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가에 세금 부과하는 종가세 채택
용량에 부과하는 종량세 도입 목소리 커져
소주값 인상 우려가 발목
"제가 알고 있던 가격대랑 꽤 차이가 나서 그동안 해당 브랜드를 과대평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첫 해외여행으로 일본 후쿠오카를 다녀온 강현진 씨는 현지 주류전문점을 둘러보며 적잖이 놀랐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위스키들과 가격 차이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강 씨는 "국내에서 위스키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건 알았지만, 막상 가격표를 살펴보니 기분이 좋진 않았다"며 "앞으로 위스키를 구매할 때 좀 더 신중하게 가격을 따져보고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올해 1분기 위스키 수입량이 관련 통계가 있는 2000년 이후 역대 1분기 기준 최고 수준을 기록하는 등 위스키를 찾는 이들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위스키 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주세 체계 변경에 대한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페르노리카코리아는 지난 24일 ‘발렌타인’의 신규 컬렉션 ‘발렌타인 40년 마스터클래스 컬렉션’을 선보였다. 전 세계 108병 가운데 6병이 국내에 들어온 이 제품은 국내 판매 가격이 약 2000만원 수준에서 책정될 것으로 전해진다. 희소성이 높은 제품인 만큼 초고가 책정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글로벌 판매가로 알려진 1만1000달러(약 1470만원)와 비교하면 최근 고환율을 고려해도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이다.
같은 위스키를 두고도 국내 판매가가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되는 건 위스키·소주 등 증류주에 종가세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 주세법 때문이다. 종가세는 출고가격을 과세표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가격이 높은 술일수록 높은 세금이 붙게 되는 과세체계다. 특히 위스키 등 증류주의 세율은 72%로 약주·청주·과실주(30%)보다 세율이 높아 가격상승에 더욱 취약하다.
이에 따라 출고가 10만원인 위스키 한 병에 현행 과세체계를 적용하면 먼저 주세 7만2000원이 부과된다. 여기에 간접세로 주세의 30%인 교육세(2만1600원)가 붙고, 부가세 10%(1만9360원)까지 더해지면 최종 가격은 20만원 이상으로 뛴다. 과세표준의 두 배 이상으로 소비자 가격이 상승하는 셈이다.
종가세와 반대되는 과세체계가 술의 용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종량세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을 비롯한 5개국을 제외하고는 종량세를 채택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20년부터 맥주와 탁주에 대해선 종량세로 과세체계를 전환해 매년 물가상승률에 따라 조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양질의 원재료를 사용해 출고가가 오르면 세금도 같이 오르는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해달라는 업계의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여 준 것이다.
종가세를 채택하고 있는 현 주세체계는 국산 위스키를 만드는 데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높은 세율과 제조 비용을 고려하면 국내 생산 시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K-위스키를 표방하는 골든블루가 부산 기장에 위스키 생산공장을 두고도 스코틀랜드에서 원액을 수입해 호주에서 병입해 들여오는 게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김창수 위스키’의 김창수 대표가 ‘K-리큐어 수출지원협의회’에서 "국산 위스키 제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수입 위스키와 비교해 높은 주세 부담을 낮추거나 우리 실정에 맞는 종량세 도입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국세청에 건의하기도 했다.
위스키 업계를 중심으로 주세법 개정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업계는 증류주의 종량세 전환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맥주와 함께 국내 주류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희석식 소주의 가격 상승 우려에서다. 소주와 위스키가 증류주로 함께 묶인 상황에서 종량제로 전환이 이뤄진다면 위스키 가격은 낮아지겠지만, 소주의 가격은 크게 뛸 수 있다. 그렇다고 증류주에서 소주만 따로 떼어 과세체계를 만들기도 현재로서는 쉽진 않다. 1999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소주에 35%, 위스키에 100% 세율을 적용한 한국의 주세 제도가 WTO 협정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것이 현재 증류주에 붙는 세율을 72%로 일괄 적용하게 된 배경이기 때문이다.
당장 하반기 발표될 내년도 세제 개편안에 증류주 과세체계 개편이 담길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지만, 업계는 맥주와 탁주에 종량세가 도입됐듯 타 주종에 대한 종량세 전환도 단계적으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주종별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며 "주세법 개편은 위스키 가격 인하는 물론 해외로 이전했던 주류 공장의 국내 복귀로 이어질 수도 있어 소비자 후생 증진과 더불어 고용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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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위스키나 와인 등이 주요 소비 품목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처럼 너무 높은 세금을 부과할 시기는 지났다"며 "소주와 위스키에도 종량세를 도입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차 종량세 개편 통해 너무 낮은 소주 가격은 인상되고 과도하게 비싼 위스키 가격은 인하되는 것이 소비자를 위해서나 건강보험 등 사회적 비용 등을 고려했을 때나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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