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 구축 '라온', 내년 3월 본격 가동 앞두고 저속 구간 첫 빔 인출 성공
초미시세계 원자, 중성자, 양성자 등 탐구하는 초거대 관측 장비
100만분의1 나노미터 수준 팜토미터 세계 들여다봐
태초 우주 비밀 탐구, 생명체 근원 연구, 신약개발 등 용도 다양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우주대폭발(빅뱅) 3분 후 태초의 우주를 재현한다."
지난 7일 기초과학연구원(IBS)이 구축 중인 한국형 중이온가속기(RAONㆍ라온)가 내년 3월 본격 시험 운영을 앞두고 첫 번째 빔 인출에 성공했다. 가속기는 인간의 인지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원자 등 초미시세계와 태초 우주 탄생의 비밀을 탐구할 수 있는 도구다. 희귀동위원소를 활용한 신약ㆍ종자 개량ㆍ신약ㆍ반도체 개발 등 실용적인 용도도 다양하다.
원자 세계 들여다 본다
가속기는 간단히 말하면 입자, 즉 물질의 가장 작은 기본 단위인 원자를 이온화시킨 후 빠르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장치다. 자연계의 모든 물질의 원자는 핵과 전자로 이뤄져 있으며 자연상태에서 중성으로 안정적이다. 수소 원자는 핵 하나에 전자가 밖에서 도는 구조로 평상시라면 가속되지 않는다. 여기에 인위적인 조작을 통해 전자를 빼주면 양전하가 되면서 수소 이온이 된다. 이같은 이온화는 이온 소스 장치가 담당한다. 가속기의 필수 장비다. 자기장을 형성해 원자를 가둬 놓은 상태에서 표적 물질을 향해 전자 다발을 쏜다. 이렇게되면 표적물질은 전자가 빠져나와 이온화되며, 여기에 강력한 고주파 전기장을 걸어 주면 입자가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가속기의 기본적인 원리다. 이를 위해 가속관 내부는 전자가 아무 저항없이 이동할 수 있는 극저온( -273℃)·초전도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내부의 표면이 극도로 정밀하게 가공·용접돼 저항을 극소화해야 하며, 반도체처럼 클린 룸에서 조립해 이물질도 없애야 한다.
정영세 IBS 중이온가속기사업단 시스템통합부장은 "이온을 가속화하기 위해 1초에 약 8125만번 정도 플라스, 마이너스로 전환하는 고주파 전기를 걸어 주는 게 가속기의 핵심 기술"이라며 "자석의 같은 극끼리는 서로 밀어내듯이 이온들이 계속 같은 전하 상태를 유지하도록 해 가속도를 내게 만든다"라고 설명했다.
라온은 이같은 가속기 중에서도 우라늄 등 상대적으로 무게가 무거운 원자들을 가속하는 '중(重)이온 가속기다. 총 사업비 1조5000억원을 들여 2011년부터 구축 중이다. 현재는 초속 약 3만㎞까지 가속할 수 있는 저속 구간의 54개 가속관이 완성된 상태다. 지난 3일 이중 5개 가속관을 시험 가동해 '빔 인출'에 성공했다. 초전도 가속관, 초전도 냉각설비(-271℃까지 유지), 고주파 전원장치(고에너지 325㎒) 등의 핵심 설비가 정상적으로 가동돼 입자를 가속시킬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연구소는 앞으로 46개의 고속 구간 가속관을 더 만들어 최대 광속(초속 약 30만㎞)의 50%까지 입자를 가속시키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2025년까지 126억원을 들여 선행 연구개발(R&D)을 진행하며, 이후 결과에 따라 고속 구간 건설에 들어간다. 정 부장은 "저속 구간과 고속 구간에 큰 기술적 차이는 없지만 속도가 빨라진 만큼 더 크고 견고하고 정밀한 가속관을 만들어 붙여야 한다는 게 숙제"라며 "극저온ㆍ초전도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것은 물론 표면 처리, 용접 및 후처리 기술의 개선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정 부장은 또 "기술적으로 어렵다기 보다는 그동안 저속 구간 건설에만 매달렸어야 할 정도로 인력 부족 등에 시달려 왔다"면서 "개인적으로는 고속 구간 건설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태초 우주 신비 밝히고 신물질 창출
중이온가속기는 무엇에 쓰는 물건일까? 기존 현미경들이 기껏해야 나노(10억분의1미터ㆍ㎚) 단위 이상만 볼 수 있다면, 중이온가속기는 100만분의1 나노미터 이하의 펨토미터(fm) 크기인 원자, 중성자, 양성자를 세계를 탐구할 수 있는 일종의 거대한 초정밀 관측 장비다. 이온을 가속시킨 후 충돌, 분열시키고 걸러내는 작업을 통해 다양한 원자핵을 만들고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고 어떤 작용을 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인간도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진 원자핵에서 시작해 원자가 모인 분자, 분자가 모인 단백질로 이뤄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원자ㆍ중성자ㆍ양성자의 특성을 알아내고 심지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생명의 근원은 물론 질병 치료 등에 큰 진전을 가져 올 수 있다.
태초 우주의 비밀도 연구한다. 연구소는 우라늄 등을 이온화한 입자를 초속 15만㎞까지 가속한 후 표적 물질에 충돌시키는데 이는 우주대폭발(빅뱅) 3분 후의 상태와 유사하다. 빅뱅 직후 3분 이내에 양성자ㆍ중성자가 생겨났고, 이후부터 핵융합이 발생하면서 헬륨ㆍ리튬 등 무거운 원자핵이 생겨났다는 게 현재 과학자들의 추정이다. 우주를 구성하는 원소들이 탄생한 '천체핵합성과정'이 진행된 것이다. 이중에서도 철(Fe) 등 무거운 원소들은 그 생성과정이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연구소는 라온에 '되튐분광장치(KoBRA)'라는 시설을 설치해 빅뱅 3분 후의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성해 핵반응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연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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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동위원소의 발견도 중요한 목적이다. 이온화된 입자가 특정 물질에 부딪히면 온도가 상승하고 원자들의 파편이 발생한다. 이것들 중에 희귀동위원소들이 있다. 예컨대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모리타 고스케 연구팀은 2016년 중이온가속기를이용해 새로운 원소(원자번호 113번)를 발견해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같은 희귀동위원소 연구는 새로운 식물 종자를 만들거나 신소재ㆍ신약 개발, 암 치료, 핵폐기물처리 기술 등에 활용될 수 있다. 라온은 특히 세계 최초로 '온라인동위원소분리장치(ISOL)'와 '비행파쇄동위원소분리장치(IF)'를 동시에 이용해 수명이 아주 짧은 다양한 희귀동위원소를 만들도록 설계돼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밖에 중성자별의 특성을 연구하기 위해 무거운 중이온 2개를 충돌시키는 '대수용다목적핵분광장치(LAMPS)'도 구축된다. 신소재ㆍ반도체 개발에도 활용된다. 희귀동위원소를 이용해 새로운 성질을 갖는 물체를 개발할 수 있다. 또 반도체에 대한 방사선 안정 평가도 해외 가속기가 아니라 라온에서 실시할 수 있게 되며, 암 치료를 위한 새로운 방사선 치료법도 연구될 예정이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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