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문채석 기자] 정부 재정 사업이 탄소 감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예·결산 과정에서 검토하는 것은 유럽에서 이미 적극 시행되고 있는 제도다. 문재인 정부가 ‘2050 탄소중립’을 주요 국정 과제로 내세우고 나선 만큼, 입법을 통한 추진과 시행은 빠르게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구체적 탄소중립 지표의 정립이 선행돼야 하며, 에너지 분야의 풍선효과나 지나친 규제로 이어지지 않도록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프랑스, 이탈리아, 아일랜드 등 일부 유럽국가에서는 기후변화인지·탄소감축인지 예·결산제도 또는 그와 유사한 제도를 시행 중이다. 대표적 사례가 프랑스다. 프랑스는 2019년 말 그린버지팅(Green budgeting) 작성 방법론과 함께 이를 2020년 예산안에 시범 적용해 발표한 바 있다. 3908억유로(약 523조3007억원)의 2020년 예산안 중 환경영향이 큰 3370억유로 규모의 사업을 대상으로 대기, 토양, 해양 등 각 환경목표에 따라 사업별 환경영향을 1(환경에 유해)~3(환경에 아주 친화적) 단계로 구분했다.
프랑스는 또한 2021년 예산안의 부속서류로 ‘녹색 예산(그린 버짓·Green Budget)’을 발간해 5472억 유로의 예산·조세지출 중 5280억 유로가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고 평가했다. 특히 프랑스의 녹색예산안은 ▲일부 부처나 사업이 아닌 모든 국가 예산의 환경 영향을 측정 ▲조세지출 포괄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종 다양성과 오염 경감 등의 환경이슈 ▲환경 친화적 행위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유해한 행위도 평가한다는 측면에서 차별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탈리아는 2009 회계연도부터 지출 결산액에 대해 환경 관련 예산의 규모를 집계해 발표하고 결산 부속서류를 국회에 공개해오고 있다. 다만 환경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예산사업만을 파악하는데, 2019년 기준 정부 지출의 0.8%가량이 환경 관련 지출에 해당되는 것으로 집계된다.
이 밖에 아일랜드는 저탄소·기후복원 영향을 파악하는 보고서를 수정예산서 부속서류로 작성한다. 2020년 예산안에 대한 적용 결과, 국가예산 중 20억유로가 환경 개선을 목표로 하는 지출로 집계됐다. 국내에서는 서울시와 경기도가 각각 기후예산·탄소인지예산제도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을 이제 막 시작한 바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정부의 구체적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른 규제가 더해지는 등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최승일 고려대 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국가 재정을 세계적 탄소 중립 추세에 맞춘다는 방향은 맞지만, 어느 정도 강제성을 갖고 예산에 반영할 것이며 탄소중립지표는 적합한지 등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며 "결국 에너지의 문제이며, 어느 한쪽이 불이익을 받는 풍선효과가 우려되므로 작은 범위부터 적용시켜보고 우선순위를 두는 방향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사업의 특성 등을 가정해서 연구는 할 수 있지만 지표를 개발해 예산을 반영하는 것에 대한 실효성은 판단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며 "점진적 연구는 필요하나 입법과제로 추진할 만큼 시급한 정책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규제 하나가 더 늘어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탄소중립은 현 정부 임기 내에 본격적 도입이 불가능한 어젠다 중 하나"라며 "예산은 정부의 정책 기조가 강하게 반영되는데 얼마나 실효성 있게 추진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지금 뜨는 뉴스
유사한 과정을 거쳐 도입된 성인지 예결산제도의 현재 운영이 미흡한 점을 들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재위 내부에서는 "기재부 소관 성인지 예결산마저도 실효성 있게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며 "더 계량화가 가능한 방향을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