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간 가정폭력 시달려… 아들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
1심서 징역 12년… 항소심 변호인, '참작동기 살인' 주장
[아시아경제 김대현 기자] 수십 년 간 가정폭력에 시달린 끝에 남편을 살해한 아내 김모씨(60)의 이야기다.
남편 A씨(66)는 지나치게 가부장적이었고, 의처증 증세도 심했다. 술만 취하면 김씨가 외도를 했다고 의심했다. "아들도 다른 남자와 낳은 것 아니냐"고 폭언까지 일삼았다. 이혼 생각이 간절했지만, 김씨는 아들을 생각해 계속 참고 살았다.
지난해 5월29일. A씨가 술에 취해 집에 돌아왔다. 저녁 6시가 조금 넘은시각, 김씨는 남편이 좋아하는 열무김치를 저녁 반찬으로 담가줬다. A씨가 식사 중 술을 마시며 "너 바람피우지, 이 집은 내 집이니까 나가라"라고 다시 막말을 했다. 김씨가 화를 내자 A씨는 머리채를 잡고 목을 조르며 "네 엄마와 동생을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쳤다.
그 말에 김씨는 A씨를 넘어뜨렸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심장 질환이 있던 A씨의 힘이 먼저 빠졌다. "숨쉬기 힘드니 내려와라"라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김씨는 그간의 폭력과 분노 등이 머리에 스쳤다. 김씨는 A씨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아들도 증인으로 나와 "아버지의 폭행 정도가 하도 심해서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란 취지로 진술했다. 배심원 7명은 모두 유죄 평결을 했다. 1심 재판부는 "오랜 결혼 생활 동안 잦은 폭언과 폭행을 당했던 것으로 보이며, 사건 당일도 일정 부분 이러한 상황이 벌어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다만 김씨의 양형기준을 '제2유형'으로 분류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정한 살인범죄의 양형기준은 범행 동기에 따라 제1유형(참작 동기 살인), 제2유형(보통 동기 살인), 제3유형(비난 동기 살인), 제4유형(중대범죄 결합 살인), 제5유형(극단적 인명경시 살인)으로 분류한다. 제1유형은 기본 권고형량이 4~6년이지만, 제2유형은 10~16년이다.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김씨는 형량이 과하다며 항소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3층의 한 법정. 형사6-1부(재판장 원종찬 부장판사) 심리로 김씨의 항소심 결심공판이 열렸다. 검사는 항소를 기각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반면 변호인은 김씨의 살인을 제1유형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수사기록 등 증거를 보면, 피고인이 상당한 가정폭력을 받았다고 돼 있다"며 "1심은 (가정폭력으로 인한) 경찰 신고 및 치료 내역이 없어서 이 사건 살인을 제2유형으로 보지 않았나 싶다. 당시 진료기록을 제출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건강보험관리공단에 치료 내역이 있었다"고 호소했다. 부부가 사건 당일 식사를 하던 상황과 아들의 1심 증언도 재차 강조했다.
"잘못을 반성하고 후회합니다. 사죄하며 용서를 빕니다. 어머니의 딸로서, 아들의 어머니로서 살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김씨는 최후진술을 했다. 항소심 선고기일은 오는 20일이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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