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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규의 야구라는 프리즘]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리자 멋진 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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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청각장애인 야구선수 호이, 그 덕에 심판의 핸드사인 개발
사인 발명자 찾는 건 불의 발명자 찾는 만큼 복잡해
장애인·비장애인 야구로 교류…수화가 핸드사인 형태로 도입

[최민규의 야구라는 프리즘]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리자 멋진 게 나왔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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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가 앉은 자세에서 미트를 끼지 않은 오른손을 아래로 내리고 검지를 편다. ‘패스트볼을 던지라’는 신호다. 손가락이 두 개면 커브, 세 개면 슬라이더, 네 개면 체인지업이다. 구종은 투수와 포수의 약속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야구에서 손 모양으로 사인을 보내는 시스템은 오래전부터 이용돼왔다. 투수와 포수 간 구종 전달은 물론 벤치에서 수비수에게 위치를 지시할 때도 사용된다. 공격에서 베이스 코치를 거쳐 타자나 주자에게 보내는 희생번트, 도루, 히트앤드런 등의 작전도 사인으로 전달된다. 심판도 손을 사용해 스트라이크와 볼, 아웃과 세이프를 판정한다.


뉴욕대 경영대학장을 지낸 로렌스 리터는 1966년 초창기 유명 야구선수 스물세 명의 인터뷰를 담은 책을 출간했다. 국내에는 ‘추억의 다이아몬드(The Glory of Their Times)’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이 책에서 메이저리그 통산 안타 2961개를 친 샘 크로포드는 한 야구선수 때문에 심판의 핸드 사인 시스템이 개발됐다고 한다.


크로포드는 1899년 신시내티 레즈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1902년 윌리엄 호이라는 마흔 살 베테랑이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이적했다. 이름보다 ‘더미(Dummy)’로 더 자주 불린 선수다. ‘멍청이’라는 뜻으로, 당시 청각장애인을 가리키는 속어였다.


호이는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도루 596개를 기록했다. 중견수 수비도 일품이었다. 한 경기에서 주자 세 명을 홈 송구로 아웃시켰을 정도다. 다만 목으로 내는 소리가 크지 않아서 외야로 공이 날아오면 우익수였던 크로포드는 호이의 소리를 듣느라 귀를 기울여야 했다. 크로포드는 "일부 사람밖에 모르지만, 심판이 스트라이크일 때 오른손을 치켜드는 동작은 호미 때문에 시작됐다. 호이는 말할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심판의 콜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손 사인이 나왔다"라고 술회했다.


크로포드는 역사가가 아니다. 호이도 메이저리그에서 뛴 최초의 청각장애 선수가 아니다. 1872년에 필 하인즈, 1883년에 에드 던돈이 먼저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당시 언론 보도에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심판 빌 클렘이 하인즈에게 핸드 사인으로 스트라이크와 볼을 판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1883~1884년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로 활약한 던돈은 2년 뒤 한 경기에서 심판을 보며 손으로 볼을 판정하는 사인을 했다.


전문적인 견해에 따르면 핸드 사인의 기원은 복잡하다. 야구역사가 폴 딕슨은 2019년 펴낸 저서에서 "사인 발명자를 찾는 건 불의 발명자를 찾는 것과 비슷하다"라고 썼다. 그는 함선의 깃발 신호, 전장에서의 수신호 등이 핸드 사인의 발명과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최초의 야구 경기가 열리고 16년 뒤 발발한 남북전쟁(1861~1865)의 군대식 수신호도 그중 하나였을 수 있다. 최초의 프로야구 구단인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는 1869년 창단 첫해에 이미 포수가 투수와 내야수에게 사인을 보내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청각장애인들도 핸드 사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야구는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국민 스포츠로 성장했다. 미국야구학회(SABR) 회원 자미 피셔와 랜디 피셔의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 청각장애인 사이에서도 야구가 성행했다. 최초의 청각장애인 야구는 1865년 오하이오에서 시작됐다. 선수들은 미국 수화(ASL)로 경기 중 소통했다. 청각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야구로 교류하며 자연스럽게 수화가 핸드 사인 형태로 도입됐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견해다. 가령 심판의 아웃 사인은 미국수화의 ‘아웃(Out)’ 단어와 유사하다. 손바닥을 아래로 해 두 팔을 벌리는 세이프 사인은 ‘자유(Free)’와 같은 동작이다.


호이는 1888년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전년(1887)에 내셔널리그는 야구 규칙을 변경하고 1, 3루 옆에 코치박스를 설치했다. 이전까지는 코치가 정찰대마냥 파울 라인 바깥을 배회하며 선수에게 작전을 지시했다. 호이는 루키 시즌 타석에서 공이 들어온 뒤 몸을 돌려 독순술(讀脣術·입술이 움직이는 모양을 보고 상대편이 하는 말을 알아내는 방법)로 심판의 볼 판정을 읽었다. 하지만 파악에 어려움을 느껴 최대한 빠른 볼카운트에서 타격했다. 워싱턴 코칭스태프는 좌타자인 호이를 위해 새로운 사인 시스템을 개발했다. 3루 코치가 스트라이크면 두 손 중지를 오른쪽, 볼이면 왼쪽을 가리켜 신호를 보냈다.


이 시스템을 다른 타자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자연스럽게 나왔을 것이다. 딕슨은 호이의 사례가 감독에서 코치, 선수로 이어지는 사인 전달 체계 발명에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장인 53년 동안 감독을 지낸 코니 맥은 그해 호이의 동료 포수였다. 맥은 호이가 입단한 1888년에 투수에게 손을 사용해 전달하는 견제구 사인을 고안했다. 당시에는 주자 도루를 막는 견제라는 개념이 없었다. 야구가 한층 전술적 게임으로 변모하는 데 호이가 영향을 미친 셈이다.


호이는 1902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로부터 6년 뒤인 1908년에 메이저리그는 모든 심판이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을 수신호로 하도록 규정을 변경했다. 청각장애인 선수를 위한 일종의 ‘서비스’가 야구 전체로 확대된 셈이다. 당시 야구장에도 스코어보드는 있었다. 하지만 볼과 스트라이크, 아웃카운트를 알리는 시설은 없었다. 선수와 관중 모두 흐릿한 심판 목소리 대신 눈으로 볼 수 있는 사인으로 효용을 얻었다. 심판도 성대를 보호할 수 있었다.


호이가 뛰던 시절 미국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장애인에게 적대적이었다. 장애인 커뮤니티에 대한 공격도 만연했다. 호이는 스타 선수였지만 자주 야유와 조롱을 받았다. 누구보다 똑똑한 플레이를 했으나 별명이 ‘더미’였다. "너는 ‘우리’의 일원이 아니다"라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그 시절에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야구장이라는 같은 장소에서 함께 어울리자 뭔가 멋진 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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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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