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유대감 클수록 치매 발병 적어
혼자 밥먹는 노인은 노쇠 빨라
끈끈한 가족애가 건강도 지킨다
[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 오랜만의 만남은 설렘을 부른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처음으로 ‘거리두기’ 없는 설 명절을 앞둔 지금이 그렇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연구원이 실시한 이번 설 연휴 교통수요 조사에 따르면 오는 20~24일 전국 귀성·귀경 총 이동인원은 2648만명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이동 인원 또한 530만명으로 지난해 설(432만명)보다 22.7% 늘어날 전망이다. 그간 코로나19로 왕래하지 못한 가족과의 만남을 얼마나 고대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만나지 못했던 가족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은 명절에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기도 하다.
가족의 끈끈한 유대감이 정서적 안정에 기여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별다른 갈등이 없는 가족이라면 함께 있을 때 즐거움과 편안함, 안정감을 느낀다. 그런데 이러한 가족의 유대, 더 나아가 사회적 유대가 치매 등으로부터 ‘뇌건강’을 지키고 ‘노화’를 늦출 수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의학적으로는 이미 증명됐다. 정서적으로 지지를 받는 고령층의 치매·알츠하이머 발병률이 훨씬 낮고, 가정이나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을 때 노화의 속도가 늦춰졌다. 혼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이른바 ‘혼밥’을 하는 노인일수록 건강지표가 나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지극히 평범한, 하지만 가족에게 쉽게 하지 못하는 말이 우리 가족의 치매와 노화를 막을 수 있다는 의미다.
정서적 지지 받는 노인, 치매 발병↓
국내 치매 명의로 손꼽히는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난달 의미 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오대종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교수와 함께 주변 사람들로부터 공감과 이해, 보살핌 같은 정서적 지지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노인들은 치매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지지는 주변으로부터 공감과 이해 등 감정적 지원을 받는 ‘정서적 지지’와 가사, 식사, 진료, 거동 등 실질적 도움을 받는 ‘물질적 지지’ 등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통상 자녀들이 생각하거나 사회적으로 이뤄지는 지원은 후자 위주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기본 생활이 불가능한 노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교수팀이 국내 60세 이상 노인 5852명을 8년간 추적·관찰했더니, 치매에 있어서는 완전히 결과가 달라졌다. 우선 물질적 지지는 치매 발병률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반대로 정서적 지지를 받는 노인과 그렇지 않은 노인의 치매 발병률은 크게 차이가 났다. 충분한 정서적 지지를 받는 노인의 치매 발병률은 매년 1000명당 9명에 그친 것에 비해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노인의 발병률은 15.1명으로 68%가량 높았다. 특히 여성에게서 이러한 연관성은 더욱 두드러졌다.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여성의 치매 발병률은 18.4명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10.7명)보다 72% 많았고, 치매 중 가장 흔한 유형인 알츠하이머병 발병률은 80% 더 높았다.
이는 물질적 형태의 도움보다 정서적인 공감이 뇌건강을 지키는 데 더욱 도움이 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나아가 가족의 도움과 함께 사회적으로 치매 예방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김 교수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고위험 노인을 대상으로 가족이나 유관기관에서 종사하는 이른바 ‘사회적 가족’들이 정서적 지지를 체계적으로 제공할 수 있게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특히 치매 관리에 있어서 가족의 역할을 강조한다. 인지장애를 겪는 본인이 인식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가족들이 더욱 관심을 갖고, 이상 증후가 보인다면 조기에 검진을 받도록 한다면 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적으로 치매를 관리하는 환자와 보호자의 특징에 대해 김 교수는 기본적으로 ‘긍정적’이라고 설명한다. 가족의 유대관계가 좋은 경우 치매 증상 발견 시점도 빠르고, 치료 경과도 좋다.
“어르신 혼밥하게 두지 마세요”
보다 구체적인 상황에서의 노년 건강을 다루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경희대병원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실험 노인학(Experimental Gerontology)’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혼자 식사하는 노인의 노쇠 정도가 함께 식사하는 사람이 있는 노인보다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쇠는 ▲체중 감소 ▲근력 감소 ▲극도의 피로감 ▲보행속도 감소 ▲신체 활동량 감소 등 5가지 지표 중 3개 이상이 평균치의 하위 20%에 속할 때를 의미한다.
연구팀은 연구를 시작할 당시 노쇠에 해당하지 않은 70~84세 2072명을 대상으로 2년간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함께 식사하는 사람이 있다가 혼자 식사하게 된 그룹의 노쇠 발생 위험은 지속해서 함께 식사하는 사람이 있는 경우보다 61% 높았다. 특히 체중 감소 위험은 혼밥 노인이 약 3배가량 증가했다. 반대로 연구 시작 때는 혼밥을 하다 밥을 함께 먹는 사람이 새로 생긴 경우 일부 노쇠 지표가 개선됐다.
연구팀은 혼자 식사하는 노인의 노쇠 위험이 높아지는 원인에 대해 영양결핍, 사회적 고립을 비롯해 우울감도 제시했다. 혼자 식사하며 생긴 우울감이 영양결핍과 고립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연구팀은 “혼자 식사로의 변화는 노인의 노쇠 발생 위험을 유의하게 증가시켰고, 그 연관성은 우울증을 매개로 하고 있다”며 “만약 함께 식사하다가 홀로된 부모님이 계시다면 이에 따른 우울감이 있는지 등을 주의 깊게 살펴야 건강한 노후를 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연하게도 영양결핍과 노쇠 현상은 뇌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하는 것은 곧 건강 악화로 이어진다. 이번 명절에 조금이라도 더 가족들에게 다가가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모두의 뇌건강을 위해 우리 가족의 손을 잡고 집 주변이라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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