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기관차보다 구조작업 골든타임 짧아
"화재 시 행동요령 전 국민 홍보 캠페인 필요"
[아시아경제 최서윤 기자] “글쎄요, 어디서 들은 적이 없어서……. 사고나면 죽는거죠.”
21일 서울 영등포구에서 만난 60대 전기택시 기사 이모씨는 전기차 화재 사고 대처법에 대해 알고 계시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구조작업 골든타임이 짧다. 충돌 3초만에 800도 이상으로 치솟는 이른바 ‘배터리 열폭주’ 현상 때문이다. 리튬이온 배터리 특성상 한번 화염에 휩싸이면 걷잡을 수 없어 신속한 초동 대처가 내연기관차보다 더 중요하다. 하지만 전기차 운전자를 위한 행동요령 매뉴얼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근 전기차 보급 급증과 함께 화재 사고가 늘면서 대처 매뉴얼에 대한 교육·홍보에 더 신경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자동차 시장조사기관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는 지난해 국내에서 전기차가 16만4500여대가 팔렸다고 밝혔다. 1년 새 64% 증가한 규모다. 같은 기간 전기차 관련 화재는 44건으로 83% 늘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내연기관차와 비교해 전기차 화재 건수가 많은 건 아니지만 보급된지 10년도 안 된 전기차에 이정도 화재가 발생하는 건 상대적으로 많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전기차 배터리를 보관하는 팩(Pack)은 특수 강철로 만든다. 불이 나면 외부에서 구멍을 뚫어 물로 화재를 진압하는 게 쉽지 않다. 진화에 내연차보다 더 많은 물과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실제로 지난달 서울 성동구에 있는 미국 전기차업체 테슬라 서비스센터에 주차돼 있던 전기차 차량에서 갑자기 불이 났을 때도 소방 장비 27대, 인력 65명이 출동해 3시간만에 간신히 진화했다.
2021년 6월 미국 텍사스주에서 발생한 ‘테슬라 모델S’ 차량 화재 당시엔 완전히 진화하는 데 소방관 8명이 투입돼 7시간이 걸렸다. 물은 10만6000ℓ이 사용됐다. 일반 가정에서 2년동안 사용하는 양이다. 테슬라 긴급 대응 가이드라인을 보면, 모델S 배터리에 불이 났을 경우 완전히 진압하기까지 24시간이 걸리고 물 1만1400~3만ℓ가 필요하다. 내연차의 경우 물 1000~2000ℓ 정도면 진화할 수 있다.
한번 불이 붙으면 끄기 힘들기 때문에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을 최대한 늘려 사상자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에 배터리 이상 감지 범위와 경고 기능을 확대하고 화재 발생 시 강력한 경보 기능을 추가하는 것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기차 화재 진압법은 우선 '질식소화덮개'로 차량 위를 엎어 산소공급 차단하는 방식이 있다. 배터리가 있는 차량 하부에 집중적으로 물을 주입해 온도를 낮추는 냉각소화도 유효하다. 포켓식 또는 튜브식 수조에 전기차를 아예 담그는 방법 등도 쓰인다. 이마저도 완벽하진 않다. 자동차 배터리 양극재 주성분인 리튬금속산화물은 산소를 함유하고 있어 고온에서 산소를 방출하기 때문에 질식소화만으로는 소화가 어렵다. 차량 하부에 집중 주수(물 주입)도 쉽지 않다. 전기차 특성상 수천개 셀이 모여있어 정확한 발화 위치를 확인하기 힘들다. 수조식 진화도 공간적 제약과 충수에 많은 물이 필요하다는 어려움이 있다.
화재 대처 매뉴얼은 미완성이다. 정부나 소방당국도 비상 시 조치 방법, 화재 진압 방법, 확산 속도를 늦추는 방법을 알아가는 단계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도 상황은 비슷하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엔 과속방지턱이 많아서 차량 밑바닥을 퉁퉁 치고 달리는 내연차가 많은데,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가 충격을 바로 흡수해 운전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며 “이러한 세부 주의사항들을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매뉴얼을 만드는 동시에 이를 소비자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 교수는 “화재 진압뿐만 아니라 탑승객용 신속한 대피 방법과 신고 절차 등을 정립하고 알리는 게 중요하다”며 “자동차 업체와 정부가 함께 고민해야 하고 매뉴얼을 만들어 전 국민 캠페인으로 홍보해야 한다”고 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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