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성필 기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가 운영한 웅동학원을 둘러싼 비리 의혹의 핵심은 조권씨다. 웅동학원에서 돈을 빼돌리기 위해 셀프 사기 소송을 벌였다. 검찰 수사에서, 법원 재판에서도 드러난 사실이다. 조씨는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아버지에게 받아야 할 채권이 있어 변제를 요구하니 웅동학원 공사대금 채권을 양도해줄테니 가져가라고 했다"고 항변했다. 책임을 부친인 고(故) 조변현씨에게 미룬 것이다. 조씨의 모친 박정숙 웅동학원 이사장도 법정에서 비슷한 얘길 했다. 1심 재판 증인석에 섰던 박 이사장은 조씨에 대해 "아버지 때문에 신세를 망쳤다"고 했다.
들러리 세우고 '셀프 입찰'로 공사 수주
조변현씨. 그의 이름은 조씨 판결문에서 상당수 등장한다.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웅동학원 이사장이었다. 1985년부터 2010년까지 이사장으로 재직했다. 조 전 이사장은 동시에 고려종합건설 대표였다. 이 회사는 1997년 11월 부도가 났고, 2006년 12월 해산간주된 뒤 2009년 12월 청산종결등기가 완료됐다.
그가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1996년 웅동학원은 이 사건의 발단 격인 웅동중학교 교사 신축공사를 발주했다. 이 공사를 수주한 건 조 전 이사장이 대표로 있던 고려종합건설. 전체 공사금액 36억6092만원에 계약 도장을 찍었다. 조 전 장관의 외삼촌이자, 당시 웅동학원 행정실장이던 박모씨는 법정에서 그때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도급금액은 고려종합건설에서 입찰한 금액대로 계약이 체결된 것이다. 입찰 형식을 취했지만 나머지 업체는 실질적으로 들러리였다." 사실상 '셀프 입찰'이었다는 얘기다.
웅동학원은 이 공사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위해 동남은행에서 1995년 12월 30억원을 대출받았다. 조 전 이사장이 근보증했다. 하지만 이 돈은 이후 웅동학원이 다 갚지 못하면서 빚으로 남았다. 캠코가 채권을 인수해 현재 이자만 7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웅동학원의 천문학적인 빚 중심에는 조 전 이사장이 있었던 셈이다.
공사는 완공에 가까운데… 수상한 증액
웅동중 교사 신축 공사의 당초 공사기간은 1996년 1월13일부터 1997년 6월30일까지였다. 그런데 웅동학원과 고려종합건설은 1997년 초 계약변경에 합의한다. 공사기간을 1997년11월30일로 늘리고 공사금액을 48억원으로 올리는 내용이었다. 당시 행정실장이던 박씨는 이 계약 변경이 이상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교사 신축 공사는 당초 은행에서 대출 받은 30억원이면 충분히 가능했을텐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박씨의 법정 진술이다.
변경된 계약의 세부 내용도 박씨 증언의 신빙성을 더한다. 당시 계약 변경에서는 토목공사비가 특히 많이 올랐다. 당초 18억4996만원에서 26억3165만원으로 7억8168만원이나 올랐다. 전체 증액분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런데 당시 토목공사 관련 공정률은 옹벽공사가 100%, 부지정지공사가 95%였다. 토목공사에 추가요인이 없었다는 의미다. '수상한' 증액이었던 셈이다. 조씨의 항소심 재판부도 이 부분에 대해 "토목공사 부분이 공사대금 증액 과정에서 과다 계상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조 전 이사장은 끝내 이 증액에 대한 소명을 하지 않았다. 웅동중 교사 신축 공사가 끝난 1998년 10월 열린 학원 이사회에서 한 이사가 "이사장은 정확히 추가된 내역서나 계약서 등을 정리, 보관했다가 기회가 되면 제출해야 한다'고 했을 때도 그는 입을 닫았다. 이사회에서 정확한 공사비 관련 자료에 대한 제출을 요구받았음에도, 검증이나 정산을 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웅동중 교사 신축 공사에 실제 들어간 금액은 완공 23년이 지난 현재까지 베일에 쌓여 있다. 당시 공사 관계자들도 "정확한 금액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추가 대출 5억, 이면에는 '이상한' 약정
웅동학원은 계약 변경으로 공사금액이 늘자 1998년 6월 동남은행에서 5억원을 추가로 대출받았다. 이미 웅동중 교사 신축 공사는 끝난 시점이었다. 더는 공사금액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추가로 대출을 받게 된 이면에는 고려종합건설과 웅동학원이 96년 최초 계약 당시 체결한 '공사비 선지급에 따른 쌍방 약정'이 있다. 조 전 이사장이 학원 이사회에서 '내가 책임지게소'라고 공언한 약정이다.
약정의 내용은 이렇다, '동남은행에서 웅동학원이 대출받은 30억원에 대한 제반비용과 공사 완공 후 정산 시까지 선 지급금 30억원에 대한 이자는 고려종합건설이 부담한다.' ①삽을 뜨기도 전에 전체 공사금액 36억원 중 30억원이 고려종합건설에 선지급됐고 ②대신 대출금 30억원에 대한 은행 이자는 고려종합건설이 부담한다고 풀이 가능하다.
공사 시작도 하기 전에 전체 공사대금의 8할 이상을 지급하는 ⓛ도 이례적이지만, 더 큰 문제는 ②에 있었다. 약정과 다르게 고려종합건설은 은행 이자를 부담하지 않았다. 웅동학원이 모든 이자를 냈다. 완공 후에도 원금을 갚지 못해 이자가 발생하자 결국 또 다시 동남은행에 손을 벌리게 된 것이다.
외삼촌 박씨는 이와 관련해 검찰에서 "웅동학원에서 이자를 지출한 것은 고려종합건설에서 부담할 채무를 떠안은 것"이라며 "동남은행에서 5억원을 추가로 대출받은 것도 고려종합건설이 이자를 부담하지 않아 추가 대출금으로 이자를 납부하게 된 것"이라고 진술했다. 조씨의 항소심 재판부는 일련의 과정과 박씨 진술 등을 토대로 "웅동학원이 대납한 이자는 고려종합건설로부터 상환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망자는 말이 없다… 그의 부재가 낳은 것
조 전 이사장은 2013년 7월 사망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조씨의 판결문에도 그의 법정 진술은 담기지 않았다. 검찰과 법원에 피고인 또는 증인,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한 조씨, 박 이사장, 외삼촌 박씨, 공사 관계자들의 진술. 그리고 증거로 채택된 웅동학원 이사회 회의록 등에 쓰여진 기록 등이 그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조 전 이사장은 조씨의 셀프 소송에도 연루된 인물이다. 하지도 않은 공사를 했다며 가짜 계약서로 세상을 속였다. 이번 조씨 재판에서는 조 전 이사장이 조씨와 이 가짜 계약서를 만들기 위해 '위조연습계약서'를 작성한 사실도 드러났다. 조씨는 법정에서 "아버지에게 채권이 있어 받았을 뿐 공사 계약서를 허위로 작출하는 데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조 전 이사장의 항변은 판결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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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전 이사장이 살아 있었다면 이 사건 재판은 더 치열하게 다퉈졌을 것이고, 조씨의 판결문도 달리 써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 사건 재판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있어 조 전 이사장의 부재는 이렇게 작용한다. 조씨 입장에서는 방어권 행사의 한 수단, 검찰과 법원 입장에선 혐의를 입증하고 판단할 '지름길'이 사라진 셈이다. 장기판으로 비유하자면 '차(車)'가 없는 형국이란 얘기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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