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손자 김인규·'盧 사위' 곽상언 출격
代 잇는 정치인들 "후광 받을 생각 없다"
명분 없는 출마에는 '세습 공천' 비판도
정치판에도 '금수저'가 있다. 선대(先代)의 뒤를 이어 '여의도 입성'을 노리는 정치인 2~3세다. 이번 4·10 총선에는 전직 대통령의 아들부터 손자, 사위까지 도전장을 내밀었다. '정치적 후광'을 기대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이들에겐 남들보다 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기도 한다. 자신만의 색깔과 정치 구상으로 표심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세습 공천'이라는 비판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를 뛰어넘겠다는 포부를 밝힌 정치인 2~3세를 살펴봤다.
'YS 손자' 김인규, 차근차근 성장한 청년 정치인
먼저 국민의힘에선 김인규 전 대통령실 행정관이 부산 서·동구에 출사표를 냈다. 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손자인 그는 할아버지가 생전 '7선'을 지낸 지역구에 도전한다.
정치적으로 보면 금수저 중의 금수저라고 할 수 있지만 김 전 행정관은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았다. 2017년 당시 정병국 바른정당 의원실에서 '무급 인턴'으로 여의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국회의장 정무비서를 지내며 착실하게 정치 수업을 했다. 지난 총선에선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을 도와 선거를 치렀고, 대선 땐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 경선·본선을 함께 했다. 이후 대통령실에서 행정관으로 일하면서 '행정부' 경험까지 갖춘 청년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김 전 행정관은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회기가 끝나갈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는 '이번 국회가 역대 최악이었다'는 비판"이라며 "21대 국회가 민생 법안이나 예산을 처리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정쟁' 말고는 기억에 남는 게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제도적 개혁이 절실하다"며 "22대 국회에선 기득권을 잡고 있는 운동권 세력이 물러나고, 새로운 세력이 들어와서 정치 문화를 바꿀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직접적인 연고가 없는 할아버지 지역구에 출마하게 된 배경을 묻자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조언을 받아 부산에서 활동을 시작했다는 그는 "지역 주민들이 할아버지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해주면서도, 서·동구가 여전히 원도심으로 남아 있는 점에 대해서는 아쉽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며 "할아버지께서 더 세심히 챙기지 못한 부분, 30년 넘게 소외된 서·동구를 발전으로 이끌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盧 사위' 곽상언…"정치적 후광 없이 선택받겠다"
더불어민주당에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가 등판했다. 그는 지역위원장으로 활동해온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 출마한다. 지난 총선 당시 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민주당의 싱크탱크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내면서 정책 연구에 힘썼다. 대선 땐 이재명 후보 캠프에서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역임했다.
곽 변호사는 '정치인 2~3세'라는 관점에 관해 묻자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런 모습으로 정치를 할 생각은 없다"고 단호히 선을 그었다. 국민 앞에 선택을 구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후광'을 기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는 2021년 민주당 대권 주자들의 '적통 경쟁'이 치열해지자 "노무현을 선거에서 놓아 달라"며 공개적으로 소신 발언을 하기도 했다.
'종로 출마'라는 선택지에 그런 다짐이 담겼다. 노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고려해도 '꽃길'보다 '험지'에 가까운 결정이기 때문이다. 당내에서 '친명(친이재명)계'로 분류되는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손자이자 경기 안양 만안에서 '5선'을 지낸 이종걸 전 의원과 맞붙어야 한다. 국민의힘에선 '현역' 최재형 의원과 도전장을 낸 하태경 의원이 버티고 있다.
곽 변호사는 "종로구는 그간 여야의 '낙하산 공천'으로 정치적으로 희생당했다"며 "정작 지역 현안으로 꼽히는 인구 감소 문제와 지역 내 차별 문제는 해결이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무현 대통령의 사위가 아닌 곽상언이라는 이름으로 '노무현 정신'을 계승할 것"이라며 "삶의 기본 조건이 균등한 세상,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이뤄내는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명분 없는 출마'에는 따가운 시선…'세습' 비판도
이처럼 각 후보자는 선대의 '정치적 후광'을 부인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선 여전히 대를 이은 출마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특히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에 도전하는 것을 두고 '명분 없는 출마'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 사례로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걸 민주당 의원(비례대표)은 최근 서울 강서갑 출마를 선언했다. 당초 전남 목포 출마가 예상됐던 그는 출마 선언 당시 '강서갑은 아무런 연고가 없지 않으냐'라고 묻는 말에 "깊은 연고가 있다고 할 순 없지만, 서울은 하나의 지역구"라고 말해 눈총을 샀다. 그가 상대할 현역은 당 대변인 '초선' 강선우 의원이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아들 문석균 김대중재단 의정부지회장도 출마한다. 그는 오영환 민주당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경기 의정부갑에 출사표를 냈다. 지난 총선 때도 부친의 지역구인 의정부갑에 출마를 선언했다가 '아빠 찬스' 논란이 일자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결국 낙선했다. 당시 문 의장이 문 지회장 유튜브 채널에 나와 '먹방'을 해 비판을 받은 일도 있었다.
'정치 금수저'가 선대의 지역구를 물려받는 일은 그동안 드물지 않게 있었다. 서울 마포갑에서 '4선'을 지낸 노웅래 민주당 의원은 부친의 지역구를 그대로 이어간 사례다. 그의 부친 노승환 전 의원은 이곳에서 '5선' 의원과 '재선' 구청장을 지냈다. 서울 서대문을에서 재선한 김영호 민주당 의원도 서울 서대문갑·광주 북갑에서 '6선'을 지낸 김상현 전 의원의 아들이다.
여권에도 '아버지의 금배지'를 물려받은 의원들이 있다. 이번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한 '3선'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아버지 장성만 전 의원이 부산 북구에서 '4선' 의원을 지냈다. 장 전 의원이 설립한 동서대학교가 아들의 지역구인 부산 사상에 있다. '5선' 정진석 의원(충남 공주·부여·청양)의 부친은 충남 공주에서 6선을 지낸 정석모 전 의원이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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