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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과 장작]<제1화>빨래건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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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억 고물 ‘K태양광’ 방치
베트남 꽝빈성 ODA 현장을 가다

[태양광과 장작]<제1화>빨래건조대 반 라오콘 마을 여성회장 응우옌 티 아잉(Nguyen Thi Anh) 씨가 구입해 쓰고 있는 배터리 사용법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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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우옌 티 아잉(Nguyen Thi Anh)(49세)씨가 쪼그려 앉아 스패너를 들었다. 차량용 배터리가 놓여있었다. ‘동나이’(dongnai). 베트남제다. 버튼을 돌리고 전선을 움직였다. 나사를 조절했다. 노란 줄도 만졌다.


‘팟!’


스파크가 튀었다. 스위치를 눌렀다.


응우옌씨가 가리킨 손가락 끝을 따라갔다. 서까래에 달린 백열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컴컴한 집안이 밝아졌다. 불쏘시개와 부지깽이, 숯불이 남은 아궁이와 포댓자루가 보였다. 부엌 겸 응접실이었다.


“배터리는 어디서 충전하시는 거예요?”


집 뒤편으로 안내했다. 태양광 발전기가 있었다. 8개 태양광 판넬을 축대 네 개가 지탱했다. 아래 철제 전지함에 충전기를 둔 구조다. 패널 절반이 소실돼 있었다. 모듈과 연결된 선은 뒤엉켜있었다.


[태양광과 장작]<제1화>빨래건조대 베트남 꽝빈성 반 라오 콘 마을의 태양광 발전소 일부 패널이 떨어져 나갔다. 집이 먼 주민들이 가져간 것이라 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베트남 중북부 지역 동허이에서 차로 비포장도로 1시간 30분을 달려야 나오는 반 라오 콘(Ban rao con) 마을. 지난 10일 취재진은 이 곳을 찾았다.


‘조혼과 근친혼을 금지합시다’라고 써진 표지판 옆에 차를 세웠다. 주변을 둘러봤다. 고상가옥 여러채가 보였다. 베트남 소수민족 ‘번 키우(Van kieu)’가 사는 마을이다. 휴대전화에는 ‘수신 불가 지역’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우기에는 오후 2시에도 비구름에 태양이 가려져 우중충하다. 걸을 때마다 진흙탕물에 발이 쑥 빠졌다. 나무로 만든 한 칸짜리 집들은 암실처럼 캄캄했다.


이 마을에서 여성회장을 맡고 있는 응우옌 씨를 처음 만났다. 그는 울타리 앞에서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하다가, 손짓을 하며 집으로 초대했다.


[태양광과 장작]<제1화>빨래건조대 반 라오콘 마을의 태양광 발전기 옆에서 만난 마을 여성회장 응우옌 티 아잉(Nguy?n Th? Anh) 씨. 전기 사정을 물어보자 집에 와서 구경하라고 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원래대로라면 태양광 발전기가 작동해 응우옌씨가 쓰는 자동차 배터리는 필요가 없어야 했다. 그러나 태양광 패널에서 나온 케이블은 배터리 ‘동나이’에 꽂혀있었다. 저녁에 쓸 전기를 충전하기 위해서다.


12볼트 25암페어. 68만동(약 3만7000원). 응우옌씨가 한달 내 나무껍질을 깎아 버는 돈은 최대 200만동(약 11만원)이니, 고가품이다. 태양광으로 이 배터리를 한나절 충전하면 전구를 2시간 켤 수 있다. 응우옌씨는 아이들 공부를 위해 거금을 들여 이 장비를 장만했다.


태양광은 언제, 누가 지어준 거냐고 물었다.


“정부가요.”


응우옌씨는 6년 전에 여러 사람이 와서 태양광을 설치해 주고 갔다고 했다. 태양광 패널과 함께, 텔레비전·선풍기 등의 전자기기도 그때 무상으로 받았다.


“1년을 못 갔어요. 태풍이 와서 다 날아갔고, 그 이후엔 고쳐주러 오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태양광과 장작]<제1화>빨래건조대 반 라오 콘 마을 여성회장 응우옌 티 아잉(Nguyen Thi Anh) 씨의 .딸 호티늉(Ho Thi Nhung)이 동생이 그림을 좋아한다며 그림이 그려진 공책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응우옌씨에겐 세 딸이 있다. 첫째 딸 호티늉(Ho Thi Nhung)(19세)씨의 취미는 그림 그리기다. 노트를 가져와 보여줬다.


“뭐야?”


“나루토요.”


“TV 봤었어?”


“예전에는요.”


호티늉씨는 애니메이션 나루토에서 히나타라는 인물을 제일 좋아했다. “태양광 발전기가 작동할 때는 TV도 있었으니 아이들이 자주 봤죠. 가라오케 스피커로 손님 오면 노래도 불렀고.” 응우옌씨가 거들었다. 호티늉씨의 그림은 6년 전에 멈춰있다.


“이제는 안 그려요. 옷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빨리 일을 해서 집에 돈을 보낼 거예요.”



[태양광과 장작]<제1화>빨래건조대 베트남 꽝빈성 반 라오 콘 마을의 태양광 발전소. 배터리함은 비어 있고 주민들이 개인적으로 구입해 달아놓은 소형 배터리가 연결되어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마을에는 태양광 발전기 10대가 있다. 모두 고장났다. 패널 위에는 침엽수 바늘 잎과 수피, 노란색 잎사귀가 붙어있었다. 철제함에는 패널이 받은 햇빛을 전기로 바꾸는 축전지가 들어있어야 하지만, 텅 비어 있었다. 그 자리를 무릎 높이까지 자라난 잡초들이 채웠다. 10개의 태양광 패널 근처에는 차량용 배터리가 케이블과 연결돼있었다. 이 배터리 전력으로는 전구만 켤 수 있다.


‘동나이’는 마을 주민들이 전 재산을 들여 사들인 보조 배터리다. 마을 64가구를 돌아다닌 결과 선풍기, 냉장고 등 전자기기를 쓰는 집은 단 한 가구도 없었다.


주민들은 넓은 면적의 태양광 패널을 지붕 삼아 빨래 건조대로 쓰고 있었다. 지지대 사이를 줄로 이었다. 개울에서 옷을 빤 뒤 이불과 수건, 티셔츠와 바지를 널었다.


[태양광과 장작]<제1화>빨래건조대 베트남 꽝빈성 반 라오 콘 마을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소 패널. 원래 설치된 대용량 배터리는 없어지고 주민들이 사다 놓은 소형 배터리들이 연결되어 있다. 노란 전선은 가까운 집으로 연결되어 저녁 한때 전등을 밝힌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완전히 고장 났나 본데.”


발전기를 살폈다. 녹이 슨 철제 전지함 문을 열자, 안은 휑했다. 경칩에 엄지 손가락 크기의 도마뱀 사체가 붙어 있었다. 바깥에는 커넥션 박스(CONNECTION BOX)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손톱으로 이끼를 긁어내니 익숙한 글자가 보였다.


제조 일자 2016년 6월 29일.

made in BUSAN, Korea


[태양광과 장작]<제1화>빨래건조대 베트남 꽝빈성 반 라오 콘 마을의 태양광 발전소에 붙어있는 상자. 제품 사양이 제시돼 있다. 사진=구채은 기자 faktum@


■인포그래픽 페이지■

태양광과 장작 - 베트남 반 라오콘 르포

(story.asiae.co.kr/vietnam)

원조 예산 쪼개기는 어떤 문제를 가져오나

(story.asiae.co.kr/ODA)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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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과 장작] <제2화>한꾸옥 으로 이어짐




[태양광과 장작]<제1화>빨래건조대



동허이(베트남) =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동허이(베트남) =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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