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사무실 출근이 지금 대세가 된 이유
두 가지 결합, 뒤늦게 대세 형성 공통점
'미래를 향해 달리는 2개의 심장'
하이브리드(Hybrid) 자동차에 대한 현대자동차의 설명이다. 내연기관차의 엔진과 전기차의 배터리 모터라는 '두 개의 심장'을 장착하고 도로 환경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적절히 배분하는 자동차라는 뜻이다. 하이브리드차는 저속 주행할 땐 모터만 구동하고 가속할 때나 오르막길 등 큰 구동력이 필요할 땐 엔진과 모터가 동시에 움직인다. 일반적인 내연기관차에 비해 공해가 덜 생기고 주행 성능은 뛰어나다고 평가된다.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이렇다면 하이브리드 근무는 어떨까. 처음 들어본다는 독자들이 많다. 하이브리드라는 단어는 서로 다른 두 개 이상이 하나로 결합한 걸 말한다.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엔진과 배터리 모터의 결합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하이브리드 근무는 근무 공간을 하나로 고정하지 않고 집과 사무실, 두 곳을 오가며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 하이브리드 근무 비중, 3년 만에 12→39%로
하이브리드 근무는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되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전 세계에서 크게 주목 받고 있다. 아마존은 오는 5월부터 최소 주 3일 사무실로 출근하라고 직원들에게 요구했다. 디즈니는 이미 이 달부터 일주일 중 나흘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스타벅스도 지난 1월 주 3일 이상 사무실로 출근하라고 지시했다. 해외 유력 기업은 물론 국내에서도 코로나19 기간 중 재택근무를 적극 도입했던 카카오, SK텔레콤 등이 올해 들어 주중 일부에는 사무실에서 일하도록 조치했다.
'완전 재택근무'를 종료한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이들은 모든 업무를 집에서 하는 100% 재택근무는 끝냈지만 근무일 모두 사무실에 나와 일하라고 하진 않았다. 일부는 재택근무를 남겨두되 사무실 출근 일수를 전체 근무일의 일부로 제한하는 하이브리드 근무를 도입했다. 코로나19 이전에만 해도 검토하지 않았던 새로운 근무 형태가 확산하는 순간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트너가 이달 초 발표한 바에 따르면 전 세계 지식근로자 중 하이브리드 근무를 한 비중은 2020년 12%에서 지난해 37%로 3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사무실로 출근하는 비중은 20%에서 49%로 늘고, 완전 재택근무는 68%에서 14%로 폭락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는 듯 보였지만 하이브리드 근무 만큼은 크게 증가해 사무실의 변화를 예고했다.
주목할 부분은 하이브리드 근무를 도입하는 흐름이 단기적으로 끝날 상황은 아니라는 점이다. 가트너는 올해 말까지 전 세계 지식 근로자의 39%가 하이브리드 형태로 근무할 것으로 전망했다. 란짓 아트왈 가트너 선임 애널리스트는 "하이브리드 근무는 더 이상 단순히 직원을 위한 혜택이 아니라 직원들의 요구사항으로 자리잡았다"며 "많은 직원들이 지난해 부분적으로 사무실에 복귀하기 시작했지만 하이브리드 근무 방식은 올해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주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기업의 재택근무를 20년 가까이 연구해온 니콜라스 블룸 스탠포드대 교수도 향후 직장인 50%가 하이브리드 근무를 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좋은 운영 방안을 찾기 위해)앞으로 5년 간은 하이브리드 근무 경험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이브리드 車, 하이브리드 근무의 공통점
하이브리드 근무가 '대세'로 떠오른 과정을 들여다보면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묘하게 닮았다. 단순히 두 가지를 결합해 나온 결과물이라는 점 외에도 두 개념은 처음 등장했을 땐 크게 관심 받지 못했지만 이후 오랜 시간을 거쳐 시대적 맥락 속에서 뒤늦게 주목을 받고 대세로 떠올랐다.
최초의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1899년 등장했다. 포르쉐의 설립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개발한 '로너-포르쉐 믹스테-바겐'이 19세기에 만들어진 첫 하이브리드 자동차라고 한다. 당시만 해도 자동차의 작동 방식이 다양하게 개발될 때라 가솔린 엔진, 전기 모터, 증기 기관 등 다양한 동력원이 각축전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내연기관차가 승기를 잡았고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대한 관심은 수그러들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각광 받은 건 1990년대 들어서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친환경'이라는 가치가 미래에 확산될 것이라는 확신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해 1997년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프리우스를 출시했다. 양산형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효시로 불리는 차다. 판매 한 달 만에 3000대를 수주했고, 2020년까지 누적판매대수 1500만대를 달성했다. 도요타를 세계 1위 자동차 회사로 끌어올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자동차다.
하이브리드 근무의 일부인 재택근무(원격근무)는 1960~70년대에 이미 언급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개인용 컴퓨터와 저장 수단이 개발됐고, 화상회의도 1964년 세계박람회에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기술적으로는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이 당시 모두 마련됐다. 하지만 일하는 공간은 집이 아닌 사무실이라는 인식이 바뀔 계기가 마련되지 않았고 그렇게 수십년간 사무실 중심의 근무 형태가 유지돼 왔다.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된 것은 코로나19다. 전염병 확산이라는 외부 요인으로 인해 기업과 직장인은 강제로 재택근무를 할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사무실 출근과 재택근무라는 두가지 근무 형태를 동시에 경험하게 됐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앞서 오피스시프트("사무실 출근하라"지침에 사직…재택근무發 '인재이동' 현실화[오피스시프트]④·2월 12일자)에서 언급했듯 재택근무를 원하는 직장인과 사무실 출근을 요구하는 기업 사이에서 충돌이 빚어졌다. 하이브리드 근무는 그 속에서 균형을 찾을 수 있는 절충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 경기 침체가 불붙인 하이브리드 근무 '바람'
여기에 지난해부터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기 침체 우려가 기업의 하이브리드 근무 도입을 부추겼다. 새로운 근무 형태를 도입하면서 소통, 협업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실험이 필요한데 기업이 이를 감내할 상태가 아니다. 특히 기술을 바탕으로 재택근무 도입에 앞장서왔던 IT 기업이 실적 악화 직격탄을 맞기 시작했다. 대대적인 정리해고를 단행하는 것은 물론 구글, 메타 등 주요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올해 최우선 과제를 '비용 절감'으로 꼽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얼굴을 맞대고 협업하는 것은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실적을 되살릴 하나의 방책으로 평가된다. 앤디 재시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얼굴을 맞대고 눈을 맞추며 완전히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주는 무언가가 있다"고 했다.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플랫폼의 마크 저커버그 CEO도 최근 "대면근무를 하는 엔지니어가 원격근무하는 엔지니어보다 평균적으로 더 우수한 성과를 보였다"고 했다.
국내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카카오는 업무에 대한 비효율성과 소통의 어려움, 경기 침체로 인한 밀도있는 업무 환경이 필요하다며 사무실 출근을 우선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가 플랫폼 야놀자도 다음달부터 사실상 재택근무를 종료, 하이브리드 근무 체제를 도입하면서 "생산성 저하"를 체제 변화의 이유로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기업의 실적 부진이 직원들의 사무실 복귀로 해소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경기 침체 우려라는 시대적 맥락 속에서 하이브리드 근무 체제는 당분간 확산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이브리드 근무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과 근무의 유연성이라는 시대적 가치 속에 확산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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