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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천자]어떤 고독은 외롭지 않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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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미국의 소설가 메리 E. 윌킨스 프리먼(1852~1930)은 여성의 역할과 사회에서의 관계를 다룬 소설들을 많이 발표했다.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의 청교도적인 색채와 지역 사람들의 모습, 특히 가난한 노동자 계층 여성들의 삶을 세밀하게 묘사한 소설로 평단의 인정을 받았다. 오늘 소개하는 그녀의 단편집 <뉴잉글랜드 수녀>(1891)에선 여성 인물들에게 약하고 의존적인 모습 대신 독립성을 부여함으로써 여성의 역할과 가치에 대한 편견을 깨뜨린다. 무엇보다 독신의 평화롭고 우아한 삶을 더없이 안락하고 황홀하게 묘사했다. 글자 수 882자.
[하루천자]어떤 고독은 외롭지 않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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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자는 허리에 초록색 앞치마를 둘러서 묶고, 초록색 리본이 달린 납작한 밀짚모자를 꺼냈다. 그리고 작고 파란 그릇을 들고, 차를 끓여 마실 까치밥나무 열매를 따러 정원으로 갔다. 다 따고 나서는 집 뒤쪽에 있는 계단에 앉아 열매를 떼어냈고 남은 줄기는 앞치마에 조심스럽게 모았다가 닭장에 던져줬다. 혹시 계단 뒤쪽 잔디밭에 떨어진 가지는 없는지 빈틈없이 살펴봤다.


루이자는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움직였다. 차를 준비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마침내 차가 준비되면 귀한 손님을 접대하듯 아주 우아하게 차려냈다. 거실 한가운데 있는 작은 사각 식탁 위에 깔린 리넨 식탁보는 풀을 먹여 빳빳했고 그 가장자리에 수놓인 꽃무늬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루이자는 차 쟁반에 다마스크 냅킨을 깔고, 티스푼들이 들어 있는 컷글라스 통과 은제 크림 용기, 자기로 만든 설탕 그릇, 그리고 분홍색 도자기 찻잔과 받침을 하나 놓았다. 루이자는 도자기 그릇을 매일 썼는데, 이 동네 사람들은 전혀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걸 두고 이웃들은 쑥덕거렸다. 그들은 평소엔 식탁에 평범한 그릇을 올리고, 가장 좋은 도자기 세트는 거실에 있는 벽장에 아껴두고 쓰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루이자 엘리스가 그들보다 돈이 더 많거나 지위가 더 높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루이자는 계속 그 도자기 그릇을 썼다. 그녀는 저녁으로 설탕을 많이 넣은 까치밥나무 열매 차와 작은 케이크들이 놓인 접시, 얇고 하얀 비스킷 접시 하나를 식탁에 차렸다. 또 다른 접시에는 상추 한두 장이 보기 좋게 썰려 있었다. 루이자는 상추를 아주 좋아해서 자신의 작은 텃밭에서 완벽하게 길러냈다. 루이자는 이 모든 음식을 조금씩 우아하게, 하지만 열심히 먹었다. 그렇게 조금씩 먹는데 음식이 사라진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어떤 고독은 외롭지 않다>, 재커리 시거 엮음, 박산호 옮김, 인플루엔셜, 1만6500원

[하루천자]어떤 고독은 외롭지 않다<3>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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