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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모금]과학기술이 부른 재앙과 죽음…'화이트 노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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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 편집자주


미국의 블랙스미스란 소도시에 어느날 시커먼 검은 연기 덩어리가 피어오른다. 유독물질을 실은 탱크차가 도시 외곽에서 탈선하면서 도시 전체가 검은 구름에 뒤덮이게 된 것이다. 이 사태로 인해 칼리지온더힐 대학에서 ‘히틀러학과’ 학과장으로 평화로운 삶을 살던 잭 글래드니와 가족에게 시련이 찾아온다.

작가는 미국문명의 본질적인 문제가 사회, 정치적 문제들을 루머와 가십, 상품광고 같은 유쾌한 기호들에 파묻어버리는 후기산업사회적 면모에 있음을 날카롭게 간파한다. 또한 현대 미국문명으로 대변되는 물질문명의 특성을 ‘테크놀로지에 대한 맹신’으로 그려내며 인간들의 대안 없는 질주를 비판한다. 또한 미디어의 ‘스펙터클’과 기업의 돈벌이로 전락해버린 진부화된 재난과 현대적 죽음의 의미를 묘파한다.

[책 한 모금]과학기술이 부른 재앙과 죽음…'화이트 노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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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장님, 점잖고 선량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 텔레비전에서 재난 장면을 보면 빠져드는 이유가 대체 뭘까요?”

“우리 정신이 흐려지고 있어서겠지.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폭격을 끊어놓으려면 가끔씩 대재난이 필요한 거요. (…) 대재난만이 우리의 주목을 끄는 법이오. 우린 그걸 원하고 필요로 하며 거기 의존하고 있소. 다른 곳에서 발생하기만 한다면 말이오.” p123~124


가족이란 이 세상의 온갖 잘못된 정보의 요람과 같다. 가족의 일상사에는 사실의 오류를 낳는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하다. 지나치게 밀접한 관계, 존재의 소음과 열기 같은 것. 어쩌면 생존의 필요와 같은 좀더 심오한 뭔가가 원인인지 모른다. 우리는 적대적인 사실들로 가득 찬 세상에 둘러싸인 망가지기 쉬운 생물이라고 머리는 말한다. 사실들은 우리의 행복과 안전을 위협한다. 우리가 사물의 본성을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우리의 구조는 더욱더 느슨해져 보일 것이다. 가족이 굴러가는 과정은 세상의 영향을 봉쇄하는 쪽으로 작동한다. p153


“그게 바로 현대적 죽음의 속성이지요.” 머리가 말했다. “현대의 죽음은 우리와 독립된 별도의 생명이 있습니다. 아주 거창하고 폭넓게 자라고 있죠. 전에 없이 활발하게 퍼지고 있고요. 우리는 그것을 객관적으로 연구합니다. 그것의 등장을 예견하고 몸속에서 움직이는 경로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의 횡단면도를 찍고 박동과 파동을 영상으로 기록할 수도 있어요. 우리가 그것에 이렇게 가까이 간 적도 없거니와, 그 습성과 태도에 이렇게 친숙한 적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아주 친밀하게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계속 자라서 폭과 넓이를 획득하고, 새로운 출구와 새로운 통로와 수단을 얻고 있어요.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될수록 그것은 점점 더 크게 자랍니다. 이건 어떤 물리법칙 같은 걸까요? 지식과 기술이 진일보할 때마다 그에 걸맞게 새로운 종류의 죽음이, 새로운 변종이 나타나는 식이죠. 바이러스 매개체처럼 죽음도 적응을 해나갑니다.” p273~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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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노이즈 | 돈 드릴로 지음 | 강미숙 옮김 | 창비 | 604쪽 | 1만8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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