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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읽다]200년간의 대기 기록 '운명의 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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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연구소 아라온호 탐사팀 올해 남극 연구 마쳐
스웨이츠 심부 빙하 시추 성공
스웨이츠 빙붕 녹이는 새로운 기작 세계 최초 제시

1911년 로알 아문센이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 후 세계 각국은 경쟁하듯 남극을 연구하고 있다. 왜일까. 향후 예상되는 영토 분쟁에 대비함은 물론, 남극에 분포한 자원을 선점하려는 이유도 있겠지만 기후변화와 그에 따른 남극 빙하 붕괴를 막기 위한 힌트를 얻기 위함이 빠질 수 없다.


우리 연구진도 남극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영역을 넓혀오고 있다. 쇄빙 탐사선 아라온호에 탑승한 극지연구소 연구진은 해마다 10월경 한국에서 출발해 5월 귀국 시까지 남극을 탐사해왔다. 아라온호가 2010년 첫 남극 탐사를 시작한 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남극으로 향했다.

[과학을읽다]200년간의 대기 기록 '운명의 빙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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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탐사에서도 상당한 연구 성과가 나왔다. 특히 남극에서도 기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고립된 지역에서 최초로 빙하 시추에 성공한 것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극지연구소 한영철 박사 연구팀은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 인도 국립 극지-해양 연구센터 등 국제공동연구팀과 함께 지난 1월, 서남극 스웨이츠 빙하 인근의 카니스테오 반도(Canisteo Peninsula)에서 두 지점의 빙하를 시추해 각각 150m 길이의 빙하 코어를 확보했다.


극지의 눈은 여름철에도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 60~100m 깊이에서 얼음으로 변한다. 이렇게 형성된 얼음에는 강설 당시의 공기가 기포 형태로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를 분석하면 과거의 대기 조성은 물론 대기환경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연구자들은 지구 대기환경 변화의 ‘냉동 타임캡슐’로 불리는 ‘빙하 코어’를 채취한다.


우리 연구진은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주변에서는 빙하 코어를 시추했지만, 연구가 시급한 빙하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아 연구가 지연돼 왔다.

[과학을읽다]200년간의 대기 기록 '운명의 빙하'

과학자, 시추 기술자, 안전요원 등 8인으로 구성된 한영철 박사 연구팀은 이번 탐사에서 남극에서 가장 빠르게 녹고 있으며, 없어지면 연쇄적으로 서남극 빙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어서 ‘운명의 날(Doom’s Day)’ 빙하로 불리는 스웨이츠 빙하(Thwaites Glacier)에서 빙하 코어 시추에 성공했다. 우리 연구팀이 과학기지가 아닌 연구선 지원만으로 빙하 시추를 시도해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빙하 시추는 극지연구소가 미국 미네소타 대학, 인도 국립 극지-해양 연구센터 등과 공동으로 추진한 로스-아문센 해안 빙하 코어 연구 프로젝트(Ross-Amundsen Ice Core Array, RAICA)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과학을읽다]200년간의 대기 기록 '운명의 빙하'

스웨이츠 빙하는 주변에 기지가 없어 접근이 어렵다. 이 때문에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로 연구 지역 근처까지 접근한 후 헬기를 타고 현장으로 이동해야 한다. 탐사가 이뤄진 1월의 북반구는 한겨울이지만 계절이 반대로 바뀌는 남반구는 한여름이다. 여름내 기온이 오른 서남극 바다는 큰 얼음판들이 쪼개지는 일이 흔해져 쇄빙연구선 운항도 쉽지 않다.


탐사팀이 확보한 빙하 코어에는 지난 200년간의 대기 기록이 담겨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극지연구소는 남극에서도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한 지역에서 확보한 이 빙하 코어를 산업화 이후 환경 변화를 정밀하게 복원하는 연구에 사용할 예정이다. 빙하 코어는 귀국 중인 아라온호 냉동창고에 실려 5월 중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다.

[과학을읽다]200년간의 대기 기록 '운명의 빙하'

한영철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어렵게 잡은 탐사 기회지만 평균 30m/s가 넘는 강풍, 폭설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임무를 완수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아라온호 서남극 탐사를 총괄한 이원상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기지에서는 갈 수 없는 곳에서 빙하 시추에 성공함에 따라 대한민국의 극지 연구 역량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극지연구소 연구팀은 남극 연구 중 우리가 개발한 레이더 기술로 3500m 두께의 빙하 탐사에도 성공했다. 두께가 3000m 이상인 빙하에는 최소 150만년 전의 대기 정보가 담겨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주한 박사 연구팀은 미국 앨라배마 대학교와 함께 개발한 심부빙하투과 레이더로 지난해 말 남극 내륙 돔 C 지역을 탐사했다. 돔 C 지역은 남극에서 가장 두꺼운 빙하가 있다고 알려진 곳 중 하나다. 장보고과학기지와 약 1300㎞ 떨어진 먼 곳에 있다.


연구팀은 이번 탐사를 통해 빙하층은 물론, 빙하 아래 남극 대륙의 구조, 빙저호의 유무까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각 데이터를 얻었다. 연구팀은 앞으로 데이터 분석과 보완 과정을 거쳐, 향후 3년간 심부빙하 시추를 할 후보 지역을 선별한다는 계획이다.


현지 탐사 결과는 연구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극지연구소는 남극의 빙하가 사라지는 것을 막는 얼음벽이 무너지는 원인을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빙붕(ice shelf)은 빙하가 바다로 흘러 들어간 뒤에도 떨어지지 않고 빙하와 연결된 상태를 유지하는 수백 미터 두께의 ‘얼음벽’이다. 대륙 위 빙하가 바다로 유입되는 속도를 늦추고 외부에서 오는 따뜻한 바닷물을 막는 역할을 한다.


극지연구소 박태욱 박사와 일본 홋카이도 대학교, 서울대학교 국제 공동 연구팀은 바다를 컴퓨터로 재현하는 최신 해양 모델링 기법을 이용해 스웨이츠 빙붕이 해저에서 발생한 소용돌이로 녹고 있음을 확인했다. 북쪽에서 남극 연안으로 유입된 따뜻한 심층수를 소용돌이가 빙붕 하부로 올려보내 녹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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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읽다]200년간의 대기 기록 '운명의 빙하' 모델링을 통해 재현한 아문젠해 해류 모식도. 해류의 방향(노란색 화살표), 심층의 따뜻한 수온(붉은 색상), 수심(500m, 700m를 검은색 선으로 표시)을 확인할 수 있다.

기존 연구들은 따뜻한 바닷물을 빙붕으로 유입시키는 원인으로 남극해 표층에 부는 강한 바람을 꼽았지만, 이번 연구에서 해류와 해저 지형의 상호작용이 빙붕에 따뜻한 물을 공급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확인됐다. 이번 연구는 국제 저명 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4월호에 게재됐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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