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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1만년의 신비 앞에서, 우리는 모두 손전등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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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화산섬 용암동굴 (벵뒤굴·만장굴·김녕굴) 르포
1만년 전 용암 흘러 생긴 26km 동굴
일반인 출입 금지된 좁고 험한 동굴, 제주 세계자연유산축전 기간 중 탐방 가능
칠흙같은 어둠 속 엉금엉금 기어 아찔한 동굴 통과
제주 4·3 사태 당시 주민들 은신처 되기도

[르포]1만년의 신비 앞에서, 우리는 모두 손전등을 내려놓았다 제주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위치한 벵뒤굴을 방문한 취재진이 동굴 밖을 바라보는 모습. 천연기념물인 벵뒤굴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복잡한 동굴이자, 동굴 형성 초기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 사진 = 김희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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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잠시 손전등과 헤드랜턴을 꺼주십시오."


지난달 25일 제주도 조천읍 ‘벵뒤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세계자연유산 동굴 앞에서 모두가 숨을 죽였다. 동굴 안내를 맡은 기진석 학예사의 제안에 가져온 모든 불빛을 소등했다.


그 순간, 꿈 같은 일이 벌어졌다. 눈을 뜬 것인지 감은 것인지 구별이 안 되는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태어나서 처음 마주한 온전한 어둠. 미지의 세계를 인도하는 예식이었을까. 1만 년 전 생성된 것으로 알려진 벵뒤굴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옛 모습 그대로 탐험대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흥분과 경건의 마음이 교차하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인간의 시간과 자연의 시간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1시간, 1일, 1월, 1년…. 인간에게는 길게 느껴질 그 시간이 자연 앞에서는 찰나의 순간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공유했던 그 어둠의 시간이 끝나자 하나둘 손전등이 불을 밝혔다. 엉금엉금 바닥을 기어 동굴 중간부를 통과했다. 용암이 흐른 흔적, 불의 길이 그대로 남은 동굴 곳곳은 위태롭고 아찔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그 공간, 안전모와 작업복이 없었다면 부상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1만 년의 신비를 경험하는 것은 대가를 필요로 한다. 어둠 속에서 미끄럽고, 바닥은 고르지 못한 용암바위 사이를 사실상 기어서 이동했다. 하지만 자연에 바치는 오체투지의 열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열매를 선사했다. 험난한 지면과 용암 벽면을 지나고 또 지나서 마주한 벵뒤굴의 속살을 마주한 그 경험, 탄성으로 이어지는 흥분된 순간이었다.


벵뒤굴은 1만 년 전 형성된 용암동굴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가운데 하나다. 거문오름부터 월정리 해안까지 용암이 흘렀던 총 26㎞ ‘불의 숨길’의 상부에 있다.


[르포]1만년의 신비 앞에서, 우리는 모두 손전등을 내려놓았다 평지를 흐른 용암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는 벵뒤굴 내부 구조.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지만 제주 세계자연유산축전 기간 중 한시적으로 탐방객을 모집해 공개한다. 사진 = 김희윤 기자

제주 방언으로 넓은 들판을 뜻하는 벵뒤를 딴 동굴은 용암이 평평한 지대를 흐르다 여러 갈래로 갈라져 거미줄처럼 넓게 퍼진 국내 최대 미로형 용암동굴로 알려졌다. 전체 구간만 4.5㎞, 입구만 십여 군데가 넘고 내부가 복잡하며 빛이 새어 나가지 않는 구조 덕분에 제주 4·3 사건 당시 이곳은 토벌대를 피해 온 주민들의 은신처 역할을 했다.


역사의 혼돈을 피해 온 민중들의 목숨을 지켜줬던 공간. 제주도민에게 벵뒤굴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동굴 안에는 당시 주민들이 사용했던 가재도구 일부가 남아있다." 기 학예사 설명에 다들 귀를 기울였다. 그때의 숨결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한때 인간의 쉼을 허락했던 그 공간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벵뒤굴은 좁고 험한 구조,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동굴 생태계가 갖는 자원으로서의 가치 때문에 일반인 출입이 한동안 금지됐다. 하지만 올해는 특별한 이유로 소수의 사람에게 그 공간의 접근을 허락했다.


올해 세 번째 맞는 제주 세계자연유산 축전 기간(10월 1∼16일) 중 특별 탐험대에 한해 일부 탐방이 허용된 것이다.


벵뒤굴이 속한 거문오름용암동굴계는 거문오름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분출된 용암류가 지형적인 경사면을 따라 약 14㎞ 떨어진 해안까지 흘러가면서 형성된 용암동굴군을 지칭한다. ‘성스러운 곳’이라는 의미를 담은 거문오름은 유네스코 등재 당시 조사위원들부터 "성스러운 기운이 느껴져 더 이상 들어가는 것은 옳지 않겠다"면서 외관만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천혜의 자연유산이다.


[르포]1만년의 신비 앞에서, 우리는 모두 손전등을 내려놓았다 제주 벵뒤굴 천장에 보석처럼 맺힌 종유석의 모습. 불을 비춰보면 금가루처럼 반짝반짝 빛나는데 이는 습한 동굴환경에 서식하는 곰팡이로 구성돼있다. 사진 = 김희윤 기자

벵뒤굴 탐방에 앞서 방문한 만장굴은 총 7.4㎞, 최대 너비 18m, 최고 높이 25m에 이르는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최대 규모 동굴이다. 입구는 총 3곳으로 현재 일반 관광객에게는 제2 입구의 1㎞ 구간만 공개하고 있다.


제2 입구 전반부 미공개 구간을 진입하니 상부와 하부 이중 구조로 바닥은 용암이 만든 밧줄구조의 주름 층이 선명하게 남아 1만 년 전 이곳을 흐른 용암동굴의 규모와 방향을 실감케 했다. 큰 종유석과 다양한 형상의 돌들이 그 규모로 관람객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어 찾은 ‘불의 숨길’ 4구간에 위치한 김녕굴은 바닥에 하얀 모래가 인상 깊었다. 바다로부터 날려와 쌓인 모래를 지나면 705m 규모의 동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낙석으로 인한 안전상 이유로 현재 출입이 불가한 구역이나, 축전 기간 제한적으로 탐사가 허용됐다.


문화재청과 제주특별자치도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재재단, 세계자연유산마을보존회가 주관하는 이번 축전은 10월 1일부터 16일까지 제주도 내 세계자연유산 지구 일원에서 개최된다. 올해 축전은 용암길 전 구간을 걷는 ‘세계자연유산 워킹투어’와 벵뒤굴·만장굴·벵뒤굴의 미공개 지역을 탐사하는 ‘특별탐험대’ 등의 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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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에는 성산 일출봉 특설무대에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기념식도 열린다. 세계 자연유산을 소재로 열리는 세계 유일 축전으로 제주자연유산축전은 세계적으로도 그 희소성이 높다. 축제운영을 총괄하는 강경모 총감독은 "제주자연유산축전은 학술적, 자연유산적 가치가 탁월한 제주의 자연 유산과 만날 특별한 기회"라며 "올해는 세계자연유산마을 7곳(선흘1리·선흘2리·덕천리·월정리·김녕리·행원리·성산리) 주민들이 직접 축전 운영을 맡아 진행하는 만큼 프로그램의 깊이를 더했다"고 강조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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