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안전진단 통과 후 재건축 순서 놓고 각축전
총 열 네개 단지라 동시 재건축 사실상 불가능
"두세단지씩 나누면 준공 10년 차이날 수도"
올해 초 정밀안전진단을 무더기로 통과한 서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들이 재건축 순서를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총 2만6000가구 규모인 열 네개 단지 간 경쟁에서 뒷짐만 지다간 ‘강산이 변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이들은 재건축 소식지에 경쟁이 시작됐음을 알리고 후속 절차인 정비계획수립을 위해 동의서 징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파에도 꽉 들어찬 목동 재건축 설명회…"진도 확 빼자"
지난달 28일 양천문화회관 해누리타운 2층 해누리홀에서는 목동 8단지의 재건축 설명회가 열렸다. 영하 5도의 한파에도 300석 넘는 좌석이 꽉 들어찬 것도 모자랄 만큼 소유주의 열의가 뜨거웠다. 목동 8단지 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는 이날 향후 절차를 설명하고 사업 진행을 위한 비용을 모금하는 한편 정비계획수립을 위한 동의서 징구에 나섰다. 재건축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정밀안전진단 통과 후 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정비구역으로 지정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 소유주 60%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날 목동 8단지 재건축 추진준비위원장은 "멀리서 온 소유주들은 다시 오는 일 없게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늘 꼭 동의서를 작성해달라"고 강조했다.
8단지뿐 아니라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한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들은 연이어 재건축 설명회를 개최하는 중이다. 목동 12단지는 지난달 14일 이미 설명회를 마쳤고, 오는 9일에는 양천문화회관 대극장에서 13단지의 모금 총회가 열린다. 한 목동 재건축 아파트 소유주는 "정부가 밀어줄 때 진도를 확 빼야 한다"고 말했다.
◆"삐끗하면 15년 밀린다"…재건축 순서 놓고 경쟁 점화
아무리 정부가 ‘재건축 대못’으로 불리던 안전진단 규제를 완화했다지만, 집값이 급락하는 부동산 침체기에 이처럼 정비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배경에는 자칫 재건축 후순위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존재한다. 재건축을 추진하는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는 열 네개 단지로 총 2만6600여가구다. 대규모 이주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면 전세 시장이 급격하게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지자체로서는 단지 별 재건축 단계에 차별을 둘 수밖에 없다. 두세 개 단지를 묶어 재건축이 진행된다고 가정하면 산술적으로 입주까지 15년 이상 차이가 날 수 있는 셈이다. 목동 A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14개 단지가 똑같이 재건축을 진행하면 전세 시장이 폭탄이 된다"면서 "개포나 반포처럼 목동도 단지별로 재건축 속도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가장 앞선 단지는 6단지다. 2020년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하고 서울시가 빠른 절차를 지원하는 신속통합기획 단지로도 선정됐다. 다음으로 정부의 규제 완화로 올해 초 3·5·7·10·12·14단지가 재건축을 확정 지었고, 1·2·4·8·13단지가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았다. 과거 재건축 탈락 판정을 받은 9·11단지는 다시 안전진단을 준비 중이다.
◆단지 간 신경전도…"재건축 큰 그림 봐야"
단지 간 보이지 않는 신경전은 이미 시작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건부 재건축 단지 소유주는 "6단지가 정밀안전진단을 1등으로 통과한 것이 재건축 1등이라는 뜻은 아니다"라면서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앞으로 조합설립이나 시업시행인가 시점이 더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 6단지 소유주는 "이미 신속통합기획에 들어갈 만큼 동력이 좋아서 다른 단지와는 속도 비교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단지 간 경쟁 분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자칫 경쟁이 분열로 이어져 재건축 추진에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목동 B 공인 관계자는 "지금 누가 앞서냐, 누가 더 안전진단 점수가 낮냐로 분열하기보다는 목동 재건축의 큰 그림을 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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