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피해지원센터 최근 3개월간 총 3800여건 상담
임차인 최씨 "보증금 못 받으면 아파트 분양권 날릴 판"
피해자 50% 이상 30대, 지역은 강서·미추홀구 많아
[아시아경제 곽민재 기자] "지난달에 보일러가 고장 나서 집주인에게 전화했는데 연락이 두절됐어요. 빌라왕 뉴스를 보고 불안해서 확인해보니 ‘무자본 갭투자’ 사기더라고요. 혹여 전세보증금 1억5000만원을 몽땅 날릴까 걱정돼서 같이 사는 친구와 택시를 타고 센터로 왔습니다." (전세 사기 피해자 이모씨(24))
최근 방문한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위치한 전세피해지원센터. 오전 시간대임에도 10개 정도인 대기석에는 상담을 기다리는 임차인들로 가득했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임차인들의 표정에는 근심이 가득했고 입에서는 연신 한숨이 새어나왔다. 센터 관계자는 "전날 센터를 찾은 30대 남성 피해자는 상담 접수를 하는 와중에 임대인에 대한 분노를 못 참고 고성을 지르며 욕을 하기도 했다"며 "누가 봐도 전세사기가 명확한데도 돌려받을 방법이 없는 분들이 이곳을 찾아 답답함을 호소하시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날 센터를 찾은 최모씨(45)는 전국 3493채 세입자의 보증금 미반환 의혹을 받는 ‘빌라의 신’ 권모씨의 전세사기 피해자다. 최씨는 지난해 6월 거주하는 신축빌라가 가압류에 걸렸다. 그가 돌려받지 못한 전세보증금은 2억9000만원. 이 가운데 최씨의 돈은 9000만원, 나머지 2억원은 전액 대출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최근 서울의 한 아파트 분양에 당첨돼 계약금까지 날릴 위기에 처했다. 최씨는 "전세자금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면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다"며 "만에 하나 분양권 잔금을 갚지 못해 계약이 해제되면 계약금 1억원도 돌려받지 못하게 된다"고 탄식했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전세피해지원센터는 전세계약으로 인해 피해를 본 임차인을 대상으로 법률상담·긴급주거 및 금융지원을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곳이다. 최근 전세 사기 피해가 급증하면서 개소 이후 약 3개월간 총 3800여건의 상담이 이뤄졌다.
오후 시간대가 되자 센터는 상담을 받기 위한 방문자로 더욱 붐볐다. 낮 2시 기준 상담 예약률은 80%에 달했다. 하루 평균 상담건수는 40건에서 최근 50건대로 늘었다. 센터 관계자는 "빌라왕 사태 이후 언론에 전세사기 관련 보도가 늘면서 센터를 찾는 임차인들의 발길이 급증했다"면서 "진행되는 상담이 길어지거나 식사를 하러 나가기 직전 피해자가 찾아오는 경우도 있어 가끔 끼니를 거를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곳을 찾는 피해자는 주로 서울에 거주하는 20~30대 청년들이 가장 많았다. 실제로 대전에 거주하는 박모씨(59)는 아들이 화곡동 신축빌라에서 전세 사기를 당한 사실을 알고 서울로 급히 올라와 함께 센터를 방문했다고 했다. 강현정 전세피해지원센터 센터장은 "최근 센터를 방문한 피해자들은 50% 이상이 30대인데, 지역은 서울 강서구가 가장 많았고 인천 미추홀구가 그 다음이었다"면서 "가장 많이 보이는 피해 유형은 신축빌라 등을 무자본 매입해 보증금을 편취하는 ‘무자본 갭투자’"라고 설명했다.
센터에서는 방문 상담 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걸려오는 전화상담이 쉴 새 없이 이뤄지고 있었다. 센터 관계자는 "피해자를 위해 최대한 많은 지원을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법적인 테두리에 제한이 있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면서 "전입신고, 점유, 확정일자 등 3가지를 만족해야 세입자에게 우선변제권이 생기는데 임대인에 속아 보증금반환 전 퇴거할 경우 보증보험에 가입하더라도 돌려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곽민재 기자 mjkw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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