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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텀하우스 좌담] "유명무실 매뉴얼·인력부족·윤리의식 부재에 부실시공 반복"

시계아이콘읽는 시간3분 4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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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시공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공기 맞추려 매뉴얼 무시
공사비 수준 20년 전과 비슷…급여 낮아 감리 등 인력난
겹규제보다 제도 실행 역량 갖춰야…건축학 윤리교육 의무화해야

편집자주아파트 주차장 붕괴, 철근 누락 등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건설 사고가 연이어 벌어지면서 ‘안전’이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사고의 원인으로는 설계, 시공, 감리, 이권 카르텔 등 다양한 구조적 문제가 지목됐다. LH가 발주한 15개 단지에서 철근이 누락됐고 이를 짚고 넘어가야 할 감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LH 퇴직자가 포진한 업체에 감리업무를 몰아준 사실도 드러났다. 결국 설계-시공-감리로 이어지는 총체적 시스템 부실이 문제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아시아경제는 12일 서울 중구 아시아미디어타워에서 최근 벌어진 부실시공과 관련된 한국 건설산업의 구조적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이번 좌담회에는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임정택 제이플러스건축 대표, 원정연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 차희성 아주대 건축학과 교수(가나다순)가 참석했다. 아시아경제 채텀하우스 좌담회는 참석자 명단은 공개하되, 각 발언자의 발언은 익명 처리한다. 다음은 토론 전문.

[채텀하우스 좌담] "유명무실 매뉴얼·인력부족·윤리의식 부재에 부실시공 반복" 참석자들이 지난 12일 서울 중구 아시아미디어타워에서 ‘한국 건설산업의 구조적 문제점, 해법은 없나’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원정연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 차희성 아주대 건축학과 교수, 임정택 제이플러스건축 대표,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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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건설산업과 관련된 악재가 계속되고 있다. 부실시공 문제까지 터졌다.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토론자A> 우리나라 건설회사들은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과 시공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러한 부실시공 사태가 벌어지는 이유는 매뉴얼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해외 프로젝트들에 참여하다 보면 매뉴얼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시공자들은 이를 의무적으로 숙지해야 함은 물론이고 건설사업관리(CM) 인력은 매뉴얼대로 현장에 적용되는지 꼼꼼히 살핀다. 반면 우리나라는 공기가 항상 우선이다.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레미콘 파업 때문에 공사 일정이 보름 정도 지연되면 무리해서 공기를 맞추게 되고 매뉴얼은 무시하게 된다. 검단신도시 주차장 붕괴 사고만 해도 하중은 정해져 있는데 매뉴얼을 무시하고 자재를 많이 쌓아두다 보니 이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린 것이다. 해외에서는 도면보다 시방서가 더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반대다. 도면에 더 공들이고 시방서는 제출 시간이 임박해 꾸리기에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해서 작성된 시방서조차 현장에서 잘 읽어보지 않는다.


<토론자C> 전문가 윤리의식이 결여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해외에서는 건축학과 건축공학을 전공할 때 반드시 윤리 수업을 받는다. 의사 못지않게 건축하는 사람도 윤리의식이 수반돼야 한다는 인식에서다. 건축은 대중의 안전과 직결된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아파트 무량판 구조만 해도 아파트는 굉장히 보편화된 구조로 짓는 건축물이다. 무량판 아파트 시공은 고도의 엔지니어링이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결국 건축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건축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대상으로 윤리교육이 제대로 이뤄져야 하고 윤리의식을 갖춰야 한다.


<사회> LH의 부실시공 문제가 터지면서 감리 전관예우와 카르텔 문제도 수면 위로 떠 올랐다.


<토론자D> 전 세계적으로 가장 신뢰도가 높은 미국 건설전문지 ‘엔지니어링 뉴스 레코드(ENR)’가 뽑은 순위에서 우리나라 건설사들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기술력은 이미 확보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번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는 설계, 시공, 감리 등 전 영역에서 챙겼어야 할 부분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데 있다. 이 세 가지 분야가 모두 작동이 안 됐다. 제대로 작동되기 위한 시스템이 망가졌다고 본다. 사회구조가 변했고 인력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력 문제. 청년 인력 유입이 안 되고 현장 근로자는 대부분 외국인 근로자에게 의존한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이유는 기술인력에 대한 대우가 낮고 중요성에 대해서도 인지하지 못하는 데 있다. 설계사무소에 고령의 감리인력들은 지팡이 짚을 힘만 있으면 감리를 나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토론자A> 맞다. 인력수급이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다. 특히 감리의 경우 대개 인력의 70%가 60대다. 그나마 감리에 종사하는 인력 대부분도 감리 전문 인력이라기보다 시공회사 출신들이 은퇴하고 노후에 쌓은 경력을 가지고 감리를 진행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감리 업무의 독립성 확보가 어렵다는 구조적 문제도 있다. 감리인력은 발주처에 귀속돼 있거나 건설사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또 감리 인력은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 운용을 최소화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감리인력 2명이 아파트 현장 전체를 다 보는 경우가 있다. 현장을 꼼꼼히 챙기기에는 어려운 현실인 셈이다.


<사회> LH의 카르텔이 부실시공 사태를 키운 요인으로 지목됐다. 실제 얼마만큼 이 문제가 뿌리 깊게 만연해 있다고 보는가.


<토론자B> 카르텔을 제지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단순히 퇴직자를 인력으로 활용하면 안 된다는 발상에는 반대한다. 능력 있는 분들을 경험을 살려 재취업할 수 있도록 하되, LH 퇴직자와 현직자의 만남에 대해 어디까지 제동을 걸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두는 것이 맞다고 본다.


<토론자A> 전관이 문제가 된 이유는 전관이 속해 있는 업체가 선정이 잘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정 주체인 LH가 문제가 된 것이라고 본다.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심사위원을 따로 두고 있지만, 심사위원 구성 방법 등을 LH가 결정하기 때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토론자D> LH 기능이 너무 거대하다. 일부 기능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 LH는 설계심의, 심사선정, 발주 등 모든 과정의 A부터 Z까지 관여한다. 직장동료가 발주, 시공, 설계를 다 맡아 하는 것이다. 발주, 실행, 설계 등 역할을 좀 나눠서 서로 견제하게 기능을 분산해야 한다. 전관에 대한 부분은 A와 생각이 비슷하다. 전관은 한 가지 분야에서 노하우 축적을 많이 한 인력이다. 이를 무조건 없애자는 방향은 사회적으로 낭비라고 본다. 이런 인적자원은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회> LH가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LH만의 문제인가 아니면 건설산업 전체의 문제인가.


<토론자B> LH의 도덕적 해이뿐 아니라 우리나라 건설시장의 구조적 문제도 함께 따져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공공아파트의 경우 공사비를 낮게 책정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설계 용역비에 돈을 크게 쓰지 않는 나라에서 공사비를 적게 주는데 구조 설계에 큰 비용을 쓸 리 없다. 부실시공 문제가 터졌을 때 회사, 개인의 책임으로만 몰아가지 말고 적정한 공사비의 수준에 대해 논의하고 제대로 공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 뒤에 문제가 생겼을 때 처벌하는 게 맞다고 본다. 단순히 처벌 관련 규정만 강화하면 오히려 감리 업무를 맡기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만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 공사비 수준이 제자리인 이유는 건설 관련 업체들이 난립해 있기 때문이다. 저가로 나온 공사를 누군가는 받아서 한다.


<토론자D> 우리나라 공사비는 미국의 3분의 1, 일본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경제강국으로 올라섰는데 공사비 수준은 2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바꾸려는 시도조차 안 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건설회사 숫자가 수천 개다. 회사에 전화기만 놓여 있는 수가 반 이상이라고 본다. 공사 수요는 한정돼 있는데 이를 노리는 업체 수가 많다 보니 발주하는 입장에서도 공사비를 올릴 유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토론자B> CM 권한이 더 강화돼야 한다. CM의 책임은 엄청난데 권한이 없다. 예컨대 매뉴얼이 있어도 매뉴얼대로 공사를 할 수 없다. 현장에서 위험 요소가 발견되면 공사 중지 등 대처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 CM이 공문 써서 보내면 바로 영업 정지시킬 수 있을 정도의 권한을 줘야 한다. 사실 시공사가 공기에 쫓기고 고생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데 공사 중단 조처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 또 이렇게 해서 공사가 밀리면 공기에 대한 책임이 CM에도 있기 때문에 그런 권한을 행사하기가 사실 부담스러운 게 현실이다. 외국에서는 사업비 관리분야(QS)를 통해 공적인 일정을 짠다. 회계사처럼 사업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객관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조직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계약서 한장으로 밀어붙인다.


<사회> 건설산업에 청년 인력 유입이 안 되고 있다고 한다. 이유는 무엇인가.


<토론자A> 상대적으로 다른 직업군과 비교해 급여 수준이 낮다 보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 건축과 관련된 전공을 하고도 자산운영사 등 금융계통으로 취업하는 친구들이 부지기수다. 일례로 제가 1997년에 입사했는데 설계비가 물가곡선에 따라 상승하기보다 거의 제자리걸음이다. 비용이 크게 안 올랐으니 임금 역시 타 업종대비 크게 오르지 못하는 구조였다.


<토론자C> 대학교 3학년이 되면 ‘탈건’을 고민하는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늘어난다. 심지어 학교 랭킹이 높은 학교일수록 그 비율이 높다. 우리나라 톱3 대학 가운데 설계를 끝까지 파는 학생 비율은 30%가 채 안 된다. 이는 취업 후 금전적 보상과도 직결되는데 설계비 자체가 너무 낮게 책정돼 있다. 공공사업의 경우 설계비는 전체 비용의 1~2%인 프로젝트가 많다. 설계회사를 유지하고 인력을 흡수해 전문인력으로 역량을 쌓는 선순환 사이클이 작동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보상이 적절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사회> 마지막으로 수정돼야 할 정책 부분이나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토론자A> 검단신도시 지하주차장 붕괴사고 이후 많은 분이 무량판 구조가 위험하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안게 됐다. 미국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무량판 구조가 경제적이고, 층고를 확보하는 대표적인 공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무량판 구조에 대한 불안이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오죽하면 구조기술사들도 무량판으로 심의가 들어오면 반려하겠다고 말할 정도가 됐다.

우리 사회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제도를 위한 제도부터 만든다. 근본적인 문제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구조심의위원회가 무량판을 심의하겠다는 발상부터 이해가 가질 않는다. 전문가가 전문가를 못 믿어서 또 한 번 심의를 통해 필터링을 거치겠다는 이야기인데, 제도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토론자B> 제도 자체가 없는 것이 아니다.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를 또 만드는 것은 규제가 층층이 쌓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제도를 제대로 실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토론자D> 작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학회에 참가했을 때 키워드가 ‘윤리’였다. 앞으로 우리도 건축학이나 건축공학 전공 교육을 실시할 때 윤리교육을 들어야 이수할 수 있게 바뀌어야 한다. 엔지니어, 구조, 설계 등 건설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윤리의식을 갖추는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특히 기술자들에 대한 재교육 문제가 이뤄지지 않았거나 형식적으로 진행됐던 부분은 이번 기회에 제대로 손봐야 한다.



사회 = 조강욱 건설부동산부 부장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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