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쇼 개척자, 낙태·인종 등 다양한 소통
에미상 9회 수상…오프라 윈프리 "도나휴 없었으면 오프라 쇼도 없었다"
미국의 유명 토크쇼 진행자 필 도나휴(Phil Donahue)가 18일(현지 시간)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88세.
뉴욕타임스(NYT)는 19일 유족 측이 성명을 통해 도나휴가 전날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지병으로 사망했음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도나휴는 29세이던 1967년부터 1996년까지 청중이 참여하는 최초의 낮 프로그램인 '더 필 도나휴 쇼'(도나휴 쇼)를 진행했다. 그는 게스트에게 공격적인 질문을 던지고, 스튜디오를 돌아다니며 청중과 직접 소통하는 등 파격적 진행을 선보여 시선을 집중시켰다.
도나휴 쇼는 당시 낮 프로그램이 주 시청자인 여성을 겨냥한 드라마, 게임 쇼, 가사 프로그램이었던 것과 달리 금기시되던 낙태, 인종 관계, 성 혁명 등의 민감한 주제를 다루면서 높은 인기를 끌었다. 1988년엔 토크쇼 사상 최초로 가톨릭교회 내에서 벌어진 어린이들에 대한 성적 학대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이를 비롯해 페미니즘, 동성애, 소비자 보호, 시민권 등 도나휴 쇼는 당시 사회적으로 뜨거운 다양한 이슈를 총망라했다. 이에 지난 1979년 피플지는 도나휴 쇼에 대해 "미국 주부들을 위한 전국적인 포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종전까지 정형화된 토크쇼와 차별화한 그의 새로운 진행 방식은 이후 '오프라 윈프리 쇼' 등 다른 TV 토크쇼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필 도나휴가 없었다면 오프라 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도나휴는 최우수 토크쇼 진행자로 9회의 데이타임 에미상을 받았다. 지난 5월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도나휴에게 최고 영예 훈장인 '대통령 자유 메달'을 수여했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도나휴가 수천 번의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국가의 담론을 이끌었다”고 밝혔다.
미 연예매체 버라이어티는 도나휴 쇼의 인기 요인으로 위협적이지 않은 부성적인 이미지와 여성 청중과의 유대감과 공격적이지 않으면서도 강력한 날카로운 인터뷰 스타일을 꼽았다. 그는 1980년 “불쾌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능력과 타고난 정직함이 돋보인다“는 평가 속에 미국 방송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히는 ‘피바디상’을 받았다.
하지만 도나휴는 1980년대 후반 오프라 윈프리를 비롯한 후발 토크 쇼 진행자의 프로그램과 경쟁에 밀리면서 은퇴를 선언했다. 도나휴 쇼는 1996년 종영까지 약 7000개 에피소드를 방영했다. 은퇴 후 도나휴는 2002년 MSNBC를 통해 잠시 방송 활동을 재개하기도 했다.
고인의 가족은 성명에서 조화 대신 세인트 주드 어린이 병원 또는 필 도나휴·노트르담 장학 재단에 기부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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