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배출량과 흡수량 같게 한다는 '탄소중립' 프레임
이 개념으로 기후변화 해결은 한계
아시아경제신문은 한 달에 한 번씩 목요일자에 대변혁기를 맞은 에너지 산업을 진단하고 그에 얽힌 국제 질서 변화를 짚어보는 '최지웅의 에너지전쟁'을 연재합니다. 저자는 2008년 한국석유공사에 입사해 유럽ㆍ아프리카사업본부, 비축사업본부에서 근무하다가 2015년 런던 코번트리대의 석유ㆍ가스 MBA 과정을 밟은 에너지 분야의 전문가 입니다. 석유의 현대사를 담은 베스트셀러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를 펴냈습니다. 지난해에는 본지에 <석유패권전쟁> 칼럼을 연재해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가장 많이 채택하고 선언한 단어가 '탄소중립'(Carbon neutral)이다. 탄소 배출량과 흡수량을 같게 하여 순 배출량을 제로로 한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쓰이고 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최적의 말은 아니다. 탄소 감축이 어떤 행위들의 '중립'으로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문제의 핵심에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대는 말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개인이 탄소중립의 의미대로 순배출량 0을 구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가 운전자라면 일정 거리 주행 후, 자신이 배출한 탄소를 흡수할 나무를 심어서 중립을 달성해야 한다.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면 여행자들은 항공기 연료를 1/n해서 항공기가 배출한 탄소를 흡수할 CCS(탄소포집·저장) 사업 등에 일정액을 기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인구가 나무를 심을 땅도, 탄소를 흡수할 인력과 수단도 충분치 않다.
탄소중립이라는 말은 탄소 배출원만큼이나 그것을 상쇄할 수단도 많아서 ‘중립’의 방법으로 탄소 제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암시를 준다. 그러나 사실 탄소를 흡수할 수단은 조림사업과 초기 단계에 있는 CCS 기술 외에 별다른 것이 없다. 결국 탄소를 줄이는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에너지를 덜 쓰는 것이다.
그럼에도 중립의 개념으로 탄소 제로를 추구하는 것은 탄소 배출에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에너지 분야는 경제의 동력으로서 성장, 고용과 연관돼 있다. 전기 요금과 휘발유 가격도 민감한 부분이다. 이러한 요인들이 탄소 문제의 핵심에 다가서지 못한 채 ‘중립’이라는 포지션을 취하게 한다. 그리고 이 애매한 프레임 속에서 재생 에너지 확대만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인식된다.
재생에너지 확대 ≠ 탈탄소
재생에너지 비중 높은 중국, 탄소 배출량은 오히려 높아
물론 재생에너지 확대도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원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려면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은 수십 배로 늘어나야 한다. 이것은 너무나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을 간과하게 한다. 재생에너지 자체도 탄소를 줄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도 소량이나마 탄소를 배출한다.
중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0년 기준 29%로 꽤 높은 수준이다. 미국의 20.6%, 일본의 21.7%보다 높다. 그러나 중국은 압도적인 탄소 배출 세계 1위국이다. 경제 규모와 인구를 고려해도 탄소 배출량이 너무 많다. 중국의 GDP는 미국의 70% 수준이지만, 탄소 배출량은 오히려 미국의 2배다. 중국 인구는 세계 인구의 약 18% 비중이지만, 탄소 배출량은 세계 총량의 약 29%를 차지한다.
중국에서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수력을 제외한 재생에너지 사용에서 가장 앞선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2020년 기준 46.7%에 달한다. 그러나 독일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더 낮은 프랑스, 영국 대비 약 2배의 탄소를 배출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재생에너지 확대가 탈탄소로 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5월 ‘Net zero by 2050’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세계가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 보고서는 예상대로 재생에너지의 급격한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강조한다. 현재 전 세계가 사용하는 에너지 총량이 425EJ(엑사줄)인데, 이것이 매년 약 1%씩 줄어서 2050년에 340EJ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에너지 효율 개선과 사람들의 행동 양식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탄소제로 위해 에너지 절약 절실
많은 단체와 언론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말한다. 대중의 경각심은 고조되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강조하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어떤 동력으로 활용해야 할까. 재생에너지 확대도 물론 중요하다. 특히 탄소배출이 가장 많은 석탄 화력발전을 다른 에너지원으로 대체하는 것은 시급하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는 국토가 좁은 나라일수록 지난한 길이 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삼림 면적을 줄인다는 논란을 낳기도 한다.
현재 발전량의 약 26% 비중인 원전을 늘릴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곳에 추가로 건설하려면 엄청난 반발을 감수해야 한다. 결국 탄소중립 또는 탄소 제로를 실현하는 한축은 ‘에너지 절약’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를 위한 행동양식의 변화는 그것이 적극적 대안으로 제시될 때 가능하다.
한국이 에너지를 절약해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탄소중립 기조에서 세계 석유 개발 상류 부문 투자는 지난해 15년래 최저치인 약 3300억달러에 머물렀다. 이것의 영향도 탄소중립 기조에서 놓치기 쉽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서 다소 벗어난 올해에도 투자 부진은 지속될 전망인데, 이는 탄소 규제와 ESG 강화 등으로 과거와 같이 석유 사업에서 과감한 도전이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급감한 석유개발 투자 규모에 상응하는 석유 수요 감소가 향후 나타나지 않는다면 석유 수급은 엄청난 불확실성에 빠지게 된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외신은 지나친 석유개발 투자 부진으로 수년 내 공급 위기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한국은 필요한 석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다. 점증하는 석유 수급의 불확실성은 한국에 더 큰 위협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은 해외자원 확보를 통한 에너지 안보 강화, 그리고 에너지 절약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기름 한 방울 안 나오는 나라’에서 에너지를 아껴 쓰고 그것의 확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탄소 감축을 위해서도, 에너지 안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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