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위협하는 강달러 현상이 재현되면서 주요 시중은행의 달러 예금이 반년 새 12조원 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달러 가치가 크게 오르자 차익 실현에 나선 예금주들이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27일 기준 달러화 예금 잔액은 약 538억8100만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말(629억2800만달러) 대비론 90억4700만달러(14.38%) 감소한 수치다. 반년 새 원화로 12조5000억원어치의 달러 예금이 빠져나간 것이다.
이렇듯 반년 새 10조원이 넘는 달러 예금이 빠져나간 이유론 환율 급등에 따른 '차익 실현'이 꼽힌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원·달러(종가) 환율은 지난해 12월 28일 1288.00원으로 출발한 이래 1월 말 1334.60원, 2월 말 1331.50원, 3월 말 1347.20원, 4월 말 1382.00원, 5월 말 1384.50원 등 추세적인 상승세를 나타냈다.
지난달 24일엔 원·달러 환율이 1389.00을 기록, 1400원대의 턱밑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런 흐름에 따라 연중 5대 시중은행의 달러 예금 잔액도 1월 말 593억달러, 2월 말 578억 달러, 3월 말 573억달러, 4월 말 558억달러, 5월 말 532억달러 등으로 줄곧 감소세를 나타냈다.
최근 이런 강달러 현상은 최근 중국, 유럽 등 미국 이외 시장의 경기침체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최근 영국·프랑스가 조기 총선을 결정하는 등 정치적 불안정성을 키우고 있는 것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전날 진행된 프랑스 1차 총선에선 극우 성향의 국민연합(RN)이 출구조사 1위를 기록, 사상 첫 집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오는 4일 조기 총선을 진행할 영국에서도 노동당이 40% 안팎의 지지율로 20% 안팎의 지지율을 기록 중인 집권 보수당을 압도하고 있다.
지난달 27일까지 달러 예금이 전월 말(532억1300만달러) 대비 소폭(1.2%)의 증가세를 나타낸 데 대해선 추가 환율상승 가능성을 염두에 둔 일부 매수세가 나타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Fed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고 있지만 올 하반기엔 미국 대통령 선거 등도 남아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흐름을 염두에 두고 추가 환율 상승을 기대하는 일부 수요가 쏠린 게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시장에선 당분간 원·달러 환율이 1300대 후반에서 등락을 거듭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프랑스 등의 조기 총선이 마무리되면 강달러 압력은 줄어들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미국 이외 시장의 경기 및 통화정책과 수출 등 기본조건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대신증권은 이날 보고서를 통해 "이번 주 영국·프랑스 조기 총선으로 유럽 주요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일부 마무리되면, 추가적 달러 강세압력은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달러가 약세로 전환되기 위해선 미국 통화정책 방향성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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