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김범수 구속…사상 첫 총수 부재
중심 잃은 경영 쇄신·힘 빠진 신사업 '우려'
카카오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총수 부재' 사태를 맞았다.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주식 시세조종에 개입한 혐의로 창업자인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이 구속되면서다. 경영 전면에 나서 쇄신을 진두지휘했던 김 위원장의 부재로 카카오는 시계제로 상황에 처했다. 쇄신 작업에 동력을 잃은 가운데 신사업 추진에도 급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국내 대표 플랫폼인 카카오로 IT 제국을 일군 벤처 1세대가 구속 신세로 전락하자 IT 업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23일 한정석 서울남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김 위원장에 대해 "증거 인멸 우려와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카카오가 에스엠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사였던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시세를 조종했다고 본다. 김 위원장이 이런 사실을 보고 받은 뒤 지시 혹은 묵인한 것으로 파악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위원장은 줄곧 혐의를 부인했다. 이달 초 검찰 조사에서 "에스엠 주식을 장내 매수하겠다는 안건을 보고받고 승인한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매수 방식과 과정에 대해서는 보고받지 않아 몰랐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8일 카카오 임시 그룹 협의회에서는 "현재 받고 있는 혐의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어떤 불법 행위를 지시하거나 용인하지 않은 만큼 결국 사실이 밝혀지리라 믿는다"고 했지만 구속을 피하지 못했다. 이날 카카오는 김 위원장 구속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구심점 잃은 경영 쇄신
그간 경영 쇄신에 집중했던 카카오는 구심점을 잃게 됐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월 비상 경영을 선언하고 경영 일선에 나섰다. 그룹 컨트롤타워인 CA협의체 공동의장과 산하 경영쇄신위원장을 직접 맡았다. 공석이 된 자리는 CA협의체 공동의장인 정신아 카카오 대표나 경영쇄신위원회에 소속된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가 대신할 수 있지만 김 위원장 역할을 대체하기는 어렵다. 기존 자율 경영 체제에서 벗어나 중앙 집권 체제로 체질을 개선하고 성장 방식을 재정립하기 위해선 계열사까지 장악할 수 있는 김 위원장의 존재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CA협의체가 반쪽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카카오는 다시 쇄신 작업에 발목을 잡힐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각 계열사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최종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김 위원장"이라며 "김 위원장이 없는 상황에서 중앙의 그립감이 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해외 진출을 위한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처럼 굵직한 의사결정은 당분간 어려워질 전망이다. 사법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지난해 12월 카카오페이의 미국 증권사 시버트 인수가 무산된 바 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추진한 유럽 최대 택시 호출 플랫폼 프리나우 인수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상장 전 지분투자(프리IPO) 단계에서 약속했던 계약 조건을 올해 말 재협의해야 한다. 안팎의 상황을 고려하면 IPO 시점이나 기업가치를 보수적으로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카카오를 둘러싼 다른 사법 리스크도 최고조에 달했다. 이번 수사를 의뢰한 금융감독원은 카카오 법인과 경영진을 함께 검찰에 넘겼다. 에스엠 인수 재판 결과에 따라 핵심 자회사인 카카오뱅크 대주주 지위를 내려놔야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인터넷은행특례법은 대주주가 '최근 5년간 조세범 처벌법,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공정거래법 등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카카오 법인에 벌금형이 내려지면 카카오뱅크 보유 지분(27.17%) 가운데 10%만 남기고 나머지는 처분해야 한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분식회계 의혹으로 제재가 임박한 상황이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내달 제재 수위를 최종 논의하고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금감원은 가장 높은 양정 기준을 적용해 류긍선 카카오모빌리티 대표 해임을 권고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고의적인 분식회계로 결론 날 경우 수사가 진행될 수 있다.
힘 빠진 성장 동력
차기 성장 동력인 인공지능(AI) 신사업에도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이동통신 3사, 네이버 등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앞다퉈 생성형 인공지능(AI) 서비스를 내놨지만 카카오는 감감무소식이다. 올 하반기 카카오톡에 AI를 접목한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이지만 시장의 기대는 이미 약해졌다. 지난해부터 서비스 예고에만 그친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속도전이 중요한 AI 사업에서 각종 논란으로 적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 밀려 플랫폼 영향력이 줄어드는 와중에 신사업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
부진한 주가에도 추가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이날 카카오 주가는 4만350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연초 고점과 비교하면 30% 넘게 빠졌다. 이에 따라 한때 시가총액 3위 자리에서 현재 20위로 밀렸다. 연이은 악재에 증권가는 카카오 목표주가를 내려 잡고 있다. 삼성증권은 카카오의 목표가를 13.6% 낮춘 5만1000원으로 조정했다. SK증권과 흥국증권 역시 각각 20.5%, 9.5% 하향 조정했다. 오동환 삼성증권 연구원은 "에스엠 인수 관련 검찰 조사 등 사법 리스크로 경영진의 리소스가 분산됐다"며 "재도약을 위한 공격적인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서는 사법 및 규제 리스크 해소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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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업계에선 김 위원장 구속에 주목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IT 신화를 쓴 벤처 1세대로 꼽힌다. 삼성SDS에서 유니텔을 만든 그는 삼성을 떠나 1998년 한게임을 설립한 뒤 네이버와 합병해 NHN을 만들었다. 이후 NHN을 떠난 김 위원장은 2010년 카카오톡을 세상에 선보이며 '연쇄 창업가'의 대표주자가 됐다. 창업가들의 롤모델인 김 위원장이 구속되자 업계는 충격에 휩싸인 분위기다. 익명을 요청한 한 관계자는 "빠르게 성장한 IT 업계에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며 "후유증에 대처할 수 있는 성숙함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최유리 기자 yr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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