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불법촬영·스토킹 등 여성 대상 범죄
여성들 불안함 호소하는데…정치인들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
스토킹 피해자, 국가로부터 방치…"제도 변경 필요해"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여성들의 분노가 다시 커지고 있다. 지난 17일 '불꽃페미액션'을 비롯한 여성단체들은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서 긴급 추모제를 열면서 "여성노동자의 죽음에 정부는 구조적 폭력임을 시인하고 사과하라"라고 말했다.
추모공간이 마련된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들은 '살아서 퇴근하고 싶다' '분노에서 멈추지 않고 행동하겠다' 등 이 사건에 대한 추모와 분노의 문구가 담긴 메모지를 벽에 붙였다. 일부 사람들은 메모지를 읽으면서 발을 떼지 못하거나 화를 내기도 했다.
한 두 명 이상한 사람의 범죄로 보기엔…너무 많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은 여성들이 꾸준히 지적한 '여성 대상 범죄'의 종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사건의 피의자 A씨(31)는 살인을 저지르기 전 불법촬영과 스토킹 등으로 피해자로부터 고소당한 바 있다. 피해자와는 무관하게 A씨는 과거 음란물 유포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범죄는 곳곳에서 일어나는 탓에 여성들은 불안함을 호소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네이버, 카카오 등 인터넷사업자들은 이용자 신고에 따라 2만7587건의 불법촬영물, 허위영상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삭제 또는 접속 차단했다. 지난해 스토킹 범죄의 112 신고 건수도 1만4509건으로 전년 대비 3.2배 증가했다.
장필화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불법촬영과 스토킹, 신체적 폭력 모두 연관 있는 범죄라는 것을 이번 사건이 보여주고 있다"라며 "나쁘거나 이상한 사람이 저지른 범죄라고 간주해도 왜 그 범죄가 유독 여성에게만 향하는지 반문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불안 느끼는데…정치권은 동떨어진 발언 이어가
여성들은 실질적 위협을 느끼는데 정치권은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을 하면서 불만 폭발로 이어졌다. 이상훈 더불어민주당 서울시 시의원은 남성 가해자에 이입한 듯한 발언으로 여성들을 분노케 했다. 지난 16일 이 의원은 시정 질문에서 "(피의자가 피해자를) 좋아하는데 받아주지 않으니까 여러 폭력적인 대응을 한 것 같다"라며 "서울교통공사에 들어가려면 나름 열심히 사회생활하고 취업 준비하는 서울시민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 인권을 챙겨야 할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역시 여성들이 공감하지 못할 발언을 했다. 그는 지난 16일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방문한 신당역에서 "이번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보지 않는다"라며 "남성과 여성의 이중 프레임으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인터넷에 머물던 여성 혐오 사상이 공론장에 스며든 사례들이다"라며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를 공감하지 못하고 사안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문제 해결이 지지부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폭력 속 피해자 방치했던 국가…믿을 곳 없다
국가가 여러 차례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었는데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도 들끓고 있다. A씨는 불법촬영 및 스토킹 등 혐의로 검찰로부터 징역 9년형을 구형받는 등 죄가 중한데 법원은 도주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아울러 경찰은 피해자가 안전조치 연장을 원치 않았다는 이유로 한 달 만에 중단했다.
두 사례 모두 법원과 경찰이 법적으로 어긴 것은 없다. 하지만 여성 대상 범죄 피해자의 공포를 가볍게 보는 경향이 제도로 드러났다는 게 여성단체들의 지적이다. 장 교수는 "구속영장을 기각했던 사법부가 이 사안을 무겁게 보지 않았던 것 같다"라며 "이 사건의 피해자 외에도 얼마나 많은 여성이 국가의 방치 속에서 크고 작은 피해를 보고 있겠나"라고 말했다. 배 대표는 "제도가 바뀐다면 국민 의식은 천천히 따라올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국가가 여성 문제를 계속 가볍게 본다면 제도적인 해결책을 기대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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