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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희의 호모폴리티쿠스] 냉철한 집단이성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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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희의 호모폴리티쿠스] 냉철한 집단이성이 필요할 때다 이목희 아시아경제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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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설렁 얘기하면서 핵심을 짚는 정치인이 있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이다. "지도자는 수재형보다 건달기가 있어야 되더라"는 그의 언급에 공감했다. 험한 정치판, 선거판에서는 돌파력이 요구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국민의힘 윤석열·홍준표 후보를 건달형으로 분류했다. 그 이론에 부응하는 듯 수재형 유승민·원희룡 후보도 앞다퉈 건달형 싸움닭으로 변했다.


지금까지 여덟 차례 대통령선거를 가까이서 지켜봤다. ‘이런 후보라면 나라를 잘 이끌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인물들이 있었다. 대부분이 중도 낙마했다. 건달기가 없다는 점이 도리어 성취를 가로막곤 했다. 도덕군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스스로의 잘못을 자꾸 돌아보는 이는 전진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사정당국의 내사·수사에 취약했다.


후흑학(厚黑學)이라는 리더십 분석틀이 있다. 20세기초 중국 리쭝우가 제시했다. 후흑은 면후(面厚)와 심흑(心黑). 면후는 두꺼운 얼굴, 뻔뻔함이다. 심흑은 검은 마음, 음흉함이다. 얼마전 홍준표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후흑하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후흑학은 단순히 속임수의 처세술이 아니다. 리쭝우의 분석은 한단계 더 나아간다. 쉽게 풀면 ‘특정 사건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나라의 큰 일을 도모하는 역량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 다수는 후흑의 지도자였다는 것이다.


르네상스 이후 서구 근대국가 통치술의 전범을 제시한 마키아벨리. 그가 제시한 리더십의 덕목 역시 ‘여우의 기만’과 ‘사자의 용기’였다. 한국 유권자는 이중적이다. 표면적으로는 도덕과 이상주의를 앞세운다. 그러면서 홀로 깨끗한 이는 표를 얻지 못했다. 승리를 위해서는 ‘기만과 용기’를 겸비해야 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을 소시오패스라고 한다. 대통령 자리까지 올랐던 정치인에게서 소시오패스 느낌을 받고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자신에게 도전하는 이를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그래놓고 전혀 미안해 하지 않았다. 명백한 사실을 강하게 부정했다. 그 정치인은 자기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자그마한 거짓말은 문제가 안됐다. 처음의 거짓말은 확신이 되고, 그에게는 새로운 진실이 되고 있었다.


선거판이 험해진 데는 대중의 욕구가 한몫 하고 있다. 유권자들은 강한 리더십에 끌린다. 후보들이 입으로는 정치보복을 않겠다고 한다. 실상은 상대편을 강력하게 손보겠다는 식으로 나아간다. 그래야 확실하게 집토끼 유권자를 잡을 수 있다.


대중은 변덕스런 측면도 있다. 바라는 리더십 유형이 순환한다. 센 지도자와 부드러운 지도자가 번갈아 등장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김영삼·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찬 성품이었다. 그 중간 대통령들은 유한 편이었다. 윤보선·최규하·노태우·김대중·이명박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까지.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임자보다는 덜 강해 보인다. 이번 대선은 확실한 건달형의 차례가 된 셈이다.


특히 디지털 시대는 상대 흠집을 찾아내는 길을 다양하게 만들고 있다. 이전 행적이 샅샅이 드러난다. 공사석의 농담조차 바로 전파된다. 전통 언론과 무수한 인터넷 언론, SNS의 범람. 일반인들도 대선 후보의 일거수일투족을 찾아내 알릴 수단을 가지고 있다. 웬만히 얼굴이 두껍지 않으면 폭로전을 감내하기 힘들다.


이런 배경들을 깔고 보더라도 이번 대선전은 너무 살벌하다. 진영 대립이 극에 달해 있다. 같은 진영의 내부 총질도 사생결단 양상이다. 상대 후보에 대해 일말의 예의도 없다. "당신은 감옥에 갈 것", "소시오패스 정신병자"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한다. 가족들을 향해서도 무차별 폭로와 비방이 이어진다. 총칼만 안 들었을 뿐 혁명·쿠데타 분위기를 풍긴다.


면후, 심흑하지 못했던 과거 사례로 고건 전 총리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입길에 오른다. 두 인물은 행정·외교안보 분야에서 두드러진 족적을 남겼다. 대권을 준비하면서 부딪힌 현실은 달랐다. 권모술수와 음모의 연속. 비방을 견디기 힘들어 했다. 정치 자금 측면에서 순진했다. 이들 외에도 비슷한 사례를 여럿 보았다. 정치에 발을 담갔다가 호된 시련만 겪고 물러났다. 다른 분야에서 쌓아온 이미지를 깎아 먹고 좌절하기도 했다.


지금의 유력 대선주자들은 양면의 리더십을 가진 듯하다. 이재명 후보는 원래 내성적이었다고 한다. 찢어지는 가난을 뚫고 성공하기 위해 모질어질 수밖에 없었다. 홍준표 후보가 독불장군이라고 불리는 배경도 비슷할 것이다. 윤석열 후보 역시 거친 검사 세계를 헤쳐 오면서 강한 캐릭터를 갖게 됐다고 본다.


구설수를 돌파하고 나라를 제대로 이끌 ‘사자의 용기’를 가지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 ‘여우의 기만’이 어느 정도 필요할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경멸받는 군주가 최악이라고 했다. 우유부단으로 손가락질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눈에 보이는 기만술 때문에 후보들이 경멸받고 있는 게 문제다. 국가 난맥상을 바로잡을 역량 제시보다 비방·선동에 몰두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각 후보에 대한 역대급 비호감 지수가 관측된다. 그래도 겉은 후흑할지언정 속까지 그러지 않은 이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유권자들이 냉철한 집단 이성을 발휘해주길 기대한다. 정치혐오·외면은 후회의 결과를 낳는다. 부화뇌동과 맹신은 판단을 그르치게 한다. 후흑의 껍질 뒤 진면목을 찬찬히 뜯어보길 바란다. 한두가지라도 주요 정책을 살펴보아야 한다. 주변 인물을 둘러보는 게 필요하다. 차선을 고민할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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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희 아시아경제 전문위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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