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수익 줄이고 농민시위 고려한 듯
유럽연합(EU)이 22일(현지시간) 러시아와 벨라루스산 곡물을 겨냥해 '관세 폭탄'을 예고했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이날 EU 27개국으로 수입되는 러시아·벨라루스산 곡물, 유지종자와 관련 파생상품에 대해 t당 95유로 또는 수입 가격 기준 50%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수입금지 조처인 셈이다.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EU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높은 관세로 관련 수입품의 수익성이 없도록 하고 침략자의 수익을 줄여 EU 시장으로의 수입을 사실상 금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안은 이르면 내달 27개국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가중다수결(회원국 55% 이상·EU 전체 인구의 65% 이상 동시 충족) 투표가 가결되면 곧바로 시행된다.
EU의 새로운 관세 부과가 확정되면 러시아가 보복 조처를 할 수도 있다.
EU 고위 당국자는 이날 익명을 전제로 한 사전 브리핑에서 "현재 러시아를 비롯한 제3국산 곡물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별도 관세가 없거나 1∼6%로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 안은 EU 시장에서 판매되는 곡물에만 적용된다. EU를 경유해 제3국으로 전달되는 곡물은 해당하지 않는다.
EU 당국자는 이번 조처가 저가의 러시아와 벨라루스산 곡물 수입 급증에 따른 EU 시장 불안정을 막고 우크라이나에서 훔친 곡물을 러시아산으로 둔갑해 수출하는 행위를 금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상 국가안보에 따라 수출입 규제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관련 규정에 따라 국제법상으로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설명에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2년이 지난 시점에 갑작스레 러시아산 곡물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제기된다.
집행위에 따르면 현재 EU 전체 농산물 시장에서 러시아산의 비중은 약 1% 정도다. 통계만 보면 전체 시장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
이에 유럽 전역의 농민시위와 우크라이나 곡물을 둘러싼 내부 갈등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EU는 최근 유럽에서 우크라이나 곡물 수입 급증에 항의하는 농민 시위가 확산하자 우크라이나 지원 명분으로 제공하던 농축산물 관세 면세 혜택을 사실상 축소하기로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우크라이나가 불만을 나타내며 불화가 빚어지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전날 EU 정상회의 화상 연설에서 "불행히도 러시아는 유럽 농산물 시장을 접근하는 데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는다"며 "이는 불공평하다"고 주장했다.
EU 당국자는 '우크라이나 곡물 관련 갈등 해결책인가'라는 취지의 질문에 "정치적 질문은 받지 않겠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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