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동 D아파트 총 60가구 중 34가구 경매
가족·친구가 나란히 전세사기 피해자
임대인, 중개업자, 건물관리업체 대표
51인의 사기 역할극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인천시 미추홀구 도화동의 D아파트는 총 60가구 중 34가구가 경매에 모조리 넘어갔다. 피해 보증금 규모만 대략 30억원 정도. 이 단지의 피해자 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 이모씨(30)는 2020년 8월 대출금 6000만원에 수중에 가진 돈을 긁어모아 8000만원의 보증금을 주고 전세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법원으로부터 해당 건물이 경매 진행 중이라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피해 임차인들을 모아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만들었는데 참여 중인 세입자들의 프로필을 보니 결혼식 사진과 함께 D+100이 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피해 세대 중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들이 많다는 이야기죠."
수염도 깎지 못해 초췌한 모습으로 천천히 말을 이어가던 이씨는 주안동의 한 빌라에 세들어 사는 남동생도 전세사기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전했다. 이씨의 남동생 역시 8000만원이 넘는 보증금을 날릴 처지에 놓였다. "저희 아파트 피해자 중에 부모님도 전세사기에 걸려들었거나, 바로 길 건너 주상복합에 거주하는 친구가 전세사기를 똑같이 당한 경우도 있어요." 이씨는 본인처럼 미추홀구에 사는 주변인 중에 가족, 친척, 지인 등이 전세사기의 덫에 함께 걸려든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왜 미추홀구에 전세사기 빌라가 밀집됐나 =이처럼 미추홀구에 유독 전세사기가 많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추홀구는 인천의 대표적인 구도심으로 낙후되고 침체된 이미지가 강한 곳이다. 신축이 귀한 곳이라는 얘기다.
이 일대 공인중개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미추홀구 전세사기의 실질적 배후로 지목된 건축왕 A씨(61)는 경인로와 한나루로를 관통하는 도로변에 위치한 2~3층의 저층 건물을 집중적으로 매입했다고 한다. 이 일대가 일반상업지역으로 묶여 아파트와 같은 주거시설을 지을 수 없자 저층은 오피스텔, 고층은 빌라 형태를 띤 주상복합을 올렸다. 임대를 준 세입자들의 보증금과 임대 준 건물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을 자금줄 삼아 신축 건물을 짓고 거기로부터 나오는 보증금을 또 다른 건물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보유 건물 수를 늘려간 것으로 보인다.
M아파트와 도보 5분거리의 D아파트, D아파트와 길 하나를 마주보고 위치한 S아파트, 도보로 15분 거리면 닿는 E아파트와 O아파트. 모두 전세사기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곳이자 나홀로 건물들이다. 이 5개 건물에서 경매가 진행 중인 가구수만 모두 274가구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오피스텔은 법적으로 상업용 부동산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오피스텔로 상업 부동산 비율(40%)을 맞추고 나머지 세대는 고층부에 아파트 형태의 주거 공간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주상복합을 지은 뒤 임대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일대 사기 피해자 가운데는 유난히 2030세대가 많은 이유는 인천 서구 가좌동에 주안국가산업단지가 존재해 배후수요가 풍부해서다. 주안국가산업단지는 어림잡아 만 명 이상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는 대규모 산업단지지만 주변에 젊은층들을 위한 주거 선택지는 많지 않다. 신축 아파트 아니면 엘리베이터도 없는 노후빌라뿐이다. 정부나 인천시가 지원하는 안정적인 주거 시설도 턱없이 부족하다. 인천경제산업정보테크노파크에 따르면 인천시와 고용노동부가 공동 지원하는 ‘인천 주안 산업단지근로자 기숙사 지원사업’에 선정된 근로자는 2022년 기준 326명에 불과하다. 건축왕 A씨의 신축 건물들은 이점을 파고들었다.
미추홀구 도화동의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인근에 있는 도화택지지구에 위치한 신축아파트는 시세가 3억원이 넘고, 이 외에는 노후빌라가 대부분이라 주거 양극화가 극명한 곳이 바로 미추홀구"라며 "신축빌라에 대한 청년층, 신혼부부의 수요가 많은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미추홀구 도화동 더샵 인천스카이타워 1단지 전용면적 74㎡는 지난해 12월 4억5900만원에 매매됐다. 대출을 통해 자금을 마련한다고 해도 최소 2억원의 종잣돈은 있어야 넘볼 수 있는 주거지다.
"밑천이 부족한 우리같은 세대는 엄두도 못낼 곳이예요." 이씨는 D아파트에 전세계약을 맺은 14개 가구 중 대출이 없는 가구는 2가구 뿐이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D아파트의 평균 전세 보증금은 8000만원 안팎이다.
D아파트의 전세사기 피해자인 김모씨(36)는 "도화택지지구에 있는 신축 아파트는 자금 부담으로 진입하기 어렵고, 어차피 대출을 받아야 하면 1000만~2000만원의 빚을 더 내 도로변에 인접해있고 신축인 이곳으로 오자고 결정했다"고 전했다.
◆1인3역 전세사기극…공범만 51명= 세대 수가 최소 30가구 이상인 빌딩 한 채가 통째로 경매로 넘어가기는 흔치 않은 일이다. 전세사기가 조직적으로 이뤄졌고 가담한 공범이 그만큼 많았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인천경찰청에 따르면 건축왕 A씨의 사기 행각에 연루돼 조사를 받고 있는 공범은 51명이다. 이들은 부동산 중개업자로 둔갑하거나, 특정 건물의 임대인이 되거나, 건물관리업체의 대표 행세를 했다. 근저당이 잡혀 있는 매물은 거래를 성사시키기 어렵고 중개업소에서 매물 자체를 취급하지 않자 아예 부동산 중개인 노릇까지 하며 피해자들을 꼬드긴 것이다. 1억2000만원이 넘는 근저당이 설정돼 있어 계약 맺기를 꺼리는 이들에게는 계약으로 인한 문제 발생 시 1억원까지 보상해준다는 공제증서까지 내밀었다.
아시아경제가 인천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로부터 제공받은 피해 아파트의 등기부등본, 임대차계약서, 관리비 고지서 등을 분석한 결과, 임대인으로 이름을 올린 김**씨는 인근 건물을 중개한 계약서에는 중개보조인으로 나와 있었다. O아파트의 주택종합관리업체로 등록된 업체의 대표도 김씨였다. 심지어 경매로 넘어간 C아파트의 H주택관리업체의 대표인 이**씨는 C아파트를 중개할 당시 대리인 역할을 했고 마찬가지로 전세사기로 떠들썩한 E아파트의 계약서에는 임대인으로 나와 있다.
동일범이 저지른 사기행각이라는 단서는 또 있다. 바로 공동현관 비밀번호다. 지난해 9월 전세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윤씨(36)는 배달대행업을 하며 먹고 산다. 그는 경인로 일대 신축빌라로 배달을 갈때마다 공동현관문 입력키에 자신이 거주 중인 건물의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눌러봤다. 79**. 문이 열린 F아파트가 전세사기가 일어난 곳임을 직감했다고 한다. F아파트의 피해자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그는 본인이 거주 중인 아파트 건물관리업체와 F아파트의 건물관리업체가 H업체임을 알게됐다. 임차인들은 사실상 동일한 조직일 것으로 간주한다. 현재 F아파트는 총 92가구가 경매에 넘어갔다.
심지어 제1금융권인 K은행의 대출 직원이 사기 행각에 연루된 정황도 포착됐다. 윤씨는 "2018년 8월 베트남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다가 일주일 휴가를 얻어 귀국 후 살 집을 급하게 구해야 했던 상황"이라며 "부동산 중개업자가 주안역 앞에 있는 K은행에 동행해 번호표도 받지 않고 특정 직원이 담당하는 창구로 직행해 대출 승인을 받았다"고 했다.
윤씨가 2020년 전세대출 연장을 위해 해당 은행을 다시 찾았지만 당시 대출을 진행해줬던 직원은 퇴사한 상태였다고 한다. 윤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금융브로커까지 가세해 전세사기를 일삼은 셈이다. 이에 대해 K은행 측은 "현재 해당 직원은 근무하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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