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기계팔이 돼지 숭덩숭덩…7.7초에 한 마리 도축
비계삼겹살 문제에 칼 빼든 정부…"페널티 주겠다"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돼지의 흰 배 표면을 거대한 기계 톱이 쓱 가르고 지나가자, 피가 다 빠져 회색빛으로 변한 장기가 후두둑 쏟아졌다. 다음 돼지, 또 다음 돼지의 배도 기계 팔에 깔끔하게 갈라지면서 내장이 쏟아졌다. 도축장이라기보다는 반도체 공장을 보는 듯한 질서정연함이었다. 다음 공정에서는 내장을 비워낸 돼지의 몸에서 머리가 제거됐고, 그다음 공정에서는 몸이 완전히 반으로 갈렸다. 모두 거대한 기계 팔에 의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진 과정이었다.
"배를 갈라주는 로봇, 머리를 자르는 로봇, 그리고 돼지를 반을 갈라주는 로봇. 이런 로봇들을 통해서 저희가 하루 3000마리의 돼지를 도축하고 있습니다. 7.7초에 한 마리꼴입니다."
삼겹살데이(3월 3일)를 나흘 앞둔 2월 28일, 중부권 최대 도축 시설인 대전충남양돈농협 포크빌 축산물공판장을 찾았다. 2만6500평 크기의 부지에 세워진 1만9000평의 거대한 건물 속에서 하루 3000마리의 돼지, 250마리의 소가 도축된다. 모두 기계 팔이 투입된다. 특히 상대적으로 크기가 일정한 돼지의 경우 기계 팔이 도축 과정을 거의 도맡는다.
물론 사람이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지만, 보조적 업무에 그친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으로 도축장이 '남초'인 것과 달리, 충남 포크빌 공판장의 경우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도 도축 과정에 투입되고 있었다. 포크빌 관계자는 "아직 국내 도축장들은 남성들 위주로 돌아가지만, 충남 포크빌 공판장은 도축장을 시스템화한 덕분에 남녀가 모두 같은 일에 투입되고 있다"고 했다.
이곳의 돼지 도축 시설은 유럽의 도축 선진국인 덴마크에서 들여온 시스템을 적용, 총 155m의 일직선 라인이 형성돼 있다. 돼지는 바닥에 발끝도 닿지 않은 채 공중에 매달려 이동한다. 직원들은 반도체 공장을 연상케 하는 위생복으로 중무장한 채였다. 충남도에서 파견된 담당 공무원이 돼지고기와 돼지 내장에 대한 검사도 진행하고 있었다. 위생 문제가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셈이다. 포크빌 관계자는 "여기뿐 아니라 국내의 모든 도축장은 가축을 공중에 건채로 도축 작업을 진행하고, 지자체에서 공무원들이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며 "소비자들은 축산물을 믿고 먹어도 된다"고 강조했다.
소 역시 컨베이어 벨트에 거꾸로 매달려 돼지와 비슷한 도축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우피(牛皮)와 내장이 차례로 제거되고, 20년 경력의 기술자가 기계 톱을 사용해 소를 이등분했다. 소는 돼지와 달리 크기가 일정하지 않아 일률적으로 기계 팔을 적용하기는 아직 힘들다는 게 포크빌 측의 설명이다. 현재 기술이 개발 중인 만큼, 머지않은 미래에 돼지와 소 모두 기계로 도축하는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포크빌 관계자는 "국내 한 기업과 울산의 한 연구소가 소의 기계 도축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도축 과정을 마친 소와 돼지는 저온 상태를 유지하며 도축장과 같은 층에 있는 가공공장으로 이동된다. 기계가 많이 쓰이는 도축 과정과 달리, 가공 과정은 사람의 손에 좌우된다.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온 지육을 각 직원이 칼로 분해해 부위별 작업장으로 이동시키고, 그곳에서 세밀한 가공이 시작된다. 가장 인기가 많은 삼겹살의 경우 지방을 제거하는 '정선'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 삼겹살 작업장 옆에는 잘게 잘라낸 비곗덩어리들이 쌓여 있었다.
최근 논란이 된 '비계 삼겹살'은 이 정선 과정에서 비계가 덜 제거된 데 따른 결과물이다. '비계 삼겹살'이 논란이 되면서 정부는 최근 지방 두께를 1㎝~1.5㎝로 유지하라는 지침을 각 작업장에 내려보내기도 했다. 포크빌 관계자는 "매뉴얼을 보면 과지방이 발생하는 부위를 정선하는 것은 물론, 과도한 지방 부위는 폐기를 검토하도록 하고 있다"며 "저희는 이 매뉴얼에 따라 지방이 많이 발생한 부위는 제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대형 가공시설이 아닌 소형 가공시설을 하나하나 단속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정부도 삼겹살데이를 앞두고 강수를 꺼내 들기도 했다. 김정욱 농림축산식품부 축산정책관은 이날 공판장을 둘러본 후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삼겹살 품질 관리를 어떻게 철저히 할 것인가, 그런 측면에서 관련 업계랑 협업을 해서 여러 가지 작업을 추진 중"이라며 향후 유관 부처 및 단체와 협력해 수시·정례 점검·지도를 강화하고 ▲과지방 정선 ▲눈속임 판매 금지 ▲온라인 판매 관리 철저 등을 살펴보기로 했다. 점검 결과 미흡한 업체는 운영·시설자금 등 지원사업 대상에서 페널티를 부과한다.
세종=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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