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석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신임 검찰총장 후보자로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58·사법연수원 20기)을 지명했다.
전임 윤석열 전 검찰총장(60·23기)보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3기수나 높은 김 전 차관이 총장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함께 총장 후보로 추천됐던 조남관 총장 직무대행(대검 차장검사·56·24기)과 유력한 총장 후보였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59·23기)의 거취에 관심이 쏠린다.
정권 말 안정에 무게 둔 선택… "이변은 없었다"
문 대통령이 현 정부 마지막 검찰총장으로 김 전 차관을 낙점한 건 정권 말 안정적인 국정 운영과 대선 정국을 대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문재인정부 첫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됐던 김 전 차관은 박상기·조국·추미애 전 장관을 차례로 보좌한 만큼 '검찰개혁' 등 문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로 평가받아왔다.
공정거래위원장, 금융감독원장, 국민권익위원장 등 주요 기관장에 대한 하마평이 돌 때마다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았던 것만 봐도 현 정부의 그에 대한 신임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지난해 추 전 장관의 윤 전 총장에 대한 징계 정국에서 폭주하는 추 전 장관에게 직격탄을 날린 뒤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며 조직을 이끌어온 조 직무대행에 대한 신망이 절대적으로 높았다.
지난주 법무부에서 열린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 1차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자 역시 조 직무대행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창수 위원장을 포함한 추천위원회 9명의 위원 모두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임명 또는 위촉했고, 당연직 위원에 법무부 검찰국장과 박 장관이 위촉한 전직 검찰 간부가 포함돼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법무부와 각을 세워 온 조 직무대행이 최다 득표를 한 건 이례적이다. 그만큼 조 직무대행이 흔들리는 검찰 조직을 안정시키고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며 권력에 대한 수사를 이어나갈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받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임 장관들과 극한 갈등을 빚으며 정권을 향한 수사에 거침이 없었던 윤 전 총장을 경험해본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조 직무대행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하기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추천위원회를 앞두고 검찰 내부에서는 "조 직무대행은 가능성 제로(0)"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조 직무대행의 총장 임명 가능성은 낮게 점쳐졌다.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 청와대 인사까지 연루된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이나 '월성 원전' 사건 등 정권 관련 수사가 아직 진행중인 만큼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가장 '믿을 만한' 검찰총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검찰 주변의 관측이었다.
이례적인 기수 역전… 운신 폭 넓어진 이성윤 지검장
과거 검찰에서는 관례적으로 사법연수원 1기수 내지 2기수 아래에서 다음 검찰총장이 임명됐다.
그리고 검찰총장 후보자가 지명되면 총장 후보자보다 윗 기수 고검장들은 물론 같은 기수의 고검장·검사장들도 새로 임명될 총장에 대한 배려와 함께 후배 검사들에게 승진의 길을 열어준다는 의미에서 용퇴하는 게 보통이었다.
총장 후보 지명자가 청문회를 거쳐 정식 임명되기 전에 사표를 내거나 임명 직후 이어지는 고위간부 인사를 앞두고 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이나 형사정책연구원장 등 검찰 출신이 갈 수 있는 기관장으로 내정되지 못할 경우 스스로 물러나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지난 윤 전 총장 임명 당시 전임 문무일 전 검찰총장(18기)보다 5기수나 아래인 윤 전 총장을 파격적으로 검찰총장에 임명하면서 법무부는 윤 전 총장과 기수가 같거나 높은 검찰 고위간부들이 검찰에 남아줄 것을 권고했고, 실제 상당수 간부들이 검찰에 남았다.
이번에는 거꾸로 3기수를 거슬러 올라간 '기수 역전'이 이뤄졌는데 검찰 역사상 전임 검찰총장보다 윗 기수에서 후임 검찰총장 후보자가 지명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윤 전 총장보다 연수원 기수가 1기수 아래인 조 직무대행이 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경우와 비교할 때 윤 전 총장과 동기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입장에선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연수원 24기인 조 직무대행이 총장 후보자로 지명됐다면 23기인 이 지검장은 당장 용퇴를 고민해야될 상황에 처했겠지만, 연수원 기수가 3기수나 선배인 김 전 차관이 총장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그 같은 거취 고민에서 일단은 자유로와졌다고 볼 수 있는 것.
문 대통령이 김 전 차관을 최종 후보자로 지명한 배경에는 이 지검장에 대한 고려도 일부 포함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비록 이 지검장이 '김학의 불법출금'에 대한 '수사 외압' 혐의로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오가며 조사를 받는 피의자 신분이 되면서 총장에선 멀어졌지만, 그동안 '채널A 강요미수' 사건, '청와대 선거개입 사건' 등 중요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노골적인 친정부 성향을 보이며 신임을 받아 온 만큼 여전히 중용될 가능성은 남아있다.
박범계 검찰 고위간부 인사 주목… 인사폭 커질 듯
김 전 차관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신임 검찰총장에 임명되면 곧 검찰 고위간부 인사가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차관이 현재 검찰에 남아있는 고검장이나 검사장들보다는 기수가 높은 만큼 검찰 인사를 앞두고 용퇴를 결정하는 고위간부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 직무대행의 경우 윤 전 총장 사퇴 이후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검찰의 수장 역할을 수행해온 만큼 일선 고검장으로 다시 복귀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이 지검장의 경우 또 한 번 서울중앙지검장에 유임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피의자 신분의 이 지검장을 국내 가장 중요 사건 수사가 진행되는 서울중앙지검장에 유임시키기에는 문 대통령이나 박범계 법무부 장관 입장에서도 상당한 부담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일선 고검장으로의 승진 발령을 통해 그동안 이 지검장이 정부와 법무부의 편에 서서 윤 총장 등과 대립각을 세워온 점을 보상해주면서 동시에 이번에 총장 후보로 지명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줄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총장 임명 이후 단행될 검찰 고위간부 인사는 그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다. 박 장관 취임 이후 처음 단행된 지난 2월 인사에서 박 장관과 윤 전 총장 신현수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사이에 이 지검장의 유임 등을 둘러싸고 견해가 갈리면서 대검검사급 검사 4명의 전보인사에 그쳤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인사에서는 윤 전 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 과정에서 추 전 장관에 대한 비판글을 내부망에 게시하는 등 각을 세웠던 검찰 간부들이나 정권 관련 수사를 지휘했던 검찰 간부들에 대한 좌천성 인사가 예상돼 검찰이 또 한 번 폭풍에 휩싸일 전망이다.
최석진 기자 csj040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