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자' 서용석 카이스트 교수 인터뷰
기술 도입 시 기업간 격차 등 해결 과제 언급
스마트폰은 현대 직장인의 '필수템'이다. 사무실이 아닌 공간에서도 전화를 주고받고 이메일과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복잡한 업무도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 사무실 책상 위 컴퓨터, 가방 속 노트북이 없어도 스마트폰 하나면 사실상 대부분의 일을 할 수 있다. 스마트폰은 일상생활뿐 아니라 일터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이러한 변화는 10년이라는 기간 사이에 진행됐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2013년에만 해도 국민 3명 중 2명은 일상생활을 하는 데 스마트폰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0년 새 이 비율은 30%로, 반토막 났다. 이제 10명 중 7명은 스마트폰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안된다고 느낀다. 특히 10~40대는 90%가 스마트폰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기술이 달라지면 일상은 물론 업무 환경도 빠르게 바뀐다. 미래학자인 서용석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센터장은 지난 23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0여년 간 우리가 겪은 가장 큰 변화는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변화를 견인하는 가장 중요한 동인은 바로 기술 발전"이라며 올해 열풍이 분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이 일하는 방식을 또 한 번 크게 바꿀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서 교수는 세계미래학연맹(WFSF) 의장을 지낸 세계적인 미래학자 짐 데이터 하와이대 교수의 한국인 1호 제자다. 미래학, 사회변동론 등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기술과 인구 구조, 기후의 변화가 우리의 일과 직업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 책 '일과 직업의 미래'(가제)를 쓰고 있다. 서 교수에게 코로나19 이후 일과 업무수행 방식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물었다.
◆ "앞으론 인간·기계 VS 인간·기계 대결…주 4일제는 대세"
서 교수는 미래의 업무 환경에서는 근로자와 기술의 협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근로자가 기술과 어떻게 협업하느냐에 따라 일하는 방식도 대대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AI 붐으로 일자리 상실 위협이 확대돼 기계와 기술에 대한 경계심이 한층 커진 상황에 나온 그의 답변이었다.
"근로자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이 기술, 기계와 협업해 일하고 있습니다. 과거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이 그랬듯이 기술, 기계와의 협업은 앞으로도 우리의 일하는 방식을 극적으로 바꿀 수 있어요."
코로나19 시기 도입한 재택근무는 직장인이 기술과 협업해 일하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위기를 이겨낸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전 세계 기업과 직장인은 물리적인 공간에 모이지 않고도 노트북과 인터넷, 메신저와 화상회의 기술로 서로를 연결했다. 서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업무 환경과 관련해 가장 달라진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처음에는 비대면 업무나 수업, 회의 방식에 많은 사람이 불편을 느꼈는데 '해 보니까 할 만하더라'는 인식이 서서히 늘었습니다. (이전에는) 비대면 방식이나 재택근무가 그저 익숙하지 않았을 뿐이었죠. 코로나19가 종식됐지만, 지금도 많은 회의나 수업 등이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비용과 시간을 아낄 수 있고 그런 방식 자체를 편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재택근무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허물어졌다는 의미다. 이렇게 스며든 기술은 우리의 일터에 정착해 기업과 근로자의 인식, 그리고 일하는 방식을 바꿔놓는다. 서 교수는 앞으로 이러한 변화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기술 진보는 일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노동과 고용 환경 변화에도 큰 영향을 줄 겁니다. 단순하고 기계적인 일들은 결국 기계나 기술에 의해 대체될 거예요. 기술 발전은 늘 새로운 일자리와 생태계를 만들었고 일부 일자리를 대체해 나갔습니다.
중요한 건 기술과 인간이 협업해서 생산성을 높이는 겁니다. 기계를 경쟁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어떻게 기계와 협력해야 할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미래에는 인간과 기계가 경쟁하는 사회가 아니라 인간과 기계가 한 팀을 이루어 다른 인간·기계 협력팀과 경쟁하는 사회가 될 겁니다. 결국 기술과 기계는 도구에 불과해 인간이 기계를 이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을 고민해야 합니다."
기술과 기계를 도입해 생산성이 올라가면 주 4일 근무제 도입도 그리 먼 일은 아니라고 서 교수는 평가했다. 1918년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6일, 56시간을 일했던 세계의 근로자들이 이제는 주말은 휴식을 취하며 주 5일 근무를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여년 전 주 5일 근무제로 전환할 당시 경제적 타격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지만, 결국 주 5일, 40시간 근무제는 자리를 잡았다.
"주 4일 근무제가 분명 시대적으로 대세인 것 같아요. 기술 진보가 앞으로 인간의 노동시간을 상당 부분 단축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일을 적게 하더라도 기계, 기술과의 협업을 통해서 생산성이 올라가면 주 5일 근무가 주 4일 근무와 생산성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아질 수도 있죠. 그렇게 되면 굳이 주 5일 근무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 기술 격차 해소 등 해결 과제 산적…"갈등 완화 중요"
서 교수는 기술 진보가 곧 일하는 방식과 일터의 환경을 바꿀 것으로 내다봤지만, 신기술이 우리의 일터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각종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우려한 것은 기술을 받아들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다.
"기술 혁신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여력과 자본을 가진 대기업들과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 영세업자 간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할 겁니다. 아직도 많은 중소기업과 영세업자들은 인간의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어요. 기계와 협업할 수 없는 분야도 많습니다. 이들에게 제도적으로 주 4일 근무제를 강요하면 매출과 이익에서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어요. 이렇게 되면 회사와 직원 간의 갈등이 될 수도 있지만, 중소기업, 영세업자들과 정부 간의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습니다."
서 교수는 중소기업과 영세업자가 많은 지방의 공장에서는 청년 근로자를 구하기가 어렵고 외국인 근로자 비중이 높다고 설명했다. 또 이들이 기술과 기계를 도입하기에는 자본과 노하우가 부족하다고 우려했다. 만약 이러한 기업에 주 4일 근무제를 법·제도적으로 도입한다면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기술과 기계를 잘 다루는 인력을 확보하는 것 또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기술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이 생산성과 직결되는 상황이지만, 이러한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서 교수는 기술이 업무 환경에 깊숙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교육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술의 발전 속도와 비교해 인간이 기술을 이해하고 습득하는 숙련도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뒤처져 있습니다. 기술 습득에 실패한 많은 인력이 낙오되고 있어요. 소득도 뒤처지고 있죠. 실제 AI, 빅데이터, 클라우딩과 같은 새로운 도구를 완벽히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기업들은 그들이 원하는 충분한 인재를 못 구하고 정부는 만성적인 실업 문제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제 때문에 서 교수는 앞으로 새로운 업무 환경과 일하는 방식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으리라고 전망했다. '일의 미래를 만드는 과정에서 핵심에 두어야 할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갈등'이라고 답한 이유다.
"일의 미래는 기술이 만들어 가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갈등이 발생할 겁니다. 일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어는 결국 갈등입니다. 갈등을 어떻게 예방하고 완화하며 관리하는가가 중요합니다. 갈등을 선제적으로 예측해서 완화해야 비교적 상황이 매끄럽게 넘어갈 수 있을 겁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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