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기업이란 무엇인가'는 기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운영되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궁극적으로 기업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글쓴이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 중추인 기업의 본질을 제대로 알아야 경제ㆍ기업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기업론' 중심의 경제학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책은 '주주는 기업의 주인이 아니다'라는 단순명료한 명제로부터 출발한다. 주주는 주식의 주인일 뿐, 기업의 주인은 기업 자체다. 기업은 법인 형태로 존재하는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이다. 오늘날 대다수 기업은 법인을 통한 주식회사 형태다. 법인은 로마시대에 그 개념이 출현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법인은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데 필요하기에 만들어진 개념적 실체다.
신 교수는 쉽게 설명하기 위해 가상의 인공지능(AI) 반려동물 기업 '내사랑이'의 성장 스토리를 소설처럼 써내려간다. 내사랑이의 창업주는 셋. AI 강아지 관련 특허를 보유한 학자 김전진과 이살핌, 그리고 창업 자금 50억원을 투자한 자산 300억원의 거부 박현찰이다.
이들은 회사를 설립하려면 내사랑이를 법인으로 만들고 법인 발행 주식을 나눠갖는 게 좋다는 변호사의 조언에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다. 법인을 만들고 보니 실질적인 경제활동이 가능해졌다. 법인이 없는 상황에서 사원을 고용하려면 세 사람은 각자 고용 계약서를 써야 한다. 하지만 법인을 설립하고 난 뒤에는 회사 이름으로 한 장만 쓰면 된다.
법인은 개념적 실체에 불과하지만 이처럼 노동이나 금융거래, 생산 같은 실질적 경제활동의 주체가 되기에 사회적 실체로 자리잡았다. 이는 국가나 종교, 민족이 직접 보고 만질 수 없지만 중요한 사회적 실체로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주식회사를 세우면서 김전진과 이살핌의 특허, 박현찰의 돈이 기업의 자산이 돼 그 소유권이 법인, 다시 말해 회사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자산분할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로써 주주인 세 창업주는 주식 소유권만 갖게 된다.
회사는 필요한 자산을 소유한 '인격체'
법인 설립 후 자산분할 과정 통해
회사위기시 창업주에겐 유한책임만
창업주 개인위기 땐 회사재산 보호가능
회사는 사업에 필요한 자산을 소유한 별도의 법인격체로 존재한다. 창업주들 입장에서도 이 방법이 좋다. 회사에 문제가 생겼을 때 회사 자산으로만 책임지면 되기 때문이다. 박현찰의 경우 회사에 문제가 생겨도 처음 투자한 50억원 말고 나머지 250억원에서 손해는 발생하지 않는다. 이처럼 자산 분할은 기업이 잘못될 경우 창업자가 유한책임만 지게 해 개체를 보호해주는 기능을 한다.
반대로 창업주 가운데 누군가 개인적인 문제를 일으켰을 때 회사 재산이 보호된다. 김전진이 개인적으로 금전적 문제를 일으켜도 자산이 분할돼 있기 때문에 김전진에게 돈을 빌려준 채권자들이라도 내사랑이 회사를 건드리지 못한다.
내사랑이 그룹은 급성장한다. 한국거래소 개설 이래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를 단행하고 단숨에 5대 그룹 반열에 올라선다. 창업주 세 명 중 경영자로 나선 김전진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닥친다. 언론이 내사랑이에 재벌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공정거래위원회는 김전진을 총수로 지정한다. 김전진은 컴퓨터 공학자로 평생 연구만 한 사람인데 갑자기 자기 입장을 해명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저자는 김전진이 직면한 난관을 서술하면서 기업에 대한 언론의 편견과 당국 규제의 불합리성을 지적한다. 상호출자와 순환출자 규제에 대해서도 불편한 시각을 보인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창업주 도요다 일가의 지분이 2% 안팎에 불과하다. 하지만 도요다 일가는 상호출자, 순환출자로 그룹 통제력을 안정되게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가족경영 혹은 대주주경영이 전문경영인 체제보다 훨씬 보편적이다. 경영도 가족경영이 전문경영보다 효율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상호출자·순환출자 규제 불합리성 지적
좋은 경영성과 내는 지배구조가 바람직
신 교수는 전문경영인의 책임경영 체제가 한국 기업이 도달해야 할 이상향으로 상정돼 있는 점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한다. 더욱이 비현실적 이상향이 한국 공정거래 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꼬집는다. 미국에서도 전문경영 체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대부분 대주주경영 체제인데 특수 상황이 일반화해 한국에서 이상향으로 상정됐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궁극적으로 기업이 성장한 역사와 환경은 다양하며 따라서 그 다양성을 인정하고 불가피하게 형성된 다양한 지배구조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경영은 실사구시(實事求是)라며 좋은 경영성과를 내는 지배구조가 좋은 기업 지배구조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기업도 싸고 질 좋은 제품과 서비스 제공에 진력하며 영속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업 존재 자체가 고용창출, 소득분배 등 사회에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업이 영속함으로써 장기 번영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기업 스스로 이데올로기도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이 철학을 가져야 하는 것은 주주가치론자들과 이해관계론자들의 극단적 공격에 대비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주주가치론자는 기업인이 돈을 최대한 많이 벌어 주주에게 갖다 바쳐야 하는 노예인 양 생각하는 이들이다. 이해관계론자는 기업과 기업인이 돈만 버느라 사회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질책하는 이들이다.
저자는 선진 경영에 대해 배우겠다며 영미의 유명 비즈니스스쿨을 다닌 사람 대다수가 주주가치론으로 세뇌돼 있으며 주주가치론에 대해 비판하는 학자나 교육자 대다수가 이해관계론으로 편향돼 있어 모두 극단적 행태를 보인다고 지적한다. 궁극적으로 기업은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며 그러려면 기업 나름의 철학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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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란 무엇인가/신장섭 지음/북스코프)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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