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저항 '0'인 상온 초전도체 연구 활발
"에너지 효율 극대화, 미래 기술 혁신 토대"
영화 ‘아바타 2 - 물의 길’이 최근 한국 관람객 1000만명을 돌파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여러 가지 과학적 지식을 배경으로 한 영화지만 기본 이야기 전개를 이해하려면 초전도체에 관한 공부가 필수다. 시대는 인류가 지구에 존재하는 우라늄 등 이용 가능한 에너지 자원을 다 써버린 먼 미래다. 인류는 상온 초전도 성질을 가진 매우 귀하고 값비싼 자원 ‘언옵테늄’을 캐러 외계 행성 판도라를 침략한다. 영화 속 공중 부양 ‘섬’들이 바로 언옵테늄의 실체다. 초전도의 주요 성질 중 하나인 마이스너 현상 때문에 다른 물체를 밀어내 공중에 떠 있다. 언옵테늄은 SF 영화·소설 등에서 자주 나오는 ‘구할 수 없는 자원’이란 뜻의 신조어다. 그만큼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상온(또는 고온) 초전도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핵융합 기술이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청정·무공해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상온 초전도 기술은 자원이 가진 에너지를 100% 이상 활용해 지금으로선 불가능한 미래 기술들을 상용화할 수 있는 토대다.
인류의 종말이 다가왔다. 후손들에게 단 한 가지 지식만 전할 수 있다면? 1980년대 세계 물리학계 최고 석학이었던 리처드 파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세상의 모든 것은 원자로 이뤄져 있다"는 말을 택한 것으로 유명하다. 원자 세계를 파악하는 것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예지가 담겨 있는 말이다. 대표적인 원자 기술 중 하나가 바로 상온초전도체 기술이다. 기존에도 초전도체 기술이 사용되고 있지만 액체 헬륨·질소 등을 이용해 최소 영하 100도 이하로 낮춰야 해 엄청난 장비와 비용이 든다. 상온에서 초전도 현상을 활용할 수 있다면 많은 응용 분야에서 대대적인 기술 혁신이 가능하다. 인류는 1911년 극저온(절대 온도 0도·섭씨 -273.15도) 상태의 임계치에서 전기 저항이 0이 된다는 초전도 현상을 발견한 후 현재 이 같은 상온 초전도체(Superconductor)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우선 초전도체의 개념과 원리를 알아보자. 세상의 물질은 전기가 잘 흐르는 전도체, 안 흐르는 부도체(절연체)로 나눌 수 있다. 오락가락하는 실리콘과 같은 반도체도 있다. 절연체에 불순물을 섞거나 전기장을 가해주면 전기가 통한다. 이에 비해 초전도체는 전기저항이 아예 없다. 전송 과정에서의 손실이 없고 열이 발생하지 않는다. 자기장을 밀어내는 현상(마이스너 옥센펠트·Meissner Ochsenfeld)도 보인다. 자기장이 물체 내부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표면에 반대 방향의 자기장이 형성돼 서로 밀어내는 것으로 자기부상열차의 원리다. 다른 물질과 맞닿았을 때 초전도성을 갖게 만드는 조셉슨 효과도 나타난다. 이런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온도·압력에 따라 전자 2개가 한 쌍을 이루는 쿠퍼쌍(Cooper pair) 현상 때문이다. 쿠퍼쌍 현상이 일어나면 내부 전기 저항이 제로가 된다. 꽉 막히던 도로를 일방통행으로 바꾸면 교통 체증이 사라지는 원리와 비슷하다. 1911년 네덜란드 카메를링 오너스가 액체 헬륨을 이용한 극저온 실험 도중 우연히 발견했다.
문제는 초전도 현상을 일으키려면 엄청난 장비와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현재 개발된 양자컴퓨터들이 건물 하나 크기인 게 대표적 사례다. 양자가 자유롭게 오가게 하려면 초전도 현상을 이용해야 하는데, 온도를 임계치(절대온도 4.2K)까지 낮추기 위해 액체헬륨·질소를 이용한 거대 냉각 장치 외에도 진공·무중력 장치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상온에서도 초전도 현상을 유지할 수 있는 물체, 즉 고온초전도체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별도의 장비나 자원·비용 없이 초전도 현상을 유지하는 물체가 개발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화 아바타 속의 ‘언옵테늄’을 지구상에서 재현할 수 있다. 전기 생산·저장·전달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손바닥만한’ 양자컴퓨터, 초저전력 반도체, 영화 ‘스타트렉’ 속 날씬하고 빠른 우주선, 돈·자원이 많이 들어 지지부진한 자기부상열차의 상용화 등이 실제 이뤄질 수 있다. 전력 손실이 전혀 없는 송배전·저장 장치(배터리)가 나온다. 풍력·조력·원자력 등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을 최소화한 초소형 발전기를 통해 어마어마한 전기를 생산할 수 있고, 병원의 자기공명촬영장치(MRI)도 아주 저렴해진다.
이미 1986년 구리산화물을 이용해 절대온도 35K에서 초전도 현상을 가지는 물체가 발견됐다. 2008년엔 철 산화물 기반 절대온도 21K에서 초전도 현상을 달성하기도 했다. 특히 2020년 미국 로체스터대 연구팀이 섭씨 15도 이하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체를 찾아냈다고 밝혀 물리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당시 연구팀은 두 개의 다이아몬드 사이에 탄소, 수소, 유황을 끼워 넣은 후 레이저로 엄청난 압력(상압의 260만배)을 가해 이 같은 실험에 성공했다. 하지만 1년여 후인 지난해 11월 데이터 조작 등의 의혹 때문에 게재 철회 조치를 당하면서 실험 결과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는 상태다. 관건은 고온초전도 현상의 원리를 규명하는 일이다. 아직까지도 과학자들은 단지 입자들을 격자 구조로 배치하면 고온초전도 현상을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정확한 원인을 규명해내지 못한 상태다. 양자역학의 대부분이 "왜?, 어떻게?"라는 의문에 답하지 못한 채 현상만을 파악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길호 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는 "고온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임계온도가 더 높은 물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감이 전혀 없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알려진 고온 초전도체의 임계온도는 대략 영하 250~100도 수준인데 이를 영상으로 올리려면 애초에 이런 고온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알고, 이를 기반으로 더 높은 임계온도를 가질 만한 물질을 설계해야 하는데 이것이 이론적 한계"라고 덧붙였다.
2021년 ‘이달의 과학기술인’으로 선정된 한승용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초전도자석을 초소형화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발전기 등에 사용되는 초전도자석이 높은 용량에서 타버리는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절연체를 없앤 ‘무절연 고온초전도 자석’을 만들었다. 기존 초전도자석의 크기를 100분의 1로 줄일 수 있는 신기술이었다. 현재 정부는 이같은 기술을 고도화ㆍ상용화시키기 위해 지난해부터 5년간 464억원을 들여 고온초전도자석 연구 개발 사업을 진행 중이다. 한 교수는 "전자들이 충돌해 열을 내기 전에 비어 있는 옆길로 넘어가게 하는 개념이 무절연 기술"이라며 "현재 국제핵융합발전소(ITER) 건설에 사용되는 초전도 자석이 20m가 넘는데, 이를 3~4m 내로 줄일 수 있다. 바이오, 메디컬, 국방, 도심형모빌리티 등 굉장히 많은 분야에서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온초전도현상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연구도 활발하다. 김현탁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연구전문위원은 2021년 초전도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임계온도 산출 공식을 개발해 국제적으로 관심을 모았다. 저온-고온-상온 초전도 현상 모두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었다. 김창영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도 2017년 고온초전도체 현상이 전자도핑계·홀도핑계 물질에서 모두 구현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
김용관 카이스트(KAIST) 물리학과 교수는 "쿠퍼쌍. 즉 전자 간 상호작용의 매개체가 뭔지 밝혀져야 고온초전도체 개발에 길이 열릴 것"이라며 "기초 학문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고체 물리학의 전반적인 수준이 높아져야 하며 우리나라의 경우 주도하기는 힘들어도 저변 인프라 구축을 통해 국제 과학계와 함께 연구 협력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