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이란 등 15國 출신 12개 종목 출전
2015년 만들어진 난민팀, 올해 사상 최대
대부분 생계 밥벌이 하면서 훈련 병행
"운동이 유일한 희망", "세계가 평화 찾길"
"내가 올림픽에 참가한다는 사실 자체가 난민과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아이에게 보내는 하나의 메시지가 될 겁니다."
2024 파리올림픽 브레이크 댄스 여자 부문에 참가하는 21세 선수 마니자 탈래시는 최근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2021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할 당시 댄스 크루들과 함께 조국을 떠나 스페인에 정착했다. 4년 전 17세 소녀였던 그는 브레이크 댄스 영상을 보고 춤을 시작했다. 아프간에서 몰래 브레이크 댄스를 배웠던 탈래시는 이제 세계적인 무대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춤을 선보인다.
26일(현지시간) 진행된 2024 파리올림픽 개막식에서 고대 올림픽 발상지인 그리스에 이어 두 번째로 입장한 난민 대표단이 주목받고 있다. 스포츠로 자국 국가대표 자리에 올랐으나 내전 등 비극적인 사건을 겪고 자국을 떠나 난민 신분으로 올림픽에 어렵게 입성한 37명의 선수가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꿈을 펼친다.
난민팀은 내전과 전쟁, 차별 등 피치 못할 사유로 조국을 떠난 선수들이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결성한 특별팀이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2020 도쿄 올림픽에 이어 세 번째로 구성됐다. 2016년 첫 팀 구성 당시만 해도 그 규모가 3개 종목에 선수 10명 정도였지만, 이후 확대돼 이번에는 사상 최대 규모로 꾸려졌다.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난민팀에는 아프가니스탄, 카메룬, 쿠바, 이란, 남수단, 수단, 시리아, 베네수엘라 등 15개국에서 온 37명의 선수가 소속돼 태권도, 사이클, 수영, 유도 등 12개 종목에 출전한다. 선수들은 각자 IOC 지원 등으로 서방 국가에서 개별로 올림픽을 준비하다가 개막식을 앞둔 지난 18일부터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지방 북부에 있는 도시 바이외에 집결해 사전 캠프를 진행했다.
어렵게 프랑스 땅을 밟은 난민 선수들은 올림픽 참가 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목숨을 걸고 조국을 떠나 서방 국가에 정착했으나 생계 등을 이어가느라 운동을 지속하기는 쉽지 않았다.
탈래시와 마찬가지로 아프간 출신인 난민팀 태권도 선수 파르자드 만수리는 2021년 개최된 2020 도쿄 올림픽에 19세 나이로 아프간 국가대표로 출전했고 개막식 기수로도 활동한 바 있다. 하지만 2021년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으로 조국을 떠나 아부다비 난민 캠프를 거쳐 영국 맨체스터로 대피했다. 그는 태권도 국가대표팀 동료가 카불 공항에서 벌어진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며 "그때가 정말 힘든 순간이었다. 이제는 내 조국과 전 세계가 평화를 찾을 수 있길 진정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이란 출신의 29세 레슬링 선수인 이만 마다비는 2020년 터키를 거쳐 이탈리아에 정착했다. 밀라노의 한 클럽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며 훈련을 병행해온 그는 "난민이 됐을 때 레슬링이 유일한 희망이었다"며 "처음엔 클럽에서 훈련을 할 수가 없어서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게 하려고 달리기로 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의 가슴에는 올림픽 오륜기 문신이 새겨져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2016년 에티오피아를 떠나 2017년 프랑스에 정착한 육상 선수 파리다 아바로게는 여자 1500m 부문에 출전한다. 23세였던 그는 조국을 어렵게 떠나 수단, 이집트, 리비아를 돌고 돌아 겨우 프랑스로 오게 됐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제대로 식사를 챙기지 못하고 의료 사고도 발생했지만, 프랑스 현지 지자체와 난민 자선단체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다시 운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현재 스트라스부르의 창고에서 택배 포장 업무를 하면서 훈련 중인데, IOC의 도움으로 두 달간 무급 휴가를 받아 올림픽에 출전했다.
아바로게는 "홀로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내게 인생에서 열정을 일으키는 요소가 무엇인지 물었고 나는 스포츠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그들이 운동화를 사줬고 그걸 신고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함께 창고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이 날 응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난민팀 막내인 20세의 배드민턴 선수 도르사 야바리바파는 이란을 떠나 올림픽에 출전하게 됐다. 여성과 남성 스포츠를 철저히 구분한 이란의 문화로 그에게 배드민턴을 권유하고도 경기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야바리바파의 아버지는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딸의 경기를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는 난민팀 선수들 가운데 가장 메달 획득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권투선수 신디 응암바다. 그는 동성애를 불법으로 규정한 카메룬을 떠나 영국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가디언은 난민팀 소속으로 응암바가 처음 메달을 딸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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