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배드파더스' 운영자 구본창씨 이어 또 유죄
"특정인의 양육비 미지급 공적 관심사안 아냐"
이혼 후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아빠의 신상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한 '배드페어런츠' 사이트 운영자에게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양육비 해결 모임' 강민서 대표의 상고심에서 강 대표의 상고를 기각, 강 대표에게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에서의 전파가능성, 비방할 목적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강 대표의 상고를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강 대표는 2019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부모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배드페어런츠(옛 배드파더앤마더스) 사이트에 이혼 후 15년 가까이 두 자녀의 양육비를 미지급한 A씨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캡처해 올리면서 A씨의 이름과 나이, 거주지 등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당시 강 대표는 해당 게시글에 '미지급금액 약 1억원', '아들은 몸이 불편해 수술을 수차례 했지만 절대 외면하는 비정한 아빠', '인천중구 거주 평창올림픽 스키강사 출신', '다른 가족 명의로 사업을 하지만 양육비는 줄 돈 없는 파렴치한'이라고 적었는데, 검사는 이 중 '올림픽 스키강사 출신'이라는 부분과 '다른 가족 명의로 사업을 했다'는 부분이 허위라고 보고 정보통신망법 제70조 2항을 적용해 기소했다.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규정한 정보통신망법 제70조 2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1심 법원은 강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강 대표가 게시한 글 중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대체로 실제 사실을 토대로 하고 있고, A씨의 배우자로부터 직원이 전달받은 자료들을 확인하고 설명을 들은 강씨가 전체 게시글 중 일부가 허위라는 사실을 인식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봤다.
A씨는 스키강사로 활동한 적은 없지만 스키강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었고, 평창올림픽 당시 스키 관련 운영 임원을 지낸 이력이 있었다. A씨의 배우자가 보낸 자료에는 딸이 1인 피킷 시위를 하고 있는 사진, A씨에게 위자료 2000만원 포함 약 9200만원의 양육비 지급을 명한 판결문 등이 포함돼 있었다.
1심 재판부의 이 같은 판단에 검찰은 항소심에서 공소장 변경을 신청, 예비적 공소사실로 정보통신망법상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를 추가했다.
정보통신망법 제70조(벌칙) 1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한 경우도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
2심 법원은 검찰이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한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를 유죄로 인정, 강 대표에게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에서 강 대표 측은 강 대표가 적시한 사실들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비방할 목적'이 부인된다고 주장했다.
강 대표 측은 ▲사회 전반적으로 이혼 가정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양육비 미지급 문제는 국가·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공익적 문제라는 점 ▲강 대표가 사이트를 운영하며 양육비를 미지급한 부모의 인적사항을 공개하는 동기 내지 목적이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 ▲이와 같은 노력으로 2020년경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이행법)이 개정돼 감치명령에도 불구하고 양육비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운전면허 정지, 출국 금지, 명단 공개, 형사처벌 등이 가능해졌고, 양육비 채무자의 성명, 나이 및 직업, 양육비 채무자의 주소 또는 근무지, 양육비 채무 불이행기간 및 양육비 채무액을 공개할 수 있게 된 점 ▲A씨의 인적사항을 공개하면서 욕설 등 악의적으로 공격하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적시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없고, 피고인이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관계를 적시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라며 강 대표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먼저 재판부는 공개대상자에게 큰 불이익이 가해지는 신상공개 제도는 법률에 근거가 있을 때 국가기관에 의해 이뤄져야지, 개인이나 사적인 단체에 의해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현행법상 사진까지 공개되는 신상공개는 성범죄자의 경우가 유일한데, 그 경우에도 엄격한 절차를 거쳐 비공개 결정이 내려지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자의적인 판단에 맡겨져서는 안 된다는 이유다.
재판부는 "신상공개는 공개대상자에게 가해지는 불이익이 매우 크기 때문에 처벌이나 간접강제수단으로 필요하거나 유용하다고 일응 판단될 때에도, 법률에 규정된 경우에 한해 국가기관에 의해 엄격한 절차를 거쳐서 신중하게 행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실제 신상공개를 할 수 있는 경우는 몇 개의 법률에 매우 제한적으로 규정돼 있고, 사진까지 공개되는 것은 성범죄자 신상공개 제도가 유일하며, 성범죄자 신상공개 제도의 경우에도 제반 사정을 고려해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법률에 규정이 마련돼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사적 단체에 의해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별다른 절차를 거치지도 않은 채 전파성이 매우 큰 인터넷게시판에 공개된 신상정보는 객관적으로 볼 때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개정된 법에 따르더라도 이번 사안은 그 요건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고 봤다.
즉 국가기관이 아닌 개인 내지 사설단체가 신상을 공개했고, A씨에 대한 감치명령이 선행되지도 않았던 점, 소명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았고, 법에서 정한 공개범위를 훨씬 넘어서 공개가 이뤄진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또 재판부는 '특정인의 양육비 미지급 사실'은 공적 관심의 대상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공인도 아니다"라며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공적인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특정인의 양육비 미지급 사실 자체가 공적 관심사안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건 게시글의 주요한 게시 목적은 피해자의 전 배우자에 대한 양육비 지급을 강제하기 위한 것인데, 일반적으로 사인간의 채권 추심 목적을 공익적이라고 평가할 수도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문제된 양육비 채권은 과거에 발생한 것이다. 피해자와 전 배우자는 20여년 전 이혼했고, 그 자녀들은 각 1992년생, 1994년생으로 성년이다"라며 "그들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피고인의 양육비 미지급으로 큰 고통을 받아 왔으리라는 점은 자명하나, 이 사건 게시글의 게시 시점에서 볼 때 자녀들은 모두 성년이 된 지 오래됐으므로, 미성년인 자녀의 복리가 위태롭게 될 우려가 있어 특별한 보호를 요하는 양육비채권의 특수성은 많이 희석된 상태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비상적인 조치를 취함으로써 긴급하게 이를 지급하도록 강제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주관적 측면에서도 '비방의 목적' 없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한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게시글은 피해자가 단순히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피해자의 사진을 여러 장 게시하고, 이름, 나이, 출생지, 미지급 양육비 액수에 더해 몇 가지 사항을 부가했다"라며 "그 내용이나 표현방법이 상당히 공격적이고, 양육비를 미지급한 피해자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피해자의 전 배우자가 원하는 문구를 그대로 게시한 것으로, 전 배우자의 분노와 피고인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그대로 투영됐다"라며 "비록 게시 주체가 피고인이라 해도 그 게시 목적을 피해자의 전 배우자의 그것과 달리 평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재판부는 "전 배우자의 게시 목적은 전파성이 강한 인터넷 게시판에서 피해자를 양육비 미지급자로 공개적으로 비방해 피해자의 주변 인물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인이 피해자를 비난 내지 공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 불이익을 감당하지 못한 피해자의 양육비 지급을 강제하려는 것이므로, 이 사건 게시글의 게시 목적이 비방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강 대표가 상고했지만 대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원심의 판단에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죄에서 전파가능성, 비방할 목적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
재판부는 "이 사건 피해자(A씨)는 2005년 4월 대법원에서 확정된 이혼 판결에 따라 부담하는 자녀 2명에 대한 양육비 지급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종전 배우자는 위 판결의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소를 다시 제기해 2017년 10월 양육비 7144만 원 등에 대한 승소판결을 받는 등 자녀들을 홀로 양육하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은 양육비 해결 모임 카페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에 피해자의 사진과 거주지, 직업, 위와 같은 양육비 미지급 사실 및 이를 비난하는 문구를 함께 게시했고, 그 과정에서 사실확인 절차를 거치거나 피해자에게 충분한 소명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게시한 2019년경 당시 피해자의 자녀들은 이미 성년이 돼 '현재 양육비 지급이 급박하게 필요한 상황'이었다고는 볼 수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2021년 1월 12일 개정된 양육비이행법에서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 명단 공개 제도(제21조의5)가 도입됐다"라며 "위 명단공개는 양육비 이행명령 결정에도 불구하고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양육비 채무자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에 대해 양육비 채권자의 신청에 의해 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채무자의 성명, 나이 및 직업, 주소 및 근무지, 채무 불이행기간 및 양육비 채무액에 한해 공개하되, 채무자에게 3개월 이상 소명 기회를 주도록 돼 있다(시행령 제17조의4)"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 피해자에 관한 정보 공개 절차 및 그 내용이 위 명단 공개와 달리 이뤄졌음은 앞서 본 바와 같다"고 했다.
대법원은 올해 1월에도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공개 사이트의 원조격인 '배드파더스' 운영자 구본창씨(61)에게 "사적 제재 수단의 일환에 가깝다"며 유죄 판결을 확정한 바 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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