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제재' 강조하며 '온플법' 강력 추진했던 공정위
정권 교체 뒤 자율규제로 '급선회'
최근 배달 플랫폼 사업자와 입점업체 사이의 거래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자율규제 방안이 공개됐다. 공정위는 자율규제의 성과를 강조했으나, 플랫폼의 불공정거래행위를 방치하는 결과를 부를 수 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국회에서는 자율규제로는 플랫폼 기업의 갑질 견제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규제에 초점을 맞춘 입법안들이 쏟아졌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입장을 선회한 공정위는 자율규제를 통해 갑을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방침이다. 플랫폼 기업의 ‘갑질’을 효과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방법론을 둘러싼 논의가 재부상하고 있다.
플랫폼 대표적 갑질 ‘최저가 보장’ 강요…현행법 제재 수단 모호
플랫폼 기업이 일으키는 대표적인 ‘갑질’ 유형 중 하나로 ‘최혜 대우’(MFN: Most Favored Nation)요구가 있다. 최혜 대우는 플랫폼 기업이 입점사업자에게 서비스나 상품의 가격, 거래조건 등을 다른 판매 채널에서 거래하는 가격과 동등하거나 더 유리하게 적용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배달앱이나 오픈마켓 등 플랫폼이 입점사업자들에게 자신의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상품을 타 유통 채널 대비 ‘최저가’로 설정할 것을 요구하는 게 대표적이다.
세계적인 오픈마켓 플랫폼 아마존도 입점 사업자들에게 ‘최저가 보장 조항’이 포함된 약관을 체결하도록 했다. 아마존의 이런 방침으로 인해 소비자들은 아마존이 아닌 다른 오픈마켓에서 더 싸게 물건을 사기 힘들어졌다. '최혜 대우' 요구에 대한 비판이 일면서 아마존은 해당 조항을 스스로 폐지했다. 2013년 유럽에서 조사를 받게 되면서 해당 조항을 삭제했고, 2019년에는 미국에서도 문구를 고쳤다.
우리나라에서도 오픈마켓 쿠팡이 입점사업자들에게 '최혜 대우' 조항을 담은 약관을 체결하도록 해 비판을 받았다. ‘판매자는 마켓플레이스 서비스를 사용해 판매하는 모든 상품에 대한 거래 조건을 다른 판매채널과 불리하지 않도록 설정해야 한다’는 식의 조항 때문이었다. 특히 쿠팡이 자사에 더 불리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다른 판매 채널’에는 오프라인 판매처까지 포함돼, 지나치게 강력한 최혜 대우를 요구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결국 지난해 8월 공정위가 쿠팡을 포함한 오픈마켓 7개사와 입점업체 간의 이용약관을 전수조사하면서, 쿠팡 역시 이같은 조항을 스스로 삭제하는 자진시정을 했다.
인터파크, 부킹닷컴 같은 호텔 예약 플랫폼(OTA, Online Travel Agency)들도 국내 호텔들에 최혜 대우를 요구해 문제가 됐다. 숙박업체들이 자사 플랫폼에 제공하는 가격, 객실 수 등보다 더 유리한 조건으로 다른 OTA나 호텔 자체 웹사이트에 제공하지 말도록 한 것이다. 예를 들어 특정 호텔이 A사를 통해 10만원에 객실을 판매하고 있다면, 같은 객실을 호텔 웹사이트뿐만 아니라 다른 OTA에서는 10만원 미만으로 판매해서는 안 되도록 한 것이다. 2021년 공정위가 해당 OTA들의 약관조항을 심사한 이후 OTA들은 이같은 최혜 대우를 자진 시정했다.
“시장지배적 지위 입증 어려운데다…거래상 지위 남용 입증도 어려워”
쿠팡과 해당 OTA 플랫폼 기업들은 모두 공정위 조사에 따라 해당 내용을 삭제하는 등 ‘자진시정’을 했다. 그러나 공정거래법 전문가들은 만약 이들 플랫폼 기업들이 자진시정을 선택하지 않았을 경우 공정위가 시정하도록 규제해도 업체가 행정소송을 하면 법원에서 이를 인정받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우선 쿠팡이나 인터파크 등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보기 어려워,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으로 처벌하기 어렵다. 공정거래법에는 '최혜 대우' 약정을 금지하는 명문 규정 또한 없다.
그렇다고 ‘일반 불공정거래행위 중 거래상 지위남용(갑질)’을 인정받기도 까다롭다. 공정위가 기업의 갑질을 제재하려면 먼저 해당기업이 입점사업자들에 비해 ‘거래상 지위’(‘갑’의 지위)가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플랫폼 기업의 거래상 지위를 입증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아서다.
거래상 지위를 입증하려면 입점사업자들이 오랜 기간(계속성) 오직 해당 플랫폼과만 거래(전속성)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 그러나 플랫폼 경제 질서에서는 플랫폼 기업의 전속성, 계속성 입증이 까다롭다. 플랫폼 경제에서는 ‘멀티호밍’이 일상화된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멀티호밍은 이용자가 복수의 플랫폼을 동시에 이용하면서 거래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입점 사업자들은 쿠팡만이 아니라 네이버, 11번가 등 다양한 오픈마켓들을 이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한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거래법 적용을 통해 플랫폼 기업의 거래상 지위를 입증해 제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면서도 “거래상 지위남용에 해당하려면 상대방 사업자가 지위를 남용한 사업자 외에 다른 대체 거래처를 찾지 못하는 경우(전속성)에 해당해야 하는데, 플랫폼 경제에서 전속성 입증이 어려운 점이 많다”고 귀띔했다. 또다른 공정위 관계자도 “플랫폼 기업이 입점사업자에게 장기계약을 요구하지 않음에도, 입점사업자들이 타 플랫폼으로의 전환비용이나 네트워크 효과 고려해 자발적으로 해당 플랫폼을 이용하는 현재 상황 등을 고려하면 전속성과 계속성을 입증하는 것이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멀티호밍 제한, 끼워팔기 등 플랫폼 ‘갑질’ 대응법 골몰해야
이같은 규제의 어려움은 ‘최혜 대우’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플랫폼 기업의 ‘멀티호밍 제한’(플랫폼이 입점사업자에게 경쟁 온라인 플랫폼 이용을 직간접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나 ‘끼워팔기’(플랫폼이 입점사업자 또는 서비스 이용자에게 플랫폼과 다른 상품 및 서비스를 함께 거래하도록 강제하는 행위) 같은 행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문제가 반복된다.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가진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경우에 해당하면 올해 1월 공정위가 제정한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에 대한 심사지침’을 적용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보기 어려운 일반 플랫폼 기업들의 불공정행위는 효과적 규제가 어렵다.
이 때문에 이같은 ‘갑질 제재’를 위해 별도 입법이나 공정거래법 개정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양용현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는 “거래상 지위남용 행위는 주로 하도급법, 가맹사업법, 대규모유통법 등을 통해 규제해왔다”며 “플랫폼 기업에 대해서도 이같은 불공정행위 부분을 규제하기 위한 특화된 별도 법이나 조항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정위 또한 전임 조성욱 위원장 시절 2021년 1월 제출한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에서, 온라인 플랫폼 중개사업자의 불공정거래행위 기준을 마련하는 내용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해당 안에서는 온라인 플랫폼 중개사업자가 자신의 거래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거래행위 유형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거래상 우월적 지위에 대한 세부적인 판단 기준은 고시를 통해 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공정위, 윤 정부 출범 이후 급선회 … ‘자율규제’ 해결 강화
당시 공정위는 고시나 새 심사지침을 통해 플랫폼 기업의 거래상 지위를 판단하는 전속성과 계속성 요건은 ‘보조 요건’ 정도로 완화시키는 방향을 유력하게 검토했다. ‘데이터 보유 규모’나 ‘거래 빈도’ 등 새로운 거래상 지위 판단 기준을 도입하는 방식이 유력했다. 이용사업자와 거래로 인한 데이터 보유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이면 거래상 지위가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플랫폼 기업의 갑질 제재를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취지였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플랫폼 규제 정책 기조를 ‘자율규제’로 선회하면서, 공정위 정책 기조도 급변했다. 공정위는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던 바와 달리 갑을문제는 ‘자율규제’로 풀어간다는 방침으로 정리했다. 이해관계자들이 사전에 입점 계약서에 들어갈 내용을 사전에 합의하는 등 방식으로, 플랫폼 기업의 일방적 ‘갑질’을 시장에서 스스로 규율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공개석상에서 빅테크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문제는 법제화 가능성을 검토중이나, 갑을문제는 자율규제를 통해 해결한다는 방향성을 분명히 했다.
지난 6일 배달앱 부분에서 플랫폼 사업자와 입점업체 간 거래관행 개선을 위한 자율규제 방안이 마련됐다. 배달의민족, 요기요 등 플랫폼 사업자들과 소상공인 단체들은 논의를 거쳐 배달플랫폼 입점약관(계약서) 필수기재사항에 ‘검색 노출순서 결정 기준’, ‘수수료와 광고비 적용 방식’ 등을 포함시키기로 했다. 다만 자율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김윤정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원은 “자율규제안에 참여하지 않은 기업들의 불공정행위가 벌어질 경우 이에 개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공정위 안팎에서도 기업들의 선한 의지에만 의존해 갑질이 효과적으로 자정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있다. 공정위의 한 직원은 “정부의 기조이기 때문에 택한 자율규제이겠지만, 정말로 실효성이 있을지는 두고봐야 할 문제로 본다”고 말했다. 한 국회 관계자는 “지난 정부까지만 해도 갑질 견제를 목표로 온플법 통과를 강조하면서 수백번씩 국회를 설득하려 했던 공정위가, 정권에 따라 맞춤형으로 입장을 바꾸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golde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