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성필 기자] 대규모 피해를 양산한 ‘무자본 갭투기’ 전세사기는 임대인 단독 범행이 아닌 분양대행사, 컨설팅업체, 공인중개사 등이 기능적 역할을 분담해 저지른 불법행위인 것으로 경찰 특별단속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들 일당은 리베이트 취득이란 공동의 목적 달성을 위해 상호 공모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등에 따르면 무자본 갭투기 전세사기는 대다수 임대인과 건축주, 분양대행업자, 부동산컨설팅 업체, 공인중개사 등의 순차적 또는 묵시적 공모로 이뤄진다. 이들은 조직적으로 매물 물색, 임차인 모집, 계약서 작성 등 역할을 분담해 전세·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매도인에게 분양·컨설팅 대가로 받은 리베이트를 나눠가는 수법을 썼다.
거래 관련자별로 살펴보면, 임대인은 본인 또는 임대사업자 법인 명의로 보증금 반환 채무를 승계받아 주택을 다량 매수하는 역할을 한다. 건축주 등 매도인으로부터 매매(분양) 대가로 받는 리베이트를 얻는 데 목적이 있다. 경찰 관계자는 "임대차 계약 만료나 시세 하락 시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택을 반복적으로 매수하는 이유"라고 했다. 빌라·오피스텔 등 주택 1139채를 보유하다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숨진 ‘빌라왕’ 김모씨, 빌라 등 3493채를 소유해 일명 ‘빌라의 신’으로 불린 권모씨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건축주는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빌라 매매대금으로 받아 신축 투자금을 회수한다. 이들은 대부분 은행 등 금융기관 대출을 통해 빌라를 짓지만, 분양이 되지 않을 경우 분양대행업자와 손잡고 수익 또는 적어도 본전을 챙긴다는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건축주들은 임대인 등이 매매와 전세 계약을 동시에 체결하는 이른바 ‘동시진행’ 수법을 써서 세입자를 속인 것을 알고도 투자금 회수를 위해 분양대행업자와 묵시적 동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분양대행업자는 건축주와 부동산컨설팅 업체, 임대인 사이 연결고리 역할이다. 건축주에게는 분양이 어려운 신축빌라를 분양시켜주겠다며 접근해 목적물을 확보한다. 부동산컨설팅 업체로부터는 ‘무자본 갭투기’를 원하는 임대인을 추천받아 섭외하고, 인근 공인중개사에게 리베이트를 지급해 피해 임차인을 구한다. 경찰 관계자는 "분양대형업자가 직접 임대사업자를 섭외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 경우 임대사업자가 무자본으로 주택을 매수할 수 있도록 설계를 해주곤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컨설팅업체는 이른바 ‘브로커’로 통용된다. 소개비 명목으로 리베이트를 받는 게 목적이다. 공인중개사무소나 분양대행업자에게 접근해 매수할 임대인이 있다면서 소개하고, 임대인에게는 ‘무자본 갭투자’가 가능한 부동산이 있다고 연결하는 역할이다. 경찰 관계자는 "컨설팅업체는 거래에 참여하는 임대인뿐만 아니라 노숙인, 사회초년생, 저신용자 등을 적극 섭외해 속칭 ‘바지사장’으로서 주택명의자로만 활용하기도 한다"며 "10만~50만원 정도의 소액의 리베이트를 주고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경우도 다수"라고 했다. 사실상 몸통이란 의미다. 2021년 제주에서 숨진 빌라 임대업자 정모씨의 배후로 지목된 컨설팅업체 대표 신모씨가 대표적 사례라고 한다.
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는 무자본 갭투기 거래구조 등을 숨긴 채 임대인과 임차인 간 계약을 중개하는 경우가 많다. 무자본 갭투기 전세사기로 피해를 본 김다운씨(37·가명)는 "전세 계약 당시 공인중개사는 집주인이 갭투자자인 사실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며 "보증금을 만기일에 맞춰 못 받게 된 뒤 찾아가 봤지만, 그 사무소는 문을 닫은 지 오래였다"고 말했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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