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역사상 최대 규모… 日언론 “승부수”
설계 효율 향상 위해 소프트웨어 역량 마련
일본 차량용 반도체 기업인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가 미국 전자회로 설계 소프트웨어 업체인 알티움 인수를 선언했다. 우리 돈 8조원을 들여 해외 기업을 인수하는 것인데, 르네사스 인수 역사상 최대 투자 규모다. 반도체 설계가 갈수록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핵심 역량이 될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일본 반도체 부활을 앞당기는 상징적인 인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르네사스는 알티움 인수를 위해 호주 시장에 상장된 알티움 발행 주식 100%를 취득한다고 15일 밝혔다. 회사는 주당 68.50호주달러로 총 1억3327만9432주를 사들이기 위해 약 91억호주달러(7조8974억원)를 투입한다. 알티움 주주와 관련 당국 허가 등을 거쳐 하반기에 인수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알티움은 반도체 칩을 탑재할 때 쓰이는 인쇄회로기판(PCB)을 클라우드 상에서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소프트웨어 툴을 제공하고 있다. 관련 분야에서 선두 기업이다. 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으며 호주에 기반을 두고 있어 현지에서 상장했다. 지난해 6월 마감한 회계연도 2023년 기준 매출은 2억6300만달러로 전년 대비 19.2% 늘었다.
르네사스는 복잡해지는 반도체 설계 과정에서 투입 비용 및 생산 비효율을 줄이기 위해 알티움 인수를 결정했다. 회사 측은 "이번 인수로 통합된 개방형 ‘전자 시스템 설계 및 수명주기 관리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며 "이번 사업은 르네사스 디지털화 전략과 긴밀히 연계돼 있다"고 설명했다.
르네사스의 인수 결정 이후 일본 현지에선 "르네사스가 승부를 걸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르네사스가 경영 재건을 거쳐 고수익 기업이 된 뒤 해외 기업을 잇달아 인수하고 있다"며 "소프트웨어가 주요 전쟁터가 된 가운데 르네사스가 승부수를 띄웠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반도체 업계 경쟁 축이 설계 개발 환경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밝혔다.
시바타 히데토시 르네사스 사장도 이날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알티움과) 함께 새로운 솔루션을 만들어 시장에 제공하며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라며 "지난 몇 년간 국경을 뛰어넘는 인수를 몇 건 했지만, 이번 인수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고 강조했다. 알람 밀카세미 알티움 최고경영자(CEO) 역시 "업계의 큰 이벤트"라며 "(앞으로)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르네사스는 세계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독일 인피니언, 네덜란드 NXP와 활약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 전장 시스템 제어에 필요한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분야 1위 기업이다. 2010년대 초 적자를 기록하며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2012년 구조조정 뒤 몸집을 키우고 있다. 최근엔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2022년엔 임베디드 인공지능(AI) 솔루션 기업 ‘리얼리티 애널리틱스’를 인수한 바 있다.
김평화 기자 peac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