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관영매체 기준 풍계리 시찰이력 無"
피폭 적극 부정하더니…전문가 인용 편향적
"北 적용불가 이론…南 상수원 오염 가능성"
문재인 정부 시절 통일부는 '풍계리 핵실험장'의 방사성 물질 유출 우려를 강하게 부정했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실험장을 한 번도 찾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오히려 통일부가 보안각서를 내세워 피폭 검사 결과를 전면 공개하지 못하도록 막거나, 전문가 의견을 정부 입맛대로 편향되게 제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일부 관계자는 6일 "북한 관영매체 보도를 기준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풍계리 핵실험장(북부핵시험장)을 찾았다는 언급이 나온 적은 한 번도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밝혔다. 통일부가 김정은의 핵실험장 현지 지도 이력이 없다고 확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은 관영매체를 통해 원하는 모습만 선택적으로 공개하기 때문에 김 위원장의 동향은 추정만 가능하다. 다만 통일부가 관영매체 보도를 정세 분석의 근거로 삼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로선 정부도 김정은이 풍계리에 간 적 없다고 보는 셈이다. 김 위원장은 2018년 5월 각국 기자단을 불러놓고 갱도를 폭파할 때도 핵실험장이 아닌 철도 신설 현장을 찾은 바 있다.
핵실험을 가장 많이 감행한 북한 최고지도자가 정작 핵실험장은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는 것은 피폭에 대한 우려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의 증언도 이런 관측에 무게를 싣는다. 풍계리 출신 이모씨(60대)는 "평생 김정은이 풍계리 근처라도 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며 "반대로 주민들은 평양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그동안 '방사성 물질 유출은 전혀 없다'는 주장을 고수해왔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거나 외부의 현장 점검을 허용한 적은 없다. 갱도 폭파를 선전할 당시에도 핵 관련 전문가는 배제하고, 남측 기자들이 챙긴 방사능 측정기를 압수했다. 북측 기자가 남측 기자에게 갱도 앞 개울물을 마셔보라고 권했다가 '먼저 마셔보라'는 말에 거절했다는 일화도 있다.
北 김정은도 피하는데…'피폭 우려' 부정한 文정부
핵실험장의 방사능 유출 문제를 적극 부정한 건 오히려 문재인 정부였다. 2017~2018년 탈북민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피폭 검사부터 의문을 남겼다. 총 40명 중 9명에게 이상 수치가 검출됐고 일부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수습 작업자의 피폭량을 2배 이상 뛰어넘었지만, 정부는 '방사선 피폭도 원인일 수 있으나, 교란변수를 배제할 순 없다'는 애매한 답을 내놨다.
통일부는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남북하나재단)을 통해 한국원자력의학원에 검사를 의뢰했었는데, 본지가 입수한 당시의 용역표준계약서를 보면 의학원에 보안각서를 작성하게 한 것으로 확인된다. 통일부와 재단 측은 "통상적인 절차"라는 입장이지만, 최근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받은 결과지에서도 앞선 9명 외 정상으로 분류한 나머지의 결과는 여전히 비공개다.
2019년 국정감사 땐 '은폐 의혹'까지 불거졌다. 당시 속기록에 따르면 검사를 총괄했던 진영우 한국원자력의학원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장은 "국회에서 자료를 요구해도 마음대로 제출할 수 없고 심지어 연구논문에도 활용할 수 없다"고 국회에 증언했다. 원자력 안전규제 전문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 측은 구체적인 증빙자료조차 받아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우려 부정하는 의견만 제시…"정부 입맛대로 인용"
더 큰 문제는 통일부가 방사성 물질 유출 우려를 부정하기 위해 전문가 의견을 편향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이다. 주요 외신들도 위력이 가장 컸던 6차 핵실험 뒤부터 피폭 우려를 주목했지만, 통일부는 2019년 10월 '일부 유튜버의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격하하는 자료를 냈다. 이때 정부출연연구기관 소속 전문가를 인용했는데, 그가 제시한 이론은 이렇다.
북한의 핵실험은 밀폐된 지하에서 진행되고, 핵실험장이 위치한 만탑산 일대는 결정질암반 구조로 돼 있다는 설명이 상술된다. 이에 따라 핵폭발 직후 녹아내린 암석에 방사성 물질이 갇히게 되고 지하수로의 유입은 어렵다는 결론이다. 순간적인 초고열에 녹아버렸던 암석이 굳으면서 유리화가 이뤄지기 때문에 방사선 누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계에선 북한의 상황에 적용할 수 없는 이론이라는 반박이 나온다. 한국원자력학회 부회장을 지낸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해당 이론은 핵실험을 딱 한 번만 하거나 이후 물이 전혀 유입되지 않는 상황이어야 성립할 수 있다"며 "그런데 북한은 2~6차 핵실험을 모두 2번 갱도 내에서 격실만 옮겨 다니며 진행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기록도 없고, 선정배경도 의문…"전화로 자문받아"
서균렬 교수는 "유리화가 이뤄지면 당장은 단단하겠지만, 암석일 때보다 취성(脆性·외부에서 힘을 받았을 때 변형을 거의 보이지 않고 파괴되는 성질)이 높아져 추가 핵실험이 있을 때마다 금이 가고 물이 샐 것"이라며 "이 경우 연속적으로 수맥을 타고 방사성 물질이 퍼질 우려가 충분하다. 극미량이라도 남한 상수원 어딘가에 이르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통일부가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이용해 입맛에 맞는 의견만 제시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통일부는 해당 전문가의 답변을 전화(구두)로만 받아 기록을 남겨두지 않았고, 자문비 또한 지급한 내역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로선 당시의 전문가 선정 기준이나 배경조차 '알 수 없다'는 게 통일부의 입장이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대표는 "학자의 연구나 이론은 찬반이 있을 수 있지만, 정부가 한쪽 의견만 듣고 치우친 결론을 제시한 게 문제"라며 "더욱이 국책연구기관 소속이라면 정부의 영향력 내에 있지 않겠나"라고 꼬집었다. 이어 "정식으로 자료를 보내 자문을 구한 게 아니라 전화로만 했다는 것도 정부가 공표하는 자료를 준비하는 절차로 보기엔 부실하다"고 덧붙였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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