검찰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은 물론 검찰 구성원 모두의 자긍심까지 다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에는 법무부와 검찰 간의 긴장 관계가 두드러졌다. 문 정부는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법무부의 탈검찰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문 정부에서 임명된 박상기·조국·추미애·박범계 전 법무부장관 4명 모두 검찰 출신이 아니었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2020년 1월 7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취임 후 첫 회동을 했다. 당시 법무부는 이 회동을 두고 “장관 취임에 따른 검찰총장의 통상적 예방이었고 새해 인사를 비롯한 덕담과 환담이 있었다”고 발표했지만, 장관과 총장 회동의 배경과 내용에 대해 관심이 집중됐고 뒷말도 많았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긴장관계에 대한 필요성은 법원 판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윤석열 당시 총장이 추미애 당시 장관을 상대로 낸 직무집행정지처분 집행정지신청 사건(2020아13354)에서 서울행정법원은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구체적인 지휘 감독권 행사는 민주적 통제를 달성하기 위해 최소한에 그칠 필요가 있다”며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에게 맹종할 경우 검사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유지될 수 없다”고 밝혔다.
지금 뜨는 뉴스
임현경 법률신문 기자
※이 기사는 법률신문에서 제공받은 콘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