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우주선 소프트웨어 제작한 美 마거릿 해밀턴
딸 노는 모습 지켜보다 치명적 컴퓨터 오류 발견
이후 만든 '오류 회피 프로그램'으로 오작동 방지
달 착륙 성공 공로 인정 받아 2016년 자유 훈장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지난달 25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최초 달탐사선은 오는 2022년 8월1일 지구를 떠나 달 궤도에 들어서게 됩니다. 달 탐사선은 1년간 달의 궤도를 돌며, 지상과 대기를 탐사할 예정입니다.
한국형 달 탐사선을 포함해 오늘날 지구 바깥의 위성·행성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들은 모두 최첨단 탑재컴퓨터를 장착합니다. 컴퓨터는 탐사선 내 전력제어장치·배분장치·자료처리장치 등 복잡한 기기들을 다룰 뿐 아니라 탐사선이 안전하게 궤도에 안착할 수 있도록 비행 소프트웨어를 구동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탑재컴퓨터 같은 고성능 컴퓨터가 없었습니다. 특히 인류 최초로 달 지상에 내려앉았던 달 착륙선 '아폴로 11호'의 경우, 최근 나오는 스마트폰보다 훨씬 낮은 성능을 가진 '아폴로 가이던스 컴퓨터'에 의존해야만 했습니다.
아폴로 가이던스 컴퓨터는 무게 32kg의 직접회로 컴퓨터로, 탐사선의 망원경·관성측정장치·수동 기어·제어 장치·레이다·엔진 등 대부분 장비를 제어했습니다.
이 컴퓨터는 수공업으로 제작된 '코어 로프 메모리'를 통해 데이터를 저장했습니다. 해당 메모리 칩은 구리로 만든 와이어를 실뭉치처럼 칩에 엮어 만든 형태로, 대형 냉장고만 한 크기를 만들어야 2.5MB를 겨우 저장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가이던스 컴퓨터에서 발생하는 오류였습니다. 당시 가이던스 컴퓨터는 한도 이상의 명령을 처리해야 할 상황이 되면 과부하가 걸려 시스템이 작동을 멈추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일반 컴퓨터의 경우 시스템 오류가 발생하면 껐다 다시 켜는 '재부팅'을 할 수 있지만, 1분1초가 아까운 우주선 이착륙 단계에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지요.
이같은 가이던스 컴퓨터의 오류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당시 미 항공우주국(NASA) 비행 소프트웨어 설계팀장을 맡았던 여성 공학자 '마거릿 해밀턴'입니다.
해밀턴은 24세의 나이에 미 매사추세츠 공대(MIT) 프로그래머로 취직해 일하던 중 1965년 NASA의 달착륙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책임자가 됐습니다. 당시 그는 어린 딸 로렌을 직장에 데려와 돌보며 코딩 작업을 할 만큼, 공학에 대한 열정이 매우 깊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밀턴은 로렌이 가이던스 컴퓨터의 시뮬레이터를 만지고 놀던 중 컴퓨터 오류를 일으키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후 해밀턴은 실제 아폴로 11호에 탑승한 우주비행사들이 딸과 똑같은 실수를 저질러 컴퓨터 오류가 발생하는 상황을 염려하게 됐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오류 회피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해밀턴이 개발한 오류 회피 소프트웨어는 컴퓨터가 처리할 명령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방식입니다. 컴퓨터가 너무 많은 명령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작동을 멈추면, 우선순위가 낮은 작업들은 중단시키고 필수적인 작업들을 다시 설정해 처리하는 겁니다. 해밀턴은 해당 소프트웨어를 구축하기 위해 천공카드 수만 장에 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이를 가이던스 컴퓨터에 탑재했습니다.
사실 당시 NASA에서는 해밀턴의 오류 회피 프로그램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 여겼다고 합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우주비행사들이 실수할 리 없다고 여겼던 것이지요.
그러나 1969년 7월20일, NASA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마이클 콜린스·버즈 올드린이 탑승한 아폴로 11호는 달 착륙을 앞두고 해밀턴이 우려했던 컴퓨터 오작동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해밀턴의 소프트웨어 팀이 개발한 오류 회피 프로그램 덕분에 무사히 달 착륙에 성공했고,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치고 귀환할 수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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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턴은 지난 2016년 11월22일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아폴로11호 달 착륙 성공에 기여한 공로로 자유 훈장을 받았습니다. 달 착륙이라는 인류사 길이 남을 위업은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 사소한 오류를 해결하려 노력한 공학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셈입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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