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은 총재 기자간담회 일문일답
"지금 젊은 세대 인플레이션 경험하지 못해"
"저금리로 갈거란 생각에 집 샀다면 조심해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가계부채를 연착륙시키는 게 제가 한은 총재가 된 이유"라며 앞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낮출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24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금통위는 5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했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은 기존 1.4%를 유지했지만, 내년 성장률 전망은 2.2%로 0.1%포인트 낮췄다.
이 총재는 "제가 걱정하는 것은 가계부채가 지금보다 더 올라가면 성장 잠재력을 크게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라며 "이미 그 수준은 넘었다고 본다. 그렇다고 가계부채 비율을 단기간에 내리면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천천히 내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것은 금리인하 기대감으로 집값이 바닥을 찍었다는 인식이 확산했기 때문이라고 이 총재는 말했다. 그러면서 빚을 내 집을 사는 젊은 세대에 '다시 저금리가 오지 않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총재는 "지금 젊은 세대는 인플레이션을 경험하지 못해서, 다시 저금리로 갈 거란 생각에 집을 사셨다면 상당히 조심하셔야 한다"며 "돈을 빌려서 샀을 경우 금융비용이 지난 10년처럼 낮아질 가능성은 크지 않으니 감안해서 부동산 투자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내 금리인하 전망에 대해선 "지금은 오히려 금리인상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금리인하를 논의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재차 강조했다.
아래는 이 총재와의 일문일답
-지난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가계부채가 더 늘지 않게 강력한 조치를 낼 거라고 말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할 수 있나.
▲가계부채가 지난 두 달 동안 예상보다 더 증가했다. 지난 10월 이후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 금융 불안이 심화되지 않도록 여러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을 했는데, 그 결과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 가능성이 커졌지만 가계부채도 늘었다. 가계부채 정책은 한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정부 당국과 같이 해야 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올라가는 일이 없도록 점진적으로 가계부채를 줄여나가자는데 정책 당국이 공감대를 형성했다. 미시적으로 가계부채 흐름을 조정해보고, 시장의 반응이 부족하다면 거시적 정책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까지는 아니다.
-기준금리는 동결됐지만 정책 상황이 바뀌면서 집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희비가 엇갈린다는 이야기 나오는데.
▲부동산 가격 때문에 손해 보는 사람이 있고, 이익 보는 사람이 있다는 건 당연하다. 저희가 통화정책을 할 때 부동산 가격 자체를 타깃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그 뒤에 있는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것이 금융시장 안정을 저해할 수 있고, 또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 성장 잠재력도 약화시키기 때문에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는 문제는 미시적으로 다른 정책 수단을 통해 해결할 문제다.
-현재 가계부채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가.
▲금리가 더 떨어질 거라는 예측이 많아지고, 그로 인해 집값이 바닥을 쳤으니 대출을 받아 집을 사자는 인식이 바탕에 깔린 것 같다. 여기에 50년 만기 대출을 통해서 DSR 규제를 회피하는 것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지난 10여년간 금리가 굉장히 낮았고, 지금 젊은 세대는 인플레이션을 경험하지 못해서 다시 그런 금리로 갈 거란 생각에 집을 사셨다면 상당히 조심하셔야 한다. 돈을 빌려서 샀을 경우 금융비용이 지난 10년처럼 1~2% 수준으로 낮아질 가능성은 크지 않으니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지 감안해서 부동산 투자를 하셔야 한다.
-가계부채 비율이 더 상승하면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국가 신용등급은 가계부채뿐 아니라 다른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국가 신용등급 하락보다는 가계부채가 지금보다 더 올라가면 성장 잠재력을 크게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미 그 수준은 넘었다고 본다. 그렇다고 가계부채 비율을 단기간에 내리면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천천히 내려야 한다. 제가 한은 총재로 처음 부임하면서 취임사에서 장기적으로 가장 관심을 두는 게 가계부채 연착륙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가계부채를 연착륙시키는 게 제가 한은 총재가 된 이유라고 생각하고 그 책임을 다하겠다.
-금통위원들의 향후 3개월 금리 전망은 어떤가. 연내 기준금리 동결을 유지할 가능성이 큰 상황인지.
▲금통위원 6명 모두 당분간 최종금리를 3.75%까지 올릴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 미국의 긴축 통화정책이 어느 정도 오래갈지에 따라 외환시장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 못 한다. 또 가계대출 증가세가 계속 확대될지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금리인상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금리인하를 논의하기는 시기상조다.
-최근 미국의 금리인하 시기 전망이 지연되고 있는데 한은은 내년 상반기까지 금리인하가 없다고 봐도 되나.
▲금리를 내리느냐, 유지하느냐를 기간을 정해서 말씀드릴 순 없다. 어느 정도 오래 고금리를 가져갈지는 물가상승률이 저희 예상대로 갈 건지, 거기 맞춰서 가계부채나 비금융기관의 금융안정 상황이 어떻게 지속될지 보면서 결정해야 한다.
-미국에서 물가 목표 2%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한국도 물가안정을 위해 고강도 긴축을 지속하다가 경제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지 않나.
▲미국에서도 2% 목표가 적합하냐는 논의가 계속 있어왔다. 중앙은행의 목표 금리가 2%보다 상방에 있으면 다시 저물가 기조가 왔을 때 중앙은행의 정책 수단에 여유가 생길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이론적으로는 검토해볼 만한 이유가 있지만 현재 물가 상승률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목표를 바꾸면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지금 그 논의를 하기엔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는 게 대부분 중앙은행 총재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또 저희가 금방 2%로 가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점진적으로 가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 수준에선 금리가 경기를 급랭시킬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근 우리나라 대출 증가나 통화량 증가 측면에서 보면 현재 금리가 여전히 긴축 영역이라고 판단할 수 있나.
▲전 그렇다고 생각한다. 여러 모델에서 우리나라는 긴축 범위의 상단이나 그 위에 있다. 명목 이자율에서 인플레이션율을 뺀 실질금리를 기간별로 보면 미국을 제외한 다른 어떤 선진국보다 우리나라가 높은 상황이다. 여러 가격변수를 고려한 금융상황지수 등을 봐도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금리 수준은 긴축 구간에 있다.
-우리나라는 Fed보다 금리를 먼저 올렸으니 먼저 내릴 수 있다는 시각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총재님 의견은.
▲미국보다 먼저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냐, 뒤에 내릴 것이냐는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그때 상황을 봐서 보고 판단할 것이다. 미국이 통화정책 기조를 긴축적으로 계속 가져갈 때 우리가 제약을 받는 것은 맞다. 지금 저보고 미국보다 먼저 내릴 수 있냐고 하면 말씀 못 드린다. 미국 통화정책 기조가 계속 긴축적으로 갈 경우 어떻게 할 거냐는 금통위원들과 상의해야 한다.
-지금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은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보나.
▲지금 현상은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최근 환율이 올라간 것은 달러가 강세가 되고 위안화와 엔화가 약세가 됐기 때문이다. 큰 틀에 봤을 때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변동성이 커진 것은 맞다. 한미 기준금리 격차 자체보다는 미국이 긴축 기조를 계속 가져갈 건지가 중요하다. Fed가 시장 예상보다 훨씬 높은 최종금리를 가져갈 수 있다는 발표가 나오면 시장이 크게 변동할 수 있다. 그런 가능성이 있을 경우 금리뿐 아니라 여러 미시적 시장 개입을 통해 그 변동성을 줄여야 한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1.4%)는 유지하고 내년 성장률 전망치(2.2%)만 낮춘 이유는.
▲최근 중국 경기 둔화에 초점을 많이 두고 있는 것은 알지만 지금까지 예상했던 중국경제 성장률과 지금 수준이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최근 불확실 요인이 더 커지면서 그로 인해 중국 경제가 침체할 가능성이 커진 거다. 내년 성장률 전망을 낮춘 것은 중국의 여러 시장 상황을 볼 때 내년에도 중국 경제의 빠른 회복은 힘들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반면 올해는 이제 4개월 남았다. 충격이 있어도 그 영향은 4분의 1이라서 지금 (올해) 성장률 전망을 크게 조정할 이유가 없다. 중국뿐 아니라 미국이나 유가, 미국 이자율 결정 등을 보고 10월에 보다 자세히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한은 통화정책의 초점이 물가에서 성장으로 옮겨갔나.
▲저희는 물가 안정이 가장 중요하고 두 번째는 금융 안정이다. 1.4% 경제성장률은 굉장히 낮지만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세계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가 '지금 국제 경제가 이런 상황에서 재정을 통해서 (성장률을) 0.1%포인트 올리는 것보다는 구조조정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저는 우리만 성장률이 낮아서 금리나 재정으로 보완해야 할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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