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미래 긍정도 조사서 63국 중 15위
신흥국은 미래 낙관…선진국은 비관적
스위스·스웨덴·일본 등 부정적 미래 전망
2014년 등장한 신조어 '헬조선'. 지옥을 뜻하는 영어단어 헬(Hell)에 조선을 붙인 합성어인 만큼, 스펙 경쟁·취업난·과로와 빈곤 등에 시달리던 국내 청년층의 우울한 심정을 상징하던 유행어였다. 하지만 이런 '헬조선'보다 더 국가의 미래에 비관적인 나라들이 있다면 어떨까.
16일 글로벌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전 세계 63개국을 대상으로 다음 세대 삶을 전망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현세대 대비 다음 세대 삶 전망' 질문에서 "다음 세대의 삶이 나보다 더 좋아질 것"이라고 응답한 한국인 비율은 56%, "나빠질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7%였다.
순위로는 전체 63개국 중 15위로 상위권에 속했다. 다만 갤럽은 "대부분 신흥국은 다음 세대 삶 낙관 전망에서 최상위권"이라며 "한국은 (신흥국 중에선) 다소 뒤처진 15번째"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한국보다 더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나라들은 어디일까. 이번 갤럽 조사를 바탕으로 '미래에 가장 비관적인 국가' 최하위 5개국을 살펴봤다.
5위 - 스위스
유럽의 내륙 국가이자 중립국인 스위스는 전체 응답자 중 단 24%만이 "미래 세대의 삶이 나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응답했으며, 34%는 나빠진다고 답했다.
짧은 기간 압축 성장을 이룬 신흥국이 미래에 더 낙관적인 경향이 있으므로, 이미 세계 최고 선진국 반열에 오른 스위스가 다소 비관적인 의견을 가지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금융·관광·기계 공업·제약 등 다방면으로 발달한 산업을 갖춘 스위스는 1인당 GDP만 9만2434달러(IMF 2022년 추정치·명목)로 한국의 약 3배 규모에 달하는 대표적인 '강소국'이다.
그러나 튼튼한 스위스 경제 이면에는 2010-12 유로존 부채 위기 후 오랜 시간 이어진 저성장,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과 악명 높은 고물가, 그리고 10%를 넘는(2020년 기준) 청년 실업률 등 그림자도 존재한다.
4위 - 일본
일본은 긍정 답변 21%, 부정 답변 14%로 4위를 차지했다. 1980년대 버블 경제의 후유증으로, 199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일명 '잃어버린 30년'을 경험하고 있는 일본 젊은이들은 미래에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수십년째 이어지고 있는 저성장의 여파로 일본의 명목 1인당 GDP는 지난해 기준 처음으로 대만에 추월당했으며, 한국과 거의 비등한 상태다.
이른바 '아베노믹스'로 알려진 정부의 적극적 재정 정책, 일본 은행의 양적완화도 인플레이션 폭등 국면에선 소비자들에게 짐이 되고 있다.
엔화 가치 하락, 에너지 수입 물가 상승 등 악재가 겹치면서 지난해 12월 기준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4.0%를 기록해 41년 만에 최대치를 달성했다. 반면 직장인의 임금은 상승하지 않아 실질임금이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3위 - 스웨덴
북유럽의 대표 복지국가 스웨덴의 미래 세대 긍정 답변은 21%로 일본과 동일했으나, 부정 답변이 33%에 달해 일본보다 훨씬 높았다.
노사정 대타협을 통한 튼튼한 사회 복지망과 경쟁적인 경제, 안정적인 정치로 잘 알려진 '모범 선진국' 스웨덴은 사실 최근엔 과거의 명성과 많이 달라졌다.
스웨덴 내에선 일자리·이민·치안 등 문제로 국민들 사이에 축적된 불만이 이미 정치적 균열을 낳고 있다.
반이민 정책을 내세운 스웨덴의 극우 정당 '스웨덴 민주당'이 지난해 10월 총선에서 원내 2당으로 도약하는 이변을 연출한 것이다. 이후 스웨덴 민주당은 범보수연합의 일원으로서 사상 처음으로 정부 구성에 참여하게 됐다.
2위 - 이탈리아
긍정 답변 16%, 부정 답변은 무려 47%를 기록한 이탈리아는 그리스와 함께 2010-12 유로존 부채 위기의 주요 피해자였다.
위기 당시 국가 GDP 대비 130%에 달하는 정부 부채를 삭감하기 위해 3대 유럽 기관인 EU 집행위원회-유럽중앙은행-IMF, 일명 '트로이카(Troika)'의 주도로 강력한 재정 긴축 프로그램을 단행했고, 이로 인한 후유증은 고스란히 국민들이 감당해야만 했다.
유로존 위기 이후로도 이탈리아의 경제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2020년 코로나19,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더욱더 상황을 악화했다. 지난 10여년에 걸쳐 이탈리아는 내외로 많은 혼란을 겪었으며, 2021년 기준 24%에 육박하는 청년실업률은 젊은층의 삶을 더욱 억누르고 있다.
1위 - 슬로베니아
발칸 반도에 위치한 소국 슬로베니아가 긍정 답변 14%, 부정 답변 53%로 1위를 차지했다. 과거엔 발칸 공산주의 국가 연합인 '유고슬라비아'의 일원이었으나, 독립 후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EU에 가입한 나라다.
구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 중에선 비교적 안정적으로, 또 신속하게 자본주의화에 성공한 사례로 손꼽히지만, 놀랍게도 슬로베니아 국민들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2021년 슬로베니아의 한 여론조사기관 '이 삶 만족도를 조사했을 때도, 전체 응답자 중 58%는 '행복하지 않다'라고 답변했다. 이런 변화는 최근에 시작된 것으로, 2019년부터 점차 불만족도가 오르기 시작했다. 조사기관은 코로나19 이후 증가한 사회경제적 혼란, 정부에 대한 불만 등이 복합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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