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읽을수록 깊고 함축적이다. 오래 보고 생각한 뒤에 말해진 짧은 문장에 관계의 본질이 담겼다. 오래 보면 지루해지고 무감각해지는 게 섭리에 가까운데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것은 무엇일까? 익숙해질 것들이 익숙해지고 보이는 것들의 앞뒤가 구분될 때쯤 그만의 특징과 개별성이 드러난다. 장점과 단점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호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이 눈에 띠고 특별해지는 순간이 있다. 사랑스러움은 구체적 대상에 대한 아름다움의 감정이다.
아름다움에 대해 익숙함이 하는 일은 양면적이다. 익숙해지면서 지루해지는 것도 있고, 익숙해진 뒤에야 보이는 것도 있다. 아름다움이건 결점이건 그것은 의지가 아니라 감각이 시간 차이를 두고 하는 일이다. 한눈에 아름다운 것은 쉽게 눈에 띄고 기억된다. 그리고 어떤 각별함은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다. 오스카 와일드는 "아름다움은 낯익어짐에 의해 점점 그 빛이 바랜다"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썼다. 그것은 첫눈에 결정되는 아름다움이다. 반대로 별것 아니다 싶었어도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은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에 반응하는 것이다. 흐릿하거나 작아서 눈에 띄지 않던 존재가 드러나고, 보이는 것들 사이의 새로운 관계가 말을 하기도 한다. 언어가 사실이나 감정의 모든 면을 축약하지 못하므로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한' 사실과 감정의 의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감각의 수준이 감동의 수준을 말하고 사람의 수준을 말하고 사회의 수준도 말한다. 감동의 수준은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고 입체적 시각에서 현상을 바라보게 됨으로써 성숙한다. 달콤한 위로나 직설적 격려와 같은 뻔하고 과용된 언어는 그 순간을 넘어 지속되기 어렵다. 말 한마디의 효험도 단계와 수준이 있다. 이를테면 경험과 식견에서 나오는 통찰과 언어의 깊이 같은 것이다. 반복되고 상투적인 것들에 지루해하는 본성은 새로운 감각을 필요로 하고 표현의 수준을 높이게 한다. 보이는 것들(사진이나 그림이나 영화 같은)도 그렇다. 말을 대신하고 말의 기능까지 감당하고 싶은 직설적 아름다움이나 감동은 즉물적이고 오래가기 어렵다. 왠지 기분 좋은 것들, 알게 모르게 스며드는 세계를 느끼고 반길 줄 아는 것은 발달한 감각의 결과다. 살아온 태도에 따라 모르는 사이 이미 성숙해버린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내가 어느덧 성숙한 인간이 되었다는 자각이 아니라, 이전에도 분명히 있었지만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눈앞에 드러나고 사물과 존재들의 관계나 의미 같은 것들이 보이는 자각이다.
지금 뜨는 뉴스
'너도 그렇다'고 시인은 특별한 감정의 이유와 의미에 방점을 찍었다. 이 말을 하기 위해 자세히 보고 오래 보는 것에 대해 무려 두 줄이나 이야기했다. '너도' 그렇다는 말은 '너야말로' 그렇다는 말이 시의 옷을 입은 것이다.
허영한 기자 youngh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언스타그램]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이유](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3121314420487387_1702446124.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